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밤
-권여선
[책으로 읽을 때 마음이 좀 짠했던 작품 - 문학상 최종심까지 올라갔다가 '이틀'이란 작품에게
밀린 모양인데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이 더 마음에 든다. 밝고 어두운 면에서는 '이틀'이 낫고.]
철공소를 했던 수환과 국어교사였던 영경은 너무도 다른 세계에 살았다. 어느 봄밤, 그들은 운명처럼 만나고 알아보고 보듬는다. 하지만 이들에게 허락된 시간은 길지 않았다. 류마티스가 발병한 뒤 수환의 병세는 하루가 다르게 나빠 가고, 수환과 함께 요양원에 들어간 영경은 술을 마시지 못해 피폐해진다. 절절한 사랑은 비극을 향해 끓어오른다.
“두 사람은 각자 결핍의 상태에서 만났어요. 혼자 있어도 비극적인데 둘이 함께 있었기 때문에 결핍이나 비극이 증폭돼 보이는 거에요. 세상의 눈으로 보면 두 사람은 못 나가는 사람들인데, 그런 사람들은 불행과 슬픔을 서로 알아봐요. 바닥이라서, 더 갈 데가 없어서 끝까지 함께 갈 수밖에 없어 불행한 사람의 사랑은 지속 가능하기도 하구요.”
끝을 향해 달려가는 두 사람의 사랑은 위태롭다. 아슬아슬하다. 그래서 짠하고 먹먹하다. 작품 속 분자와 분모론에 빗대 설명한다면 이렇다. 사랑을 분자에 놓고, 여생을 분모라고 가정한다. 평생 사랑할 수 있는 총량이 정해져 있다고 하자. 수환의 삶이 모래시계 속 모래처럼 점점 줄어가기에 이들 사랑의 밀도는 짙어질 수밖에 없다. 마지막을 예감하는 사랑은 절실하다.
잡은 손을 놓을 수 없지만, 둘은 사랑하기에 상대의 손을 놓아준다. 금단현상을 견디지 못하는 영경에게 수환은 외출이란 선물을 주고, 영경은 알코올을 찾아 잠시 수환을 떠난다. 소주병을 손에 쥐고 알코올이 혈관을 타고 흐를 때 영경은 김수영의 시 ‘봄밤’을 왼다. ‘아둔하고 가난한 마음은 서둘지 말라/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절제여/나의 귀여운 아들이여/오오 나의 영감이여’라며.
수환이 죽어가던 순간에 영경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수환의 장례가 끝나고 나서야 모텔에서 의식불명으로 실려 돌아온 영경. 정신줄을 놓아버린 그녀를 보고 사람들은 천천히 깨닫는다. “영경의 온전치 못한 정신이 수환을 보낼 때까지 죽을 힘을 다해 견뎠다는 것을, 그리고 수환이 떠난 후에야 비로소 안심하고 죽어버렸다는 것을.”
영경이 수환의 죽음을 예감했느냐는 질문에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영경이 외출을 나갈 때, 수환이 영경을 떠나 보낼 때, 늘 두 사람은 마지막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죠. 각자의 병동으로 돌아가 잠에 들 때도 내일 아침 만날 수 있을까 생각해요. 아침마다 이산가족 상봉하듯 애틋하게 만나잖아요. 죽음으로 인한 헤어짐을 준비하는 사람들이죠.”
[출처: 중앙일보] [제13회 미당·황순원 문학상] 본심 후보작 지상중계에서 발췌]
'♣ 문학(文學) 마당 ♣ > - 戰後 출생 작가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디오 소설] 당신이 모르는 이야기 - 이평재 (0) | 2016.02.29 |
---|---|
[오디오 희곡] 기막힌 동거 - 임은정 (0) | 2016.02.29 |
[오디오 소설] 이틀 - 윤성희 (0) | 2016.02.28 |
[오디오 소설]나는 아주 오래 살 것이다 - 이승우 (0) | 2016.02.28 |
[오디오 소설]전복 - 김덕희 [2013 문학 수상작] (0) | 2016.02.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