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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노비열전- 이상각 지음

Bawoo 2014. 11. 22. 11:28

조선은 '동방노예지국'이었다

 

조선의 양반들은 참으로 선택 받은 존재들이었다. 그들은 나라를 위한 국방의 의무와 납세의 의무가 없었다. 손에 흙 한 번 묻히지 않고도, 서당에 가는 책보따리마저 나이 많은 ‘삼돌이’가 들고 따르게 하면서도 밥과 옷과 술과 고기가 넘쳤다. 특히 마초들의 로망, 다수의 첩과 노비들을 상대로 성적인 욕구도 합법적으로 발산할 수 있었다.

조선은 전반적으로 양반 15%, 평민 50%, 노비 35%의 신분제 사회였다. 노비는 모계를 따르는 비 인도적 세습제였다. 모계를 따르는 이유는 교활했다. 양반의 분탕질로 태어난 첩과 노비의 자식들이 ‘15%’에 진입하는 것도 막고 노비제도도 유지하려는, 님도 보고 뽕도 따자는 것이었다.

물론 천혜의 양반들에게도 리스크는 있었다. 역모나 당쟁, 권력투쟁에 휘말려 패자가 됐을 경우에는 일가친척의 모든 남자들은 죽임을 당했고, 여자들은 하루 아침에 노비로 전락했다. 세조에게 반기를 들었던 사육신들이 그랬다. 승자들은 한때 동문수학했던 학우들의 아내와 딸들을 노비와 성 노리개로 차지하기 위해 서로 다투었다. 그 중 한 명은 단종의 왕비였던 송씨를 요구했다는 기록마저 있다 하니 이것이 사람으로서 할 짓이었던가.

김훈의 소설 ‘흑산’의 끝 무렵에 15세에 급제해 정조의 총애를 받았던 황사영의 아내 정명련이 잠깐 등장한다. 그녀는 다산 정약용(마저 노비제도를 두둔했다)의 조카로 어엿한 반가의 규수였지만 천주교에 대한 신유박해로 남편이 능지처참을 당한 후 제주도에 관노로 유배된다. 2살의 어린 아들 황경헌을 데리고 가던 젊은 그녀는 추자도에서 아들을 갯바위에 내려놓고 떠난다. 노비 신세를 면하게 하려는 고육지책이었다. 창자가 끊어지는 슬픔, 단장지애(斷腸之哀)의 장면이다.

‘조선노비열전’의 저자 이상각은 조선이 양반들에게는 공자와 맹자를 비틀어 방패 삼은 ‘동방예의지국’이었겠으나 사실은 ‘동방노예지국’이었다고 일갈한다. 그는 노비제도의 짐승적 폐해를 적시하면서도 치열한 노력으로 출세했던 노비, 노비로 전락한 공주와 노비를 사랑했던 공주의 비운, 걸출한 능력으로 시대를 주름잡았던 노비들의 극적인 반전 스토리들을 한편의 역사소설처럼 열렬하게 풀어냈다.

우리는 흔히 ‘노예해방’하면 1865년 링컨 대통령을 먼저 떠올린다. 마치 우리는 노예가 없었던 것으로 착각한다. 조선의 노예들이 완전히 해방된 것은 1894년 친일내각이 강제한 갑오개혁 때였다. 단지 노예해방만을 놓고 ‘일본이 조선을 지배한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고 한다면 ‘뼛속까지 친일파’라고 뭇매를 맞을까?

◇조선노비열전=이상각 지음. 유리창 펴냄. 416쪽 /2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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