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베트남 하노이를 다녀왔다. 그곳에서 건너다 본 한반도는 자욱한 먹구름이었다. 가장 먼저, 우리의 대졸 실업은 결코 줄지 않으리란 느낌이 들었다. 국립 하노이대학은 베트남 최고 명문이다. 찻집에서 만난 하노이대생들은 “월급 66만원(600달러)만 받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았다. 국영기업은 안정적이지만 월급이 많지 않아 외국 기업에 관심이 많았다. 현지 삼성 관계자는 “인터넷과 글로벌화로 아시아 대학생들의 수준이 비슷해졌다”며 “하노이대는 한국의 SKY만 빼면 어디에도 손색이 없는 대학”이라 귀띔했다. 삼성이 베트남에 수천 명 규모의 대형 연구센터를 추진하는 배경이다. 앞으로 우리 대학생들은 몸값은 낮고 능력은 뛰어난 베트남 학생들과 경쟁해야 한다.
하노이의 삼성 휴대전화 공장은 고작 103명의 한국 관리자들이 무려 10만3296명의 베트남 근로자를 이끌고 있다. 점심 시간이면 수천 명씩 번갈아 축구장만한 식당을 가득 메우는 광경이 놀라웠다. 모두 한 손에 젓가락, 다른 손엔 숟가락을 들고 재빨리 식사를 마쳤다. 정밀한 스마트폰 조립에 알맞은 손재주다. 시력도 좋아 안경을 쓴 사람이 드물다. 여기에다 현지 고졸 여직원의 월 급여(초과근로수당 포함)는 353달러로 한국(3715달러)의 10분의 1, 중국의 30% 남짓이다. 이미 삼성은 휴대전화 수출 물량의 약 40%를 하노이에서 생산한다. 일본의 엔저와 중국 샤오미 등 중저가폰의 추격을 뿌리치려면 베트남 생산 비중을 더 높여갈 수밖에 없다.
하노이에 머무는 동안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 건 개성공단이었다. 가동 10년째인 개성공단 근로자는 5만3900명으로 삼성 하노이 공장의 절반에 불과하다. 생산액은 비교조차 어렵다. 지난해 개성공단 매출액은 4억6996만 달러였지만, 삼성 하노이 공장은 그 50배가 넘는 236억 달러를 수출했다. 개성공단은 값싼 의류·봉제가 중심이고 삼성 하노이 공장은 고부가가치의 스마트폰이 주력이다. 임금도 차이가 많이 난다. 개성공단의 월 평균 임금은 141.4달러로 하노이 공장의 절반이 안 된다.
만약 삼성 스마트폰 공장이 개성으로 갔다면 어떻게 달라졌을지 상상해 본다. 하노이에는 삼성 현지근로자 10만 명에다 동반 진출한 협력업체 근로자도 10만 명이 넘는다. 2~4차 협력업체까지 합하면 베트남 고용인력은 줄잡아 80만 명을 웃돈다. 뒤집어 말하면 당장 북한에 80만 개의 일자리가 생긴다는 뜻이다. 또한 삼성은 베트남 국내총생산(GDP)의 28%를 차지할 만큼 중요한 기업이다. 최근 LG전자도 하이퐁에 가전제품·휴대전화를 생산하는 축구장 114개 크기(80만㎡)의 사상 최대 글로벌 생산기지를 구축했다. 만약 삼성과 LG가 개성공단에 갔다면 북한의 경제 규모는 단박에 2~3배 팽창했을 것이다.
한국 자본은 앞다투어 탈출구를 찾고 있다. 한때 중국으로 갔다가 이제 베트남으로 몰리고 있다. 그 대안이 개성공단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물론 개성공단이 하노이처럼 글로벌 수출기지가 되려면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우선 6자 회담이나 미국과의 북핵 협상을 통해 경제제재부터 풀어야 한다. 대규모 해외 직접 투자와 국제통화기금(IMF)의 지원을 받으려면 주요 선진국들과 무역협정 체결도 중요하다. 당장은 개성공단의 3통(통행·통관·통신) 문제와 북한의 경직적인 노무관리부터 풀어야 한다.
하노이에서 보면 남북한이 가야 할 길은 분명하다. 그 공통분모는 ‘경제하기 좋은 나라’다. 청년 실업은 규제완화가 해법이다. 그럼에도 귀국길 신문에는 경제활성화 법안이 ‘국민 해코지 법’이라며 두들겨 맞는 기사가 넘쳐났다. 북한에서 흘러나오는 건 처형설·독살설 등 끔찍한 뉴스뿐이다. 부디 북한 김정은 제1위원장이 첫 해외 방문지로 베트남을 찾았으면 한다. 아버지 김정일도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에게 ‘도이머이(개혁·개방)’를 배우겠다고 약속한 적이 있다. 우리 야당 지도자들도 하노이에 가보시라. 한국의 자본과 평균 나이 28세의 젊은 베트남이 연출하는 역동적 경제박동이 느껴질 것이다. 지금 베트남은 덥지만 충분히 가볼 가치가 있는 곳이다.
* 중앙일보 - 이철호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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