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감] 아일랜드가 영국 식민통치를 받고 있던 기간 중인 1845년부터 1850년 사이에 일어난 대기근에 대하여 써놓은 책. 아일랜드는 이 기간 동안 100여만 명이 굶어 죽고 200여만 명이 미국, 캐나다, 영국 등으로 이주했다고 한다. 책은 250여쪽 정도의 적은 분량인데다가 내용을 청소년들도 읽을 수 있도록 쉽게 써놓은 탓에 책장이 쉽게 넘어간다.(몇 시간만 들이면 다 읽을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좀 더 깊이있게 쓰여졌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는데 책 뒤에 소개해 논 참고 서적들을 보면 저자가 일부러 쉽게 쓴 것이니 어쩔 수 없는 일. 아일랜드는 이 당시 기근으로 인하여 절반으로 줄어든 인구가 현재도 유지되고 있다니 그 당시의 참상이 어땠을지 절로 상상이 된다. 너무 쉽게 서술해놨지만 기근에 대해 대책을 세워야 할 영국 관료 -총리 및 담당관-들의 안이한 대처는 이 대기근이 천재에서 비롯됐지만 결과적으로는 인재로 인해 커졌다는 내용을 보면서 남의 나라 식민통치를 받는 것이 얼마나 비참한 일인가를 새삼 깨달았다. 식민통치가 아니라 자국인에 의한 통치일지라도 지도자를 잘못 만나면 결과는 마찬가지겠지만.(북한, 스탈린 치하의 소련, 모택동 치하의 중국, 히틀러 치하의 독일 등). 바로 옆에서 자국인이 굶어 죽고 있는데 식량을 영국 등 다른 나라로 수출하는 사람들은 또 무엇인지 새삼 인간의 부정적인 면을 볼 수 있어 소름이 끼친다. (굶어죽는 사람들을 구제하려고 애쓴 사람들도 있지만 역부족.)
[아래는 출판사, 언론사, 독자 등의 이 책 소개 글]
"검은 감자"는 다양한 사료에서 발굴한 대기근 생존자와 그 후손들의 증언 등을 토대로 아일랜드 민중이 가슴으로 기억하는 대기근을 생생하게 재구성한 역사책이다. 충격적인 일화와 가슴 시린 회고는 직접적인 고발이나 비판 없이도 이 엄청난 재앙이 불평등한 사회 구조로 인해 발생했고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었던 인재(人災)임을 자연히 깨닫게 한다.
목차
들어가며 7
1장 검은 감자다, 검은 감자 12
2장 특별히 남겨 둔 감자 29
3장 조금만 도와주시기를 50
4장 허기진 까마귀 떼처럼 74
5장 감자가 자랄 때까지만 99
6장 열병이라니요, 하느님, 가호를 베푸소서 126
7장 참혹하게 허물리는 집들 146
8장 머나먼 이주길 164
9장 전쟁은 어디서 시작될까 190
10장 여왕 폐하 맞이하러 코크에 가세나 213
나오며 235
아일랜드의 주와 주요 항구 도시 지도 244
감사의 말 245
‘옮긴이의 말’을 대신하여 247
아일랜드 대기근 연표 256
참고 자료 및 출처 260
미디어 서평(총1건)
- 재앙과 맞닥뜨린 인간의 삶과 용기
- <검은 감자>수전 캠벨 바톨레티 지음,곽명단 옮김,돌베개 펴냄 역사 시간에나 이따금 들춰본 세계사 책에서도 스치듯이 언급되었던 것 같다..
- 시사INLive 2015.06.24
- 재앙과 맞닥뜨린 인간의 삶과 용기
- 시사INLive 2015.06.24
- <검은 감자>
수전 캠벨 바톨레티 지음,
곽명단 옮김,
돌베개 펴냄 역사 시간에나 이따금 들춰본 세계사 책에서도 스치듯이 언급되었던 것 같다. 1845년부터 5년 동안 아일랜드 대기근이 있었다고. 800만명이 넘는 인구 중에 100만명이 사망하고, 200만명이 굶주림과 전염병을 피해 이민을 떠났다는 이 역사적 사건이 궁금했다.
저자는 생존자들의 증언 기록 등 여러 자료를 통해 당시 참상을 생생하게 복원해냈다(서술은 구체적이고, 일화는 때로 애틋하다). 수확한 감자가 심할 때는 4분의 3이 썩었고, 어떤 해는 수확량이 4분의 1밖에 되지 않았다. 감자가 주된 식량이었던 농민들은 굶주릴 수밖에 없었다. 대재앙이 발생했으니 나라님도 어찌할 수 없었겠지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아일랜드 들판에는 밀, 귀리, 보리, 호밀 등이 가득했다. 그 곡식은 지주의 것이었다. 농민들은 손도 댈 수 없었던 그 곡식은 영국과 다른 나라로 수출되었다. 사람이 굶주려 죽어나가는 판에 지배층은 자유방임주의를 신봉하고 있었다. 아일랜드 대기근은 인재였다.
