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斷想, 閑談]/<단상, 한담>

전자레인지

Bawoo 2015. 1. 14. 11:39

 

전자 레인지

 

 

 

아내 사무실에 있는 전자레인지.

 

집 가전 제품 너무 오래되었다고

아직 쓸만한데 단지 너무 오래 되었다고

몇년전 세탁기, 티비, 냉장도 깡그리 바꿀 때

그래도 이 놈은 버리기는 아직 아깝다고

사무실에 갖다 놓고 쓰겠다고

가져다 놓은 전자레인지.

 

 

이젠 아들 신혼집에 갖다 주겠다고,

 

집도 멀고 큰 돈 안드니

웬만하면 사지 그러냐는 나의 말에

아들과 다 상의해서 결정한 일이라고

부모가 집 사줄 형편도 아닌데

한푼이라도 아껴

빨리 집 장만하는데 보태는 게 최고라고,

 

신혼인 아들까지 그러겠다는데

왜 쓸데없이 그러느냐는 아내의 핀잔.

 뭐라 반대할 이유도 없어

더 이상 아무 말도 못하고

알았다는 내  볼멘 소리

 

'그거 되게 무겁던데

1층까지 갖고 내려오려면 고생 좀 해야 될텐데' 하는

입 밖으로는 안 나오는 

내 볼멘 소리.

 

아들 장가가는데 아무 힘도 되어 준 게 없어

아내와 아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늘상 갖고 있어

허튼 돈 안쓰겠다는 아내와 아들의 마음을 알 것 같아

그깟 몇 푼 한다고 새것 하나 사지 그러냐는

입밖으론 차마 내지 못한

내 볼멘 소리.

 

 

2.

 

에레베이터가 없는 건물 3층에 있는

아내 사무실

거기서 그 만만치 않은 무게를 들고

계단으로 걸어내려 와야 되는데

영 겁이 난다.

아차해서 발 잘못 디디면

가뜩이나 약해지기 시작하는 걸 느끼고 있는 발목

그냥 삐끗하고 말텐데

그러면 전자레인지 값 아끼려다가

병원비가 더 많이 들텐데

속으로 걱정하며

그러니 조심조심해야겠지 하며

계단을 한발짝 한발짝 조심스럽게 내려간다.

한걸음에 한 계단 씩

두 발 다 모아 한 계단씩

계단이 꺽어지는 곳에서는 꼭 쉬면서

가빠진 숨을 고르며

'아유! 나머지 계단을 무사히 잘 내려가야 할텐데'라고 걱정을 하며.

 

 

3.

 

때마침 계단 청소하고 있던 청소 아주머니

아직은 50 초중반 정도로밖에 안보이는 아주머니

이런 나를 한심하다는 얼굴로 쳐다보며

속으로 '쯧쯧 아무리 나이가 들어보이지만

그거 하나 제대로 못들고 쩔쩔매고 있담' 하는 표정으로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쳐다보고 있다.

 

'여보소 아주머니 그런 표정 짓지마소

나도 아주머니 나이 때는 그리 겁먹지 않았었소.

그러나 어찌하오

나도 모르는 사이 어느덧

내 몸에 자신이 없는 그런 나이가 되어 버린 걸

내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는

그런 몸 상태가 되어버린 걸'

 

서로 말한마디 주고받지 않은 채

이런 말을 표정으로 주고 받으며

무사히 계단을 내려왔다.

숨이 턱에 차서 헥헥 거리며

'발목 삐끗하지 않아서 다행이다'라는 생각을 하며

이제 차에다가 싣기만 하면 되니

'마지막으로 잠시 쉬자' 생각하며

복도 바닥에  전자레인지를 내려 놓고

이 놈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4.

 

재산이 많았으면

'이깟 전자레인지 그냥 하나 사줬을텐데'라고 생각을 하며

'이젠 먼 부산까지 운전을 해서 내려가는 일이 남았구나' 생각을 하며

'불과 10여년 전만 해도 여행 삼아 신나게 운전하며 내려갔을텐데

이젠 장거리 운전하는게 부담스러운 나이가 되어 있어

참 세월이라는게, 늙는다는게 무섭기도 하구나' 이런 생각을 하며

하나뿐인 아들 녀석

이제 본격적으로 자기만의 삶을 시작하는 것이니

이 험한 세파를 스스로 잘 헤쳐나가기를

정말 무탈하게 잘 헤쳐나가기를 바라며

전자 레인지를 바라다 본다.

 

5. 

나의 육신이 속절없이 늙어가고 망가져 가고 있음을,

부모 재산이 넉넉하여 자식 고생시키지 않고

 모든 것 다 해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나마 하게 한 

        전자레인지.

 

아내 사무실에선 별로 쓰이지 않았으나

이제는 아들 신혼 살림에 유용하게 쓰이게 될

전자 레인지.

 

3층부터 1층까지

계단으로 가지고 내려 오느라 엄청 힘들었으나

아들 내집 마련하는데 쓰일 돈

조금이나마 저축하게 도와 준 

고마운 전자레인지.

 

잠시 나 힘들었으나

다치지 않고 잘 내려왔으니  

그것으로 다 되었고,

 

이제 아들에게 갖다만 주면,

장거리 운전이라 몸은 좀 고단하겠으나 갖다만 주면

아들 신혼 살림에 유용하게 잘 쓰이겠구나

그런 생각을 하게 하는

전자레인지.

 

이 놈 이런 나의 마음과는 전혀 상관없는 

아무 표정없는 모습으로

차에 실려지기를 기다리고 있다.

 

'아드님을 위해

마지막으로 힘 한번 더 쓰시지요' 하고

말은 하는 듯 한

그런 무표정한 모습으로...

 

 

 

2015. 1. 14.

전날 아내 사무실(교실)에 있는 전자레인지 아들에게 주려고 갖고 내려오면서 느낀 생각을 적어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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