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주 항일 투사들이 생명처럼 다루었던 무기들
《 영화 ‘암살’에서 독립군 저격수 안옥윤(전지현)은 염석진(이정재)과 함께 김구를 만나러 가다 일본군 기관총병을 잇달아 저격한다. 제작진에 따르면 안옥윤의 손에 들린 것은 러시아제 소총 M1891 ‘모신 나강(Mosin-Nagant)’. 실제 일본군과 전투를 벌이던 독립군들이 자신의 생명처럼 다뤘을 무기는 어떤 것이었을까. 》
일제강점기 만주지역에서 활동한 독립군 무기를 본격적으로 조명한 박환 수원대 교수의 최근 논문 ‘3·1운동 직후 만주지역 독립군과 무기’에 따르면 소총으로는 안옥윤이 썼던 ‘모신 나강’이 가장 많았다. 다만 영화에 등장한 것과 달리 대부분은 저격용 스코프(조준경)가 없는 모델로 추정된다. 박 교수는 “이 총은 총신을 짧게 만든 ‘카빈’으로도 만들어져 독립군 기병들에게 적격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독일제 마우저 소총이나 일본군으로부터 노획한 일본제 30식, 38식 소총도 사용됐다.
주목되는 것은 독립군의 무기에 권총이 많다는 것. 일본 측 정보 기록에는 독일제 ‘루거 P08’ 권총이 많이 사용됐다고 나온다. 이 총은 참호전이 잦았던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이 사용했는데, 적과 근접한 상태에서 속사하기 좋다. 박 교수는 “일부 기록에는 루거 P08보다 독일제 마우저(모제르) 권총이 많다고 나와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했다. 마우저 권총은 봉오동과 청산리 전투에서 홍범도 장군이 썼던 권총이다.
박 교수에 따르면 3·1운동 이후 1920년 북간도 지역 독립군들의 무기 보유 현황은 놀라운 수준이다. 일본 외무성 자료에는 그해 8월 중순 대한군정서(사령관 김좌진)가 대원 약 1200명에 탄약 24만 발, 권총 150정, 수류탄 780발, 기관총 7문을 확보하고 있었다고 나온다. 소총은 기록에 따라 다르지만 320∼1800정에 이른다. 같은 해 7월 일본 측 정보보고에는 “근래 포 2문(제식 미상)이 대한군정서에 도착하게 돼 있다”는 내용도 있다.
이들 무기는 주로 내전을 벌였던 러시아혁명군과 제정 러시아 측의 백군 등에서 도입됐다.
“2, 3일 내로 갈 줄 알았더니 무기 매수에 실패했다는 통지가 왔다. 화폐가 개혁돼 돈이 못 쓰게 된 까닭이다. 운반대 200여 명의 식량도 문제고 같이 온 농민들의 농사와 집안일도 낭패다. … 일본군병 참소(站所)가 30여 리 전방에 있고 마적들이 후방 20여 리 산중에 있는데 … 어느 때 습격당할지 모른다.”
1920년 6월 러시아 백군으로부터 구입한 대한군정서의 무기를 가지러 왕칭 현에서 블라디보스토크 남쪽 해안까지 다녀온 경비대 분대장 이우석의 기록이다. 무기 반입도 전투만큼이나 목숨이 위태로운 일이었다.
논문에 따르면 독립군의 무기 반입 경로는 ①우수리스크→왕칭 현 오지 ②추풍(수이푼)→왕칭 현 오지 ③남부 연해주→훈춘 현 등 3가지로 추정된다. 일본 측 정보 기록에는 “근래 아무르 만 해안으로 향하는 대형 선박의 4할은 반드시 총기를 운반” “마차로 얼음판 위를 통과” “주정을 밀수입한 대금으로 아무르 만을 따라 수송” “썰매 8대에 실어서 홍범도 처에 반출” 등 독립군의 무기 반입 방법이 묘사돼 있다.
박 교수는 “일본 정보 기록에 북로군정서가 체코군으로부터 총기 5만 정과 기관총, 수류탄 5000개 등 대규모로 무기를 밀반입하고 있다는 내용도 나온다”며 “무기 보유 실태가 파악돼야 독립군 전력과 전투의 면모가 구체적으로 드러날 것”이라고 말했다.
* 동아일보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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