↑ : <검은 감자>수전 캠벨 바톨레티 지음, 곽명단 옮김, 돌베개 펴냄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자기가 쓴 책이 독자에게 용기를 주었으면 좋겠다고. '역사적 사실에 관해 비판적으로 생각하고 의문점을 물을 용기, 사회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실존적으로나 자신이 맡은 책임을 곰곰 생각해보고 그에 따라 행동할 용기, 그리고 무엇보다 당당하게 맞설 용기.' 뜻하지 않은 질병에 맞닥뜨리게 된 우리에게도 이런 용기가 필요한 게 아닐까.
차형석 기자 / ch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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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역사상 가장 참혹한 재앙 중 하나로 기록된 아일랜드 대기근
생존자와 후손들의 눈과 입을 빌려 당시의 참상을 적나라하게 그린 세밀화
지옥 같은 현실에서도 서로 돕고 희생하며 불의에 맞선 아일랜드인 이야기
먼 옛날 아일랜드에도 살기 좋은 때가 있었지
너도 아니고 나도 아니지만 누군가는 좋았던 시절이……
“심장이 벌떡거리는 역사책이다.” _스쿨 라이브러리 저널
★로버트 F. 시버트 상 수상(2002년) ★전미 영어 교사 협의회(NCTE) 주관 오르비스 픽투스 논픽션 상 수상(2002년) ★골든 카이트 상 논픽션 부문 상 수상(2002년) ★미국 도서관 협회(ALA) 선정 청소년 최우수 도서 ★미국 도서관 협회(ALA) 선정 주목할 만한 어린이 도서 ★뉴욕 공립 도서관 선정 청소년 추천 도서 ★주목할 만한 청소년 사회과 도서
1845년 아일랜드에 재앙이 닥쳤다. 하룻밤 사이에 까닭 모를 전염병이 돌아 농가의 거의 유일한 식량이었던 감자가 검게 썩기 시작했다. 감자 전염병은 5년간 되풀이되었고, 가난한 아일랜드인 100만 명이 굶주림과 질병에 시달리다 죽었다. 대대로 살아온 고국을 쫓기듯 떠난 사람도 1910년까지 500만 명에 달했다. 오늘날 아일랜드 인구는 약 400만 명으로, 1845년 당시 인구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 아일랜드를 완전히 바꿔 버린 이 역사적 사건을 오늘날 우리는 ‘아일랜드 대기근’이라고 부른다.
『검은 감자: 아일랜드 대기근 이야기』는 다양한 사료에서 발굴한 대기근 생존자와 그 후손들의 증언 등을 토대로 아일랜드 민중이 가슴으로 기억하는 대기근을 생생하게 재구성한 역사책이다. 충격적인 일화와 가슴 시린 회고는 직접적인 고발이나 비판 없이도 이 엄청난 재앙이 불평등한 사회 구조로 인해 발생했고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었던 인재(人災)임을 자연히 깨닫게 한다. 아울러 참극 속에서도 끝내 희망을 찾는 인간의 의지와 고귀한 희생, 실패할지언정 사회를 바꿔 보려 애쓴 이들의 열정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
■ ‘아일랜드 대기근’ 이후 160여 년, 인류는 여전히 굶주리고 있다
태산보다 넘기 힘들다는 ‘보릿고개’도 이제는 노인들의 서글픈 추억 속에만 존재하는 단어 같다. 오히려 1일 1식이니 간헐적 단식 같은 ‘덜 먹기’ 운동이 주목받는 터라, ‘기근’은 언뜻 우리와 무관한 문제로 생각된다. 그러나 지금도 세상 한쪽에서는 아이들이 굶주림으로 죽어 가고, 흙을 물에 개어 먹는 사람들이 있다. 더욱 의아한 것은 그 굶주린 사람들의 땅에서도 계속해서 곡식이 자라고 가축이 크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일랜드 대기근’은 100년도 훨씬 전 먼먼 나라에서 일어났던 일이지만, 굶주림과 질병, 죽음, 혼돈과 봉기 등 일련의 과정은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되풀이되고 있다. 이 책은 아일랜드 민중이 자기 삶에서 직접 보고 듣고 경험한 진짜 대기근 이야기를 전한다. 이를 통해 독자가 오늘날에도 반복되는 불합리한 ‘굶주림’에 좀 더 관심을 갖고, 이러한 문제들의 근본적인 원인과 극복 방법에 대해 고민하도록 이끈다.
■ ‘아일랜드 대기근’은 정말 불가항력의 자연재해였을까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된 감자 역병은 분명히 당시로서는 원인도 찾기 어려운 재해였다. 요정들이 싸워서 감자가 검게 변했다고 믿고 감자 창고 앞에 성모상을 가져다 두는 게 사람들이 생각할 수 있는 최선의 방책이었다. 풍작일 때 감자를 함부로 내버려서 천벌을 받는다고 믿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렇지만 당시 열네 살이던 디어뮈드 오도노번 로사가 생각하기에 비난받을 대상은 따로 있었다.
