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다산 / 김상홍 저 글항아리(2010)
< 저자 소개 >
충남 금산 출생. 단국대학교 법학과 졸업.
고려대학교 문학박사 취득.
다산학 연구, 다산학 총서 7권 집필.
국문학자
문 : 오늘 소개할 책은?
지니 : 김상홍님의 <아버지 다산>을 소개할까 한다. 우리는 다산 정약용을 조선후기 실학을 집대성한 대단한 학자로 알고 있다. 그러나 다산도 아버지이자 시아버지였고, 작은아버지였다. 이 책은 척박한 유배지에서 자식들을 혹독하게 원격교육한 강인한 아버지 다산, 가난 속에서도 도덕성을 지킨 아버지 다산, 9명의 자녀 중 6명의 자녀를 먼저 보내고 가슴에 묻은 아버지 다산, 오랜 유배생활이 끝나고 고향에 돌아갈 날이 다가올 즈음 젊은 며느리가 요절하고, 자신의 학문을 계승 발전시킬 후계자로 여겼던 조카 두 명을 허망하게 잃었다. 한 나라의 학술문화사를 찬란하게 빛낸 학자이기 이전에 비극적인 아버지였던 다산의 따뜻한 사랑과 정 그리고 시리고도 아린 슬픔과 한을 그의 학문적 생애와 연관시켜 조명한 책이다.
문 : 유배생활이 18년이나 되었는데 어떻게 교육이 가능했을까?
지니 : 기구한 인생사에 다산은 고민만 하지 않았고, 괴로워만 하지 않았다. 궁핍한 유배지에서 항상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다정하게 더러는 혹독하게 편지와 가계로 자식들을 가르쳐 내일을 도모하고 가끔은 자식들을 유배지로 불러들여 함께 공부를 하곤 했다. 다산이 유배지에서 아들에게 보낸 편지는 모두 26통이고, 가계는 모두 9편이다. 모두 폐족의 생존법과 가산을 일으킬 만한 실용적인 경제교육, 그리고 자신의 학문을 계승하고 후일을 위해 학문에 전념하기를 염원한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자신으로 인해 폐족이 된 두 아들에게 생존교육을 치열하게 시키며 복권될 그날을 대비하게 하였다. 폐족의 생존전략은 훌륭한 문장가와 선비가 되는 것이다. 폐족은 오직 벼슬길만 막혀있을 뿐 성인과 문장가가 되고 진리에 통달한 선비가 되기에는 오히려 크게 나은 조건이라고 강조했다.
“폐족으로서 글을 배우지 않고 예의가 없다면 어찌 하겠냐, 모름지기 보통 사람보다 백배의 공력을 더해야 겨우 사람 축에 들게 될 것이다. 나는 고생이 매우 많다. 그러나 너희들이 책을 읽고 몸가짐을 잘한다는 말을 들으면 이로써 근심이 없어진다.”고 먼 곳에 있는 자식들을 격려했다. 다산은 자식들을 가르칠 때 좋은 것과 나쁜 것, 가릴 것과 가리지 않아도 될 것, 중요한 것과 덜 중요한 것을 구분해서 일러주었으며 구체적인 예를 들어 확실히 이해할 수 있게 했다. 술을 잘 마시는 둘째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내가 술을 반 잔 이상 마시는 것을 본 적이 있느냐”고 운을 뗀 뒤 “술맛이란 입술을 적시는 데 있는 것이고, 술의 정취는 살짝 취하는 데 있다”고 말한다. 이것은 사대부, 선비, 공부하는 학자로서 술을 대해야 하는 정도이다. 술을 취하도록 마시는 게 아니라 공부의 독을 풀고, 인간의 정신을 적절하게 고양시키는 데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급기야 “제발 하늘 끝 변방에 있는 이 애처로운 애비의 말을 따르도록 하여라. 이 애비가 빌고 빈다”고 까지 쓴다.
문 : 긴 시간 유배를 떠나 있었고, 벼슬길도 막혔으니 가난했을텐데... 경제교육은 어떻게 했나?
지니 : 유배를 간 지 5년 만에 큰아들 학연이 강진에 온 것을 <학가래 휴지보은산방유작>이라는 시로 적었다.
