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日常)-2014년 마지막 날
1.
아랫도리가 버거워 떠진 눈,
마지못해 몸을 일으키며 시계를 보니
채 5시도 안된 새벽
눈을 뜨게 한 놈 소원을 풀어주고
집중을 못해 진도가 지지부진한 3편의 글 중
어느 놈을 써볼까 머리를 굴리며
컴을 켜본다.
그러나 생각만 머리에 가득할 뿐
저장해 논 글 열어보기조차 되지를 않는다.
눈은 아직도 한참 피곤하고
머리는 자판에 손이 가도록 돌아주지 않는다.
별수 없이 컴을 끄고 눈을 다시 붙인다.
생각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몸을 원망하면서
'이것이 늙어가는 징조의 하나인가'라고
자조를 하면서...
2.
'그만 일어나라'는 신호인
아내의 방문 두드리는 똑똑 소리,
" 나 출근해야 되요. 준비해요'하는 신호 소리에
화들짝 놀라 몸을 일으켜
대충 고양이 세수를 하고
집을 나선다.
오늘이 아내 마지막 출근 길이 될지
아직은 더 다녀야 될지는
도 교육청 명퇴예산이 얼마나 책정되느냐에 달려 있지만
그와 관계없이 우선 한달 동안은 아내 출근 신경 안써도 되니
내일 부터 최소 한달간은 편하게 뒹굴뒹굴하면서
글을 쓰는 시간을 늘릴 수 있을 터
이것만도 얼마나 큰 행복인가를 생각하며
새삼 아내한테 고마운 마음이다.
3.
대학 동기들이 모여 있는 카톡방에 음악 자료 올리는 일,
내가 좋아 하는 일이기에
동기들 거의 무반응인 상태인 것이 섭섭해서
포기할 생각을 수없이 많이 하다가도
'싫지는 않으니 방을 안나가는 거겠지 '하는 생각이 들어
그래도 내 삶 중에 가장 기뻤던 날에 만난 인연들이기에
현실에서 만나는 인연은 몇 명 안되지만
'내 자료가 도움이 안되지는 않지 안겠나' 하는 생각으로
내가 듣는 음악을 같이 듣고 알자는 생각으로 그냥 올린다.
그나마 대학 동기들 말고는 이런 자료 올려 줄
마땅한 사람도 주변엔 없지 않나 생각하면서
'참! 아무리 사람 만나는 것보다 혼자 지내는 걸 좋아한다고는 하지만
인맥 관리 더럽게 안하는 별난 놈이라고 스스로 생각을 하면서'
오늘은 모차르트 장례식을 위해 진혼곡을 쓰고 장례식에도 참석한
그러면서도 본인도 6개월 뒤에는 죽고 만
웬만큼 클래식에 관심이 없으면 알 수 없을 그런 음악가를
동기들에게 알려줄까 말까 고민을,
늘 하는 고민을하다가
카톡방을 만들어 놓고 동기들의 무반응에도 실망치 않고
열심히 자료 올리는 키다리 동기를 생각하며 자료를 올렸다.
언제까지 계속할지는 모르겠으나
아직은 지치고 있지는 않으니 지칠 때 까지는 해 볼 생각,
늘 하는 생각으로.
그러나 묵은 사진첩 속에 들어있는 빛바랜 사진처럼
마음 속에 담아두었던 내 젊은 기뻤던 날에 만났던 동기들 모습은
몇 명 외에는 이제 내 곁에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동기들에 대한 내 외사랑하는 마음은 많이 접혀져 있어
그저 담담한 마음으로 동기들을 생각한다.
내 살아 온 지난 세월 만큼이나
아득하기만 한 지난 젊은 시절에 만났던,
모두다 한 세상 잘 살아와
그 누구도 부럽게 생각 않을 대단한 동기들.
4.