감자 농사는 완전히 망쳤지만, 디어뮈드네는 아직 수확할 밀이 조금 남아 있었다. 팔아서 소작료를 내려고 재배하는 곡식이었다. 그런데 밀을 베어 낟가리를 쌓자마자 지주가 사람을 보냈다. ‘파수꾼’이라고 부르는 지주네 일꾼이 소작료를 받아 내려고 버티고 서서는 밀에 손도 못 대게 했다. (19쪽)
당시 아일랜드는 영국의 지배 아래 있었다. 아일랜드 농민의 대다수는 가톨릭을 믿는 가난한 소작농이었고, 그나마 소작할 땅도 없어 날품을 팔아야 하는 농업 노동자도 허다했다. 신교를 믿는 영국인이나 영국계 아일랜드인 지주, 신교로 개종한 아일랜드 지주들이 이들 위에 군림하며 비싼 소작료를 거둬들였다. 농민과 노동자 들은 역병이 돌아 감자 농사를 망치고 당장 끼니도 때울 수 없는 마당에 소작료까지 감당해야 했다.
아일랜드 들판에는 곡식이 가득했다. 밀, 귀리, 보리, 호밀 등 가루를 내어 빵이며 죽이며 케이크로 만들어 먹을 곡식들이 자라고 있었다. 여기에서 대기근의 아주 커다란 모순 한 가지를 깨닫게 된다. 아일랜드 백성이 주식으로 삼는 감자 농사를 망쳐 굶주림에 시달리는 동안, 다른 한편에서 노동자들은 입에 댈 수도 없는 곡식들이 영글고 있었다. 그것은 지주와 농민 것이었다. 굶주린 노동자들은 그저 곡식을 베고 털고 빻아 수레에 싣고 시장으로 내가는 것만 지켜보았다. 그 곡식은 영국과 다른 나라에 팔 것들이었다. (79쪽)
영국 정부는 아일랜드 민중을 구제하는 일에 냉담했다. 자유방임주의를 신봉하고 곡물법으로 지주와 상인의 이익만을 보장하던 시절이었다. 민족과 신앙이 다르다는 이유로 아일랜드인들에 대해 편견 어린 정책을 펼쳤고, 대책 마련에 늑장을 부렸다. 영국 정부가 세운 구빈원과 수프 식당, 공공근로 사업으로는 아수라장이 된 아일랜드를 구제할 수 없었다. 너무 늦은 대처였고, 시설이며 환경이 너무나 열악해 실효성이 없었다. 기근과 고된 노동으로 삶이 무너진 사람들 사이에는 열병까지 돌았다. 그 와중에 지주들은 구빈원에 낼 세금을 아끼기 위해 자기 소작농들을 싼값에 외국으로 이주시켰다. 구빈원에서도 일터에서도 배에서도 굶주리고 병든 아일랜드인들이 숱하게 죽어 나갔다. 아일랜드 대기근은 기근과 역병 그 자체보다 지배층의 탐욕과 영국 정부의 미온한 대처가 화를 키운 참사였다.
한편, 영국 사회 일각에서는 조혼이나 대가족 풍습 등을 들어 아일랜드인들이 대기근을 자초한 것이라며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그러나 저자는 여러 일화들을 통해 아일랜드인들이 가족과 전통을 중시했기 때문에 오히려 어려울수록 서로 돕고 살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아일랜드인은 배타적이고 거칠다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너그럽고 인정이 많았다. 아무리 가난에 쪼들려도, 여행자든 거지든 손님을 문전박대하는 법이 없었다. 예수가 이런저런 모습으로 손님처럼 찾아온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손님을 밖에 세워 두고 문을 닫아 버리는 짓은 자신이 들어갈 천국의 문을 예수에게 닫아 버리게 하는 것과 다름없는 위험한 행동이라고 믿었다. “우리 화로에는 특별히 남겨 둔 따끈한 감자가 있다네. 축축한 습지와 진창길을 걷는 나그네 몫이라네.” 이 옛날 노랫말에서 그런 풍속을 잘 엿볼 수 있다. (45쪽)
이는 기근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우리가 은연중에 품을 수도 있는 편견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한다. 그들이 잘못을 저질러서 혹은 무능하고 미개하기 때문에 굶주리는 게 아닌가 하는 편견 말이다. 대기근 동안 영국 정부가 내놓은 일련의 정책으로 인해 구제되기는커녕 집이며 나라까지 잃은 아일랜드 민중의 기막힌 사연들은 편견이 적대감이나 무관심으로 이어질 때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분명하게 보여 준다.
■ 책 속에서 생생하게 되살아나는 아일랜드 대기근의 현장저자는 대기근 당시 민중의 삶이 어떠했는지 생생하게 보여 주기 위해, 디어뮈드 오도노번 로사, 니컬러스 커민스, 엘리자베스 걸리 플린 등 생존자와 후손들의 목소리를 그대로 살려 일화를 재구성하고, 구전 민담과 민요, 『픽토리얼 타임스』와 『일러스트레이티드 런던 뉴스』 등 당시 신문에 실렸던 기사와 삽화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한다.
