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학주
「만년(晩年)」
조용한 동네 목욕탕 같은
하늘 귀퉁이로
목발에 몸을 기댄 저녁이 온다
만년은 갸륵한 곳
눈꺼풀 처진 등빛, 깨져간다
눈꺼풀이 맞닿을 때만 보이는 분별도 있다
저녁 가장자리에서
사랑의 중력 속으로 한번 더 시인이여,
외침조차 조용하여 기쁘다
하늘 귀퉁이 맥을 짚으며
물 흐르는 소리에 나는 웃음을 참는다
땅거미와 시간을 보내는
혼자만의 땅거미 무늬가 내게 있다
시·낭송_ 황학주 - 1954년 광주에서 태어났다. 1987년 시집 『사람』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내가 드디어 하나님보다』, 『갈 수 없는 쓸쓸함』, 『늦게 가는 것으로 길을 삼는다』, 『너무나 얇은 生의 담요』, 『루시』, 『저녁의 연인들』, 『노랑꼬리 연』, 『某月某日의 별자리』, 『사랑할 때와 죽을 때』 등이 있다.
배달하며
우리는 모두 여행자. 점점 걸음이 느려지는 여행자. 조금씩 작아지는, 목소리도 작아지고 숨소리도 작아지는 여행자. 만년이라는 곳으로 갑니다. 이 여행자는 가면서 자주 하늘을 보게 됩니다. '하늘의 귀퉁이'의 '맥을 짚기도' 합니다. 그곳이 이 여행자가 갈 곳이라고 배워왔기에 정말 그 하늘이 있는지 진맥을 해보는 것이지요. 답은 그저 물소리로 흘려보낼 뿐입니다. 그저 웃음이 나올 뿐입니다. 만년에 닿으니 해가 졌습니다. 온몸이 땅거미가 되었습니다.
어머니가 '만년'에 닿았다는 기별에 나도 '만년'에 미리 가봤습니다. 어머니 덕에 '만년'에 가보니 다른 많은 만년들이 땅거미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곳은 항구여서 뱃고동 소리가 수시로 들려왔습니다.
문학집배원 장석남
출전_ 『사랑할 때와 죽을 때』(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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