손님이 와 문을 두드리는데 / 자세히 보니 바로 우리 아들이었네 / 수염이 더부룩이 자랐는데
미목을 보니 그래도 알만 하였네 / 너를 그리워한 지 사오년에 / 꿈에 보면 언제나 아름다웠네
장부가 갑자기 앞에서 절을 하니 / 어색하고 정도 가지 않아 / 안부형편은 감히 묻지도 못하고
우물쭈물 시간을 끌었다네 / 입은 옷이 황토 범벅인데 허리뼈라도 다치지나 않았는지
종을 불러 말 모양을 보았더니 / 새끼 당나귀에 갈기가 나 있었는데 / 내가 성내 꾸짖을까봐서
좋은 말이라 탈 만하다고 하네 / 말은 안해도 속이 얼마나 쓰리던지 / 너무 언짢고 맥이 활 풀렸다
당나귀는 짧은 거리를 움직이거나 골목에서 짐을 나를 때 애용했다. 반면 먼 길을 갈 때는 당나귀보다 좀 비싸더라도 대부분 말을 탔다. 장거리 여행에서 당나귀에 많은 짐을 싣고 사람도 같이 타고 움직이기는 불가능하다. 결국 돈이 없는 사람들이 짐만 어찌 당나귀에게 지우고 자신은 걸어서 여행을 하게 된다. 다산의 큰아들 학연이 타고 온 것은 당나귀 중에서도 새끼였다. 요즘으로 보자면 자전거조차 안되는 도보여행을 한 것이다. 오랜만에 찾아뵙는 아버지 갖다드리라고 집에서 챙겨준 음식이며 옷가지를 날라야 했으니 없는돈에 새끼당나귀를 구해서 온 것이다. 아들의 옷이 황토범벅이 된모습을 보고 아버지는 말을 잇지 못했고 아들은 “좋은 말이라 탈 만하다”고 대답했으니 세상의 버림을 받은 부자의 가난한 모습이 너무나 아리고 슬프다. 몰라보도록 변한 아들들을 만날 때마다 두 아들이 수시로 강진을 오갈 수 있을만큼의 경제적 여건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두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먹고사는 방편과 경제교육을 빼놓지 않는다.
“큰 흉년이 들어 굶어죽은 백성들이 수만명이나 되므로 하늘을 의심하는 사람도 있으나, 내가 굶어죽은 사람들을 살펴보니, 대체로 모두 게을렀다. 하늘은 게으른 자를 미워하여 벌을 내려 죽이는 것이다. 내가 벼슬은 했으나 너희들에게 물려줄 전답은 없고 오직 두 글자의 부적이 있으니 이는 삶을 넉넉히 하고 가난을 구제할 수 있기에 너희들에게 주노니 야박하다고 하지 말거라. 한 글자는 부지런할 근자요, 또 한 글자는 검소할 검자이다. 두 글자는 좋은 전답이나 비옥한 토지보다 나은 것이라서 일생동안 수용해도 다 쓰지 못할 것이다. 귀하고 부유한이 극도에 다다른 사군자일지라도 집안을 다스리고 몸을 바르게 하는 방법으로 근과 검 두 글자를 버리고는 손댈 곳이 없을 것이니 너희들은 반드시 가슴깊이 새겨두도록 하라.”
문 : 그렇다면 다산의 자녀교육은 어떤 결과를 거두었을까?
지니 : 추사 김정희의 제자인 이상적이 다산의 큰아들 정학연이 운명하자 쓴 글이 있다. “문장은 능히 나라를 빛내고 의술은 나라를 치료할 만하다”라고 한 것을 보면 장남 학연이 문장과 의술에 뛰어났음을 알 수 있다. 차남 정학유가 펴낸 <시명다식> 또한 그들의 학문세계를 알 수 있다. 다산은 유배의 역경 속에서도 자식교육을 위해 애쓴 강인한 아버지였으나, 자신으로 인해 폐족이 된 두 아들에게는 빚을 졌다. 유배지에서 가계와 서간으로 원격교육했다고는 하지만 아들에게 진 부채가 갚아졌던 것은 아니다. 낡고 부패한 조선왕조가 만든 비극이라 할 수 있다. 30여년 동안 다산을 연구한 저자 김상홍은 비록 다산이 자식들에게 좋은 환경을 물려줄 순 없었지만 실학을 집대성하여 우리나라 지성사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던 즉 다산은 자신을 유배보낸 조선왕조의 학술사에 “실학의 집대성”이라는 미증유의 선물을 안겼다. 그러므로 조선은 다산 삼부자에게 큰 빚을 진 셈이다. 저자 김상홍은 그동안 다산학 연구서 7권을 썼다. 여덟 번째에 해당하는 이 책은 다산의 아름다운 아버지 정을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이전의 연구들을 쉽게 풀어쓰는 데 주력했다고 한다. 최근 가정이나 사회에서 아버지의 위상이 점점 작아지는 세태에 이 책은 아버지란 존재가 얼마나 위대한 지 알려줄 것이다. 또한 우리 주변의 아버지가 바로 다산과 같은 아버지임을 깨닫게 해줄 것이다. 다산 자신이 지극히 평범한 한 사람의 아버지였기 때문이다. 또한 부모로서 어떻게 자녀교육을 해야 하는지 그 기본 자세를 다시 돌아볼 수 있는 생각거리들이 있으며, 부정의 아름다운 세계를 다산이라는 훌륭한 거울을 통해 비춰보는 기쁨도 있으리라 생각된다. 혹 아버지 노릇을 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겠다.
- The En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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