허기진 까마귀 떼처럼 밭에서 닥치는 대로 푸성귀며 순무를 캐 먹는 아이들, 발에 쇠고랑을 차더라도 끼니를 때울 생각에 일부러 범죄를 저지르는 소년들, 남의 집 마당에서 고깃국을 발견하고는 굶주리는 가족들 생각에 펄펄 끓는 솥에 덥석 손을 넣어 고깃덩이를 훔치는 남자, 앓아누운 아버지 대신 큰아들이 공공근로 사업장에 나가게 되자 젖먹이 아이를 억지로 떼어 내고 성인이 된 아들에게 젖을 먹이는 어머니……. 책에 실린 비통하고 충격적인 사연들은 통계 자료의 수치만으로는 헤아릴 수 없는 대기근의 실상을 극명하게 보여 준다. 여기에 당시 화가들이 직접 목격하고 스케치한 펜화들이 어우러져 당시 민중들이 느꼈을 고통에 더 큰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열여섯 살 소년 톰 플린은 지주의 땅을 지나는 강에서 물고기를 잡았다는 이유로 붙잡혔다가 풀려나자, 그 강물에 석회를 뿌리고 캐나다로 건너갔다. 짐 킬리언은 소작료를 다 내고도 집에서 쫓겨나 하는 수 없이 텃밭에 반토굴집을 지었는데, 지주네 나무를 베어 집을 지었다는 이유로 체포되어 징역 2개월을 선고받았다. 브리짓 오도넬은 임신 7개월에 열병까지 걸린 채로 집에서 쫓겨나 아이를 사산하고 이주길에 올랐다. 지배층의 비인간적인 처사가 어느 정도였는지 가늠할 수 있는 일화들이다.
대기근의 막바지에 이르러, 나락으로 떨어진 아일랜드 민중을 위한 치료제랍시고 지도자들이 내놓은 비상식적인 해결책도 가히 충격적이다. 빅토리아 영국 여왕을 아일랜드로 초청해 화려하고 성대한 행사를 벌인 것이다. 수천 명의 아일랜드인이 굶주림과 질병으로 죽어 가는데, 여왕 행차에 쓸 마차와 불꽃, 조명에 막대한 돈이 들어갔다.
스키베린에서 죽은 수백 명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이런 노래를 불렀다. “스키베린에서 죽은 사람들아 일어나소. 여왕 폐하 맞이하러 코크에 가세.” 더러는 기근에 찌든 나라에서 여왕에게 바치는 최고의 환영식은 장례 행렬이 아니겠느냐고 비꼬았다. (227쪽)
한편, 아비규환 속에서도 서로 돕고 희생하며 긍지를 지킨 사람들, 불합리한 사회를 바꾸려 용기를 낸 사람들의 이야기는 비극적인 사건들과 어우러져 더욱 큰 감동을 준다. 인자한 치안판사 니컬러스 커민스가 『타임스』에 보낸 편지 덕에 아일랜드의 참상은 영국 사회와 외국까지 퍼져 나갔고, 영국 구호 협회, 종교 친우회 등은 물론 자신들도 ‘눈물의 이주길’을 경험했던 아메리카 원주민 촉토족까지 아일랜드를 돕고 나섰다. 똑같이 굶주리는 처지에 형제와 이웃에게 양보하고 희생한 아일랜드인들의 이야기는 더욱 애틋하다.
고아 형제가 어느 집을 찾아가 문을 두드렸다. 형은 아홉 살, 동생은 다섯 살이었다. 빵을 좀 달라는 말에 집주인 여자는 아침에 먹고 남은 빵을 형에게 건네주었다. “동생과 꼭 나눠 먹어야 한다.” 여자가 이렇게 이르고 문을 닫으려는데 형이 동생에게 빵을 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자, 받아. 조니, 넌 나보다 어리니까 배고픔을 참기가 훨씬 어려울 거야. 너 다 먹어.” (118~119쪽)
전도에만 혈안이 되어 수프를 미끼로 개종을 강요하는 신교도들 앞에서 자존심을 지킨 아일랜드인들의 일화 역시 큰 감동을 준다. 자식들이 굶어 죽을 위기에 처하자 미끼 수프를 받고 어쩔 수 없이 신교 예배에 참석했지만 예배 시간 내내 가톨릭 미사를 드린 어머니 등 끝내 아일랜드인으로서의 존엄을 잃지 않으려 애쓴 사람이 적지 않았다.
