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열전(史記列傳)’의 마지막은 화식열전편이다. 재산을 뜻하는 화(貨)와 이를 불린다는 의미의 식(殖)을 합쳐 화식이라는 이름을 붙인 데서 알 수 있듯이, 화식열전은 춘추시대부터 한나라 때까지 상공업으로 부를 일군 인물들의 삶과 일화를 다룬 것이다. 오래 전 이야기지만 현대인들도 충분히 귀담아 들어둘 만한 내용이다.
사마천은 화식열전 서두에서 ‘관자(管子)’ 목민(牧民)편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을 인용한다. “창고가 가득해야 예절을 알고 의식이 넉넉해야 명예를 안다.” 먹고 사는 기본적인 생활이 풍요로워야 개인들은 바르게 행동하고 사회는 질서를 유지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런 경제사상말고도 이재(理財)의 비결을 곳곳에서 소개한다. “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으면 반드시 떨어지게 마련이고 너무 떨어지면 다시 오르기 마련이다.”“사람들이 버리고 돌보지 않을 때는 사들이고 사람들이 모두 사들이려고 할 때는 내다 판다.” 요즘 주식시장에서도 그대로 통할 만한 투자의 철칙들이다.
#화식열전 중에서 내가 특히 좋아하는 인물은 백규(白圭)라는 주나라 사람이다. 백규는 시세의 변화에 따라 거래하면서도 해마다 재산을 두 배로 불렸는데, 풍년이 들면 곡식을 사들이고 실과 옻을 내다팔았으며 흉년이 들면 누에고치를 사들이고 곡식을 내다팔았다. 성공한 사업가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백규에게서 배울 점은 그러나 이 같은 이재 수완이 아니라 살아가는 태도다.
그는 거친 음식을 달게 먹고 욕심을 억제했으며 검소하게 옷을 입고 노비들과 고락을 함께 했지만 행동해야 할 때는 맹수나 매가 먹이를 낚아채듯 했다. 백규는 이렇게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내게 사업을 배우고자 했으나 임기응변의 지혜도 없고, 결단하는 용기도 없으며, 베풀 줄 아는 어짊도 없고, 지켜야 할 것은 반드시 지키는 지조도 없는 자에게는 가르쳐 주지 않았다.” 오늘을 살아가는 기업인들 모두 새겨둘 만한 말이다.
#화식열전에는 이렇게 재미있고 교훈적인 내용들이 많다. 그런데다시 읽을 때마다 궁금해지는 것은 사마천은 왜 ‘돈 버는’ 이야기로 사기열전의 대미를 장식했을까 하는 점이다. 사기에서도 백미로 꼽히는 열전에는 모두 70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는데, 우직할 정도로 순수와 지조를 지키다 끝내 굶어 죽고 마는 백이와 숙제의 치열한 삶을 기록한 백이(伯夷)열전이 그 첫 편이다.
이어서 관포지교(管鮑之交)로 유명한 관중과 포숙아의 우정이 나오고, 춘추전국 시대의 대사상가들인 노자와 장자, 맹자와 순자, 한비자가소개되고, 병법서로 유명한 손자와 오기의 용병술이 그려지고, 합종연횡(合從連橫)의 외교 전략을 취했던 소진과 장의가 등장하고, 사면초가(四面楚歌)로 잘 알려진 항우와 유방의 대결이 펼쳐진다. 그런데 이들 영웅호걸이나 이름난 대학자들과 전혀 차별하지 않고 돈 버는 데 평생을 바친 ‘장사꾼’들을 역사를 움직인 인물들로 열전에 올려놓은 것이다.
#이로 인해 역사가 반고는 ‘한서(漢書)’에서 “이익을 존중하고 가난을 부끄럽게 여겼다”며 ‘사기’의 폐해를 지적하기도 했다. 게다가 사마천은 그야말로 돈이 원수인 사람 아닌가. 알다시피 사마천은 친구 이릉(李陵)을 변호한 죄로 한무제의 노여움을 사 극형에 처해지는데, 사형을 피할 방법은 사면의 대가로 50만전의 돈을 내는 것과 궁형을 받는 것, 두 가지뿐이었다. 모아둔 재산이 없던 그는 주변의 돈 많은 친척과 친구들을 찾아 다녔지만 끝내 실패하자 결국 남성의 상징을 제거당하고 환관이 됐다.
그는 이런 치욕과 수치를 감내한 이유를 훗날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밝혔다. “천하에 흩어져 있는 역사적 사실과 전설들을 하나씩 모으고, 과거에 살았던 인간들의 활동과 사건을 깊이 분석해 그 진상을 고찰하고 성공과 실패의 원리를 구명하기 위함이었다.”그 결과물이 바로 사기인데, 그는 열전의 마지막에 자신에게는 원수와도 같았던 부자들을 다뤘던 셈이다.사마천은 화식열전을 이렇게 마무리한다. “부를 일구는 데는 정해진 일이 없고 재물에도 주인이 없다. 재능 있는 자에게는 재물이 모이고, 능력이 없는 자에게서는 순식간에 흩어지고 만다.”
* 출처:머니투데이 박정태 경제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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