어제 테니스 치러 나가느라 미완인채로 캔버스에 놓여있는 누드여인
'여보세요, 내 모습이 왜 이래요. 좀 잘 그려보세요'라며
내 손을 기다리고 있고,
나는 무심한데,
내 대학 동기들 나에게 하듯 별 관심이 없는데
꾸준히 자료를 보내주는 고교 동창,
그래서 보내주는 성의가 고마워 답글은 꼭 해주는 친하지 않은 동창
오늘은 백기완씨가 '박 전대통령을 위대한 인물이라고 극찬했다'는 자료를보내왔다.
열어보니 너무나 긴 글
그래서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고 답을 보냈다.
'난 박통이 세종대왕보다 더 위대한 인물이라는거 벌써 알고 있었다'라고,
딴 것 다 제쳐놓고 보리고개 없애 준 하나만으로도 위대한 분이라고
우리나라 역대 그 누구가 그리고 앞으로 어느 누가
박통만한 일을 할 수 있을까'라고
5.
그나저나 현실에 불만이 많은 울아들
자기는 그래도 대기업에 취직해 다니고 있으면서도
나라 돌아가는 꼴이 너무나 싫어
이민 가고 싶다고 그러는 울아들
네 아버지, 할아버지 세대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한번 보라고
영화' 국제시장' 우리 3식구 같이보자고 했더니
요즘 젊은 애들
'아버지, 할아버지 세대들 그리 고생들 했으면서 왜 새누리당 찍느냐고'
그런다면서 안보겠단다.
참 ! 걱정인데 뭐 어쩌겠나.
우리도 박통 독재하던 젊은 시절에 불만을 달고 살았으니
아들도 세월이 가면서 달라지겠지.
어차피 자기 인생은 스스로 알아서 살아야 하고
거기에 자기가 처한 집안, 나라 환경은 벗어날 수가 없는 것이니
복이 있으려면 나라 더 잘 살게 될테고
나라 망조가 들려면 지금이 잘사는 꼭지여서
이후로는 내리막길일 테고,
그렇지만 나라가 망해도
잘 먹고 잘 사는 인간들은 있게 마련인 법이니
제 복이 있으려면 나라가 망하던 말던
저는 잘 먹고 잘 살 수 있을테고
아니면 쪽박 차는 삶일테고.
이 모두 다 나 죽고 난 뒤의 일이어서
나는 어찌 해볼 도리가 없는 자기 몫의 삶이고
살아있는 지금이라고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지만...
6.
오전은 이리 글 쓰느라 다 보냈으니
조금 쉬다가
아점 먹고 캔버스에 있는 누드 여인
좀 더 잘 그려보려고 용쓰다가
어깨 아파 병원가서 물리치료 받겠다고 한 아내 연락오면
차 가지고 가서 집으로 모셔다 놓고
누드여인과 또 씨름하다가
도서관에 가서 음악이론 기초 책이 있나 뒤적거려 보고
그러면서 내 만 64세의 마지막 날이 갈 것이다.
내일 부터는 전철이 공짜이고
13만원하는 페렴 예방주사도 공짜로 맞을 수 있는
만 65세가 시작되는 내 삶.
새해 첫날인 내일은 병석에 누운지 벌써 1년이 되어가는 모친 뵈러 갔다오고
그리곤 늘상 하는 그림 그리고 글쓰는 일이 주인 나날이 반복되겠지.
돈 한푼 안되는 일이나 너무나 좋아해서 행복해하며 하는 일.
아직 마음에 쏙 드는 그림 한 점 없고 잡문 수준의 글이어서 남들 앞에 썩 내보이기가
멈칫거려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행복한 마음으로 하는 이 일들.
앞으로 얼마나 남았을까 건강하게 보낼 수 있는 내 삶
그림 그리고 글 쓰는 일을 얼마나 더,
잘 그리고 잘 쓸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행복한 나날을 맞이할 수 있을까.
조금이라도 더 오래오래 할 수 있게 되기를
그래서 단 한 점 , 단 한 글이라도 백프로 마음에 드는 작품이
내 죽는 날 내 눈 앞에 놓여 질 수 있기를 ....
2014. 12. 31- 2014념 마지막 날 오전에 Antonio Rosetti 의 음악들을 들으며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