아무리 굶주리고 궁핍해도 개종을 거부하는 사람은 많았다. 한번은 미끼 자선가가 굶주림에 시달리는 어느 모자에게 신앙을 버리면 음식을 주겠다고 했다. 그러자 어머니가 아들을 돌아보며 수프를 받아먹는 게 좋을지 아니면 죽는 게 좋을지 물었고, 아들은 아일랜드어로 이렇게 대답했다. “Is fearr an b?s, a mh?thair.”(죽는 게 낫겠습니다, 어머니.) (113쪽)
끝나지 않는 기근과 열병으로 숱한 사람이 죽고, 외국으로 쫓겨 가고, 그 외국에서조차 냉대를 받는 동안, 밖에서는 프랑스 혁명이 일어났고 아일랜드 안에서도 민중 봉기의 불꽃이 일었다. 아일랜드 신교도 지주였던 윌리엄 스미스 오브라이언, 부유한 젊은 상인 테런스 맥매너스, 꼽추이자 가난한 농부였던 제임스 핀턴 랄로, 가톨릭 신도이자 워터퍼드 시장의 아들인 토머스 프랜시스 미거, 장로교회 목사 아들 존 미첼, 신문사 편집장 찰스 개번 더피 등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주축이 된 아일랜드 청년당은 영국의 압제와 불합리한 소작 제도에 맞서기 위해 민중들을 일깨우고 봉기를 준비했다. 변변한 무기도 병력도 없었지만, 오로지 불의에 맞서기 위해 목숨을 바칠 용기를 낸 것이다.
■ 통계나 이론이 아닌 아일랜드 민중의 목소리로 만든 책
‘아일랜드 대기근’은 세계 역사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참혹한 재난으로, 다양한 관점에서 오늘날까지 계속해서 재조명되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은 단순히 유례없는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오늘날까지 한 민족이 먹고살고 사랑하고 희망하고 믿는 삶의 모든 방식에 배어 있는 ‘문화적 기억’으로서 아일랜드 대기근을 다룬다. 작가는 다양한 관점에서 대기근을 분석한 2차 사료들은 물론 자선단체 기록, 신문, 구빈원 감찰관 보고서, 인구 통계청 자료, 토지 및 사유지 문건, 세금 문서 등의 방대한 1차 사료, 대기근 생존자의 후손들이 쓴 회고록과 1930~1950년대 아일랜드 민속위원회 연구원들이 수집한 녹취 기록 및 육필 원고 등을 꼼꼼하게 살피고 활용했다. 당시 아일랜드 민중의 이야기를 가능한 한 있는 그대로 전하려고 애쓴 덕분에 저자는 다른 어떤 역사책보다 생생하게 ‘아일랜드 대기근’을 구현할 수 있었다.
아울러 번역자 곽명단은 후기를 대신해 조너선 스위프트의 「겸손한 제안」(1729) 일부를 우리말로 옮겨 수록했다. 조너선 스위프트는 이 글에서 아일랜드 빈민들을 향해 어린 자식의 살과 가죽을 시장에 내다 팔아 나라에 보탬이 되게 하라는 충격적인 반어법을 사용해 경제 논리만 앞세우는 영국의 비인도적이고 제국주의적인 행태를 풍자했다. 아일랜드 대기근의 역사적 배경을 짐작하게 하는 중요한 자료이자, 그 자체로도 흥미롭고 가치 있는 읽을거리이다.
■ 대기근 이후, 그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1848년 아일랜드 청년당이 주도한 봉기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꺾이지 않는 아일랜드인의 대담무쌍한 의지를 보여 주었다. 하지만 봉기가 결국 실패로 돌아가자, 영국 정부는 괘씸죄를 물어 모든 구호 조치를 중단했다. 쑥대밭이 된 아일랜드는 자선 단체들의 도움으로도 다시 설 수 없었다. 1850년에 드디어 대기근이 끝났다. 하지만 이웃의 장례에 함께 밤을 지새우고 길 잃은 나그네도 반가이 들이던 풍습은 전염병에 대한 공포로 사라졌고, 대대적인 이주 사업으로 가족과 친지들이 뿔뿔이 흩어지면서 몇백 년을 이어 온 전통과 민간 신앙도 길을 잃었다.
저자는 온몸으로 대기근을 겪어 낸 이들의 이후 삶과 그 후손들의 삶에도 눈을 돌려, 대기근이 아일랜드인의 삶을 어떻게 바꾸어 놓았는지 속속들이 보여 준다. 아버지가 죽고 오두막집에서 쫓겨난 디어뮈드 오도노번 로사는 열일곱 되던 해 이주길에 오른 가족들과 생이별을 겪었다. 훗날 가족을 다시 만난 디어뮈드는 아일랜드로 돌아와 민족주의 단체를 세웠다. 영국의 지배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것이 아일랜드가 살 길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지주의 강에 석회를 뿌리고 달아났던 톰 플린은 캐나다에서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닥치는 대로 일하며 결국 미국 시민권을 얻었고 대통령 선거에서 링컨을 뽑았다. 죽을 때까지 영국에 대한 증오를 가슴에 품고 산 톰 플린의 손녀 엘리자베스 걸리 플린은 미국에서 노동 운동가로 이름을 떨쳤다. 아일랜드 청년당 소속이었던 찰스 개번 더피는 영국 하원 의원에 선출되어 토지 개선에 힘쓰는 소작농에 대한 보상금 지급과 소작농의 강제 퇴거 방지를 골자로 한 토지 개혁안을 가결시키기 위해 애썼다. 많은 아일랜드인들이 타국에서 편견과 차별로 시련을 겪으면서도 그들의 문화에 대한 애착과 자유를 향한 열망을 잃지 않았으며, 자신들이 겪은 고통을 가슴에 새긴 채 부당한 제도와 편견에 맞서 싸웠다. 1921년 마침내 아일랜드의 대다수 주는 영국에서 독립했고, 오늘날 아일랜드 공화국의 기초가 되었다.
