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교
「겨울 금파리에 가야겠네」
금파리에 가야겠네
금파리는 언제나 낯빛 파리하게 질려 있어
마음 헐거워져 몸이 삐걱거리는 날은 금, 금파리가 생각나
임진강 물길은 구불구불 지탱하기 힘겨운 추위에 떠밀리며,
정신만 새파랗게 응고되어 있으리
흔들리며 언 강물 위에 텅 빈 손 적시면
누군가의 빈 운명도 비치리
손금 얼기설기 낮은 산 구릉을 구도처럼 지나
비틀비틀 나 금파리로 가봐야겠네
서울의 가벼움이여 나는 너무 얇아서 덥다
얼음 속 민물장어들은 속살을 채울 것이고
더는 견딜 수 없는 냉담과 한기, 훈훈한 유배의 나라
눈 시린 풍경을 만나 서늘한 들판이 되리, 나는
흰눈 소담하게 맞고 서 있을 가문비나무 이마가 되리
오늘은 황량한 겨울 벌판 끝에서 추위에 떨고 서 있을
누구, 한 사람
벌거벗은 나를 만나야겠네
*금파리는 경기도 파주시 파평면에 있다.
시_ 이경교 - 이경교(1958~ )는 충남 서산에서 태어났다. 1986년 월간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하고, 시집으로 ?이응평전?, ?꽃이 피는 이유? 등이 있다. 현재 명지전문대학 문예창작과 교수로 있다.
낭송_ 성경선 - 배우. '한여름밤의 꿈', '가내노동' 등에 출연.
배달하며
금파리는 낯선 지명인데요. 임진강 물길 지척 파주 어디쯤에 있는 북쪽 마을인가 봅니다. 매운 추위가 머무는 곳. ‘겨울 금파리’는 “낯빛 파리하게 질려” 있고, “정신만 새파랗게 응고”되어 있는 곳. 하늘은 시퍼렇고, 그 아래 들판은 헐벗은 채 펼쳐져 있고, 언 강물 속에는 민물장어들이 헤엄치는 금파리! 그 시린 풍경 속에 서면 나태한 정신은 한파를 견디며 수직으로 꼿꼿한 “가문비나무 이마” 같이 단단해질 수 있을까요. 무른 정신에는 담금질이 꼭 필요해요. 겨울이야말로 무딘 정신의 날을 벼릴 수 있는 계절! 한파가 몰아치는 곳, 그 금파리에 가면 “황량한 겨울 벌판 끝에서 추위”에 떨며 제 이마를 단단하게 담금질 하고 서 있는 누군가를 만날 수 있을까요.
문학집배원 장석주
출전_ 『수상하다, 모퉁이』(미네르바)
'♣ 문학(文學) 마당 ♣ > - 우리 현대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경림, 「먼 데, 그 먼 데를 향하여」 (0) | 2016.01.23 |
---|---|
우영창, 「풍경」 (0) | 2016.01.23 |
민영, 「기차를 잘못 내리고」 (0) | 2016.01.23 |
정현종, 「이런 시야가 어디 있느냐」 (0) | 2016.01.22 |
정끝별, 「처서」 (0) | 2016.01.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