■ 역사를 바로 보고 오늘의 문제에 맞설 용기를 주는 책
수전 캠벨 바톨레티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내가 쓴 책이 독자에게 용기를 북돋워 주면 좋겠습니다. 역사적 사실에 관해 비판적으로 생각하고 의문점을 물을 용기, 사회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실존적으로나 자신이 맡은 책임을 곰곰 생각해 보고 그에 따라 행동할 용기, 그리고 무엇보다 당당하게 맞설 용기를요.”
저자는 아일랜드인들의 삶을 뒤바꾼 대기근의 참상을 생생하고 세밀하게 그려 내는 것만으로도 어떠한 주장보다 강력하게 독자의 마음을 움직인다. 아일랜드 민중의 눈과 귀를 빌려 대기근을 바라봄으로써, 그것이 손쓸 수 없는 재해가 아니라 욕심과 무관심이 빚은 인재이며, 우리의 노력으로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문제임을 깨닫게 한다.
대기근을 직접 겪은 아일랜드인들이 어디서든 이와 같은 비극이 되풀이되는 것을 막기 위해 각지에서 애썼고 그 후손들 역시 애쓰고 있다는 사실을 덧붙여, 책을 읽는 우리도 그들에게 빚진 마음으로 각자의 위치에서 공존을 위해 노력해야 함을 가슴 깊이 새기게 한다.
한편, ‘1%에 저항하는 99%의 시위’라는 구호를 내건 미국의 월 가 시위나 우리나라의 ‘88만원 세대’와 ‘영원한 갑을’ 문제도 이 책이 시사하는 바와 다르지 않다. 대다수 아일랜드 민중이 굶주리는 동안에도 아일랜드 들판에서는 지주를 위한 곡식이 익어 갔다. 오늘날에도 국민 전체 소득이나 총생산량이 높은 사회에서 상위 1%만이 그 부를 누리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불합리한 사회 구조는 언제라도 아일랜드 대기근 같은 참사를 야기할 수 있다. 저자의 바람대로, 아일랜드 청년당이 불의에 맞서 끝까지 싸운 것처럼 이 책이 독자들로 하여금 사회의 부조리한 모습을 외면하지 않고 옳은 목소리를 내는 용기를 북돋워 주기를 기대한다.
추천사
“당시를 스케치한 펜화와 아일랜드 전래 민담을 하나로 버무린 이 책에서, 바톨레티는 기반이 약하고 불의가 판치고 계층화에 따른 구조적 착취가 만연했던 아일랜드 농촌 사회의 참상을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심장이 벌떡거리는 역사책이다.” _스쿨 라이브러리 저널
“보통 사람들의 삶을 세밀히 보여 줌으로써 처절한 비극 속에서 인간성을 살려 낸다.” _북리스트
“독자들은 입이 떡 벌어지는 통계 수치를 숱하게 보게 될 것이다. 그 수치로 대기근의 결과가 얼마나 참혹했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보다 더 끔찍한 것은 일반 서민에게 미친 영향이 뇌리에서 떠날 줄 모르고 갈수록 생생하게 되살아난다는 사실이다.” _VOYA(청소년 옹호자들의 목소리)
“오늘날에도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기근과 질병과 죽음과 필사적인 피난. 아일랜드 대기근의 전체 과정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 곳곳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거의 다를 바 없다.” _혼 북
“아일랜드 대기근과 세계 곳곳에서 사회 발전에 크게 이바지한 이주민에 관해 조명하고 토론해 볼 수 있는 좋은 역사책.” _커쿠스 리뷰
책 속으로 추가
무엇보다 아메리카 원주민인 촉토족의 원조가 아주 특별했다. 이 인디언 부족은 시련을 겪고 있는 아일랜드인에게 남다른 동병상련을 느꼈다. 촉토족은 15년 전, 1831년에서 1832년으로 넘어가는 겨울에 조상 대대로 살아오던 미시시피 땅에서 쫓겨났다. ‘눈물의 이주길’에 올라, 오클라호마까지 1,000킬로미터를 걸어가는 동안 촉토족 부족민 절반이 사망했다. 그들은 1847년에 아일랜드 구호 기금으로 110달러[약 350만 원]를 기부했다.
구호 기금을 가장 많이 낸 것은 미국과 캐나다에 정착한 아일랜드 이민자였다. 이들이 보낸 기부금은 다른 단체들보다 열 배나 많았다. 가족이 이주할 수 있도록 배표를 보내는 경우도 많았다. 이들이 고국에 기부한 금액은 1847년 한 해에만 100만 달러[약 300억 원]쯤 되었다.
- 본문 121쪽(5장. 감자가 자랄 때까지만)
이주길에 오르기 전날 밤, 이주자의 가족과 친지는 ‘아메리칸 경야’를 열었다. 초상집에서 밤샘을 하는 아일랜드 장례 전통에서 생겨난 송별회인데, 경야라는 이름을 붙일 만도 했다. 머나먼 아메리카 대륙으로 이주한 사람이 다시 돌아오리라고는 어느 누구도 생각하지 않았고, 사랑하는 가족을 두 번 다시 못 볼 것이라고 애태우는 사람이 그만큼 많았기 때문이다. 가족과 친지가 밤새도록 송별회를 하면서 묵주 기도를 하고, 먹고 마시고 노래하고 춤추고 게임도 했다. 아무리 흥겹게 지내려 해도 슬픔을 숨기진 못했다. 특히 자식을 떠나보내야 하는 부모는 슬픔을 가눌 길이 없었다. 어느 아메리칸 경야에서 한 아버지는 떠나갈 아들에게 같이 춤 한번 추자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자, 아들아, 일어나서 이리 오렴. 춤을 추면서 아비 얼굴을 잘 봐 두려무나. 이것이 우리가 함께 추는 마지막 춤일 테니.” 그 말에 너나없이 눈물이 그렁그렁 차올랐다.
- 본문 167~169쪽(8장. 머나먼 이주길)
많은 사람이 그 실패한 봉기를 딱하기 짝이 없는 촌극으로 여겼다. 죽음과 굶주림, 강제 퇴거, 이주에 항거하는 어설픈 몸부림으로만 보았다. 그러나 한 신문기자는 달랐다. 봉기가 일어난 지 24시간도 안 되어 현장에 도착한 기자는 반란군을 이끈 지도자와 반란에 가담한 사람들, 매코맥 부인과 그 집 아이들의 용기에 감탄했다. 『일러스트레이티드 런던 위클리』지의 그 기자는 이렇게 썼다. “그들의 봉기는 놀라웠다. 하찮은 농기구로 무장하고 들고일어난 농민은 경찰이 점거한 집을 빼앗는 데는 실패했지만, 대담무쌍하게 경찰과 맞서 그 집을 빼앗으려고 시도했다……. 아일랜드 백성은 겁쟁이가 아니다. 그리고 그 사실은 스스로도 잘 안다.”
영국 정부 지도자들은 반란에 가담한 아일랜드 노동자들의 용기가 달가울 리 없었다. 지난 3년 동안 돈과 일자리와 의류와 식량을 원조해 준 자신들에게 맞서 감히 들고일어나다니, 배은망덕하기 짝이 없는 반란군에게 격분할 따름이었다. 반란 소식을 보고받은 빅토리아 여왕은 이렇게 회신을 보냈다. “아일랜드 백성을 따끔하게 가르쳐야 할 것입니다. 그냥 두면 또다시 일을 벌일 것이에요.
- 본문 212쪽(9장. 전쟁은 어디서 시작될까)
아일랜드 대기근이 일어난 지 150년이 넘었다. 이 엄청난 사건을 겪으면서 디어뮈드 오도노반 로사, 톰 퀸, 브리짓 오도넬이 그랬듯이, 우리는 대기근이 개인의 삶과 맞물려 있다는 것을 배울 수 있다. 그들이 겪은 고통에 공감할 수도 있다. 이 세 사람을 비롯해 살고자 애썼고 존엄성을 지키려고 힘썼던 무수한 사람들을 통해, 그 복잡하고 어려운 방안을 탐색할 수도 있다. 그들의 강인함과 용기를 배울 수도 있다.
인망 높았던 치안판사로서 수레에 빵을 싣고 스키베린 주민들을 찾아간 니컬러스 커민스가 그랬듯이, 우리도 기근이 사회를 위태롭게 한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기근이 식량 이용권을 가진 사람과 가지지 못한 사람으로 나뉜 데서 비롯된 문제라는 사실도 알 수 있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지역사회, 나라, 세계에 존재하는 굶주림과 빈곤과 부적절한 보건 의료 문제에 똑바로 눈뜰 수 있다. 그리하여 그 굶주림과 빈곤과 인류의 고통에 한결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 본문 243쪽(나오며)
책속으로
이 책은 아일랜드 사람들의 눈과 기억을 빌려서 아일랜드 대기근 이야기를 풀어 간다. 여러분은 이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될 것이다. 아일랜드 사람들은 그때 어떻게 살았는지, 어째서 감자로 하루하루 끼니를 이었는지, 가난한 자신들을 돕겠다고 세운 구빈원을 왜 그토록 질색했는지, 땅을 빌려 농사짓고 살던 사람들이 땅값을 내지 못해 집에서 강제로 내쫓길 때 지주와 마름을 얼마나 두려워했고 어떻게 저항했는지. 감자가 검게 변하면서 썩어 버린 뒤, 아이들도 어른들도 악착같이 먹을거리를 찾아 헤매고 굶주림과 질병에 시달리다 죽어 갔다는 사실도 알게 될 것이다. 그런가 하면 평범한 서민부터 정치 지도자와 공무원과 자선단체 활동가까지, 굶주리는 아일랜드인을 살리려고 열심히 구제 운동을 벌였지만 엄청난 인명 피해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던 사연도 숱하게 만나게 될 것이다.
대기근 때 벌어진 슬프디슬픈 일은 하고많았다. 무엇보다도 큰 비극은 끔찍한 일이 벌어질 때마다 더 비참하고 몸서리가 나는 사건들이 잇따랐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 지독한 슬픔 속에서도 끝까지 희망을 부여잡은 사람, 자기희생도 마다하지 않고 숭고한 행동을 보여 준 사람, 살려고 아등바등하면서도 품위를 지키려고 애쓴 사람들도 만나게 될 것이다.
- 본문 9~11쪽(들어가며)
감자 농사는 완전히 망쳤지만, 디어뮈드네는 아직 수확할 밀이 조금 남아 있었다. 팔아서 소작료를 내려고 재배하는 곡식이었다. 그런데 밀을 베어 낟가리를 쌓자마자 지주가 사람을 보냈다. ‘파수꾼’이라고 부르는 지주네 일꾼이 소작료를 받아 내려고 버티고 서서는 밀에 손도 못 대게 했다.
“그 파수꾼들은 우리 집에서 진을 치고서, 밀알을 털고 자루에 담고 방앗간으로 가져가는 것을 일일이 감시했어요. 우리 엄마가 방앗간에 갈 때도, 방앗간에서 마름한테 갈 때도 엄마 뒤에 따라붙었어요. 그날 마름이 읍내에 있었거든요.” 마름이 하는 일은 지주 대신 토지를 관리하고 소작료를 걷는 것이었다.
디어뮈드네 엄마는 땡전 한 푼까지 탈탈 털리고 빈손으로 집에 돌아왔다. 마름이 소작료로 다 털어 갔다. “우리 아버지 심정이 어땠을까요. 엄마 심정은요. 먹여 살릴 자식은 주렁주렁 넷이나 되는데…… 감자는 몽땅 썩어 버리고, 밀은 한 줌도 안 남았으니…… 그건 두말할 것도 없이 영국인 지주들이 일으킨 재앙이었어요. 그 악마 같은 자들이 아일랜드에 엄청난 저주를 내린 거라고요.”
디어뮈드네 지주만 유독 무자비한 것은 아니었다. 감자 농사를 폭삭 망친 사람들에게서 어떻게든 소작료를 받아 내려는 지주가 한둘이 아니었다. 무엇으로든 자기 소작료부터 챙길 욕심에 돈 대신 가축과 곡식을 압수했다. 당장 굶주리게 생긴 아일랜드 백성들이 보기에, 영국인 지주의 소작 제도는 사랑하는 조국과 그 땅에 사는 자신들한테 내린 저주나 다름없었다.
- 본문 19~21쪽(1장. 검은 감자다 검은 감자)
역사학자들이 엄연한 역사적 사실을 어떻게 해석하든 상관없이, 이 진실은 변함없이 남는다. 아일랜드 백성은 굶주리고 있는데, 그 땅에서 난 곡식과 가축을 한가득 실은 배가 영국과 다른 나라의 시장으로 떠났다는 사실이다. 윌리엄 파월의 말을 빌리면, 그 사실이 뜻하는 것은 단 한 가지였다. “네, 아일랜드 대기근은 인재였습니다. 우리네 지배자가 이 땅에서 난 식량을 영국으로 싣고 가도록 주선했고, 이 땅 백성은 굶주리도록 내팽개친 겁니다.”
사람들이 굶주리고 있는 나라에서 식량을 수출하다니,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가장 가혹한 현실 한 가지는 기근은 식량이 부족해서 일어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기근 문제는 식량 이용권을 누가 갖느냐에 달려 있다. 영국 정부가 의도적으로 아일랜드인을 굶주리게 한 것은 아니었다. 지주, 농민, 도매상, 소매상의 생업에 간섭할 법률을 제정할 뜻이 없었을 따름이다. 그런 법률을 만든다는 것은 자유방임주의 원칙을 어기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또 지주와 농민도 곡물을 영국과 외국 시장에 수출했다. 자신들이 영리를 추구할 권리가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식량이 없어 굶어 죽을 처지에 놓였는데, 밭에서 곡식을 실어 가는 광경을 어떻게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 있었겠는가. 사람들은 격렬한 폭동을 일으켰다.
- 본문 81~83쪽(4장. 허기진 까마귀 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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