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컴퓨터 앞에 웅크리고 앉은 남자, 그는 매일 하얀옷을 입고 절을 했다
곰씨를 처음 본 것은 학교에 취업한 지 이틀쯤 지난 뒤였다. 복사지를 들고 복도를 지나는데 교무실 옆에 있는 전산실에 눈길이 갔다. 전산실 유리문은 어른 눈높이 부분의 반투명 코팅이 자를 대고 잘라낸 것처럼 벗겨져 있었다. 지나가면서 코팅이 벗겨진 유리문으로 안을 들여다보았다. 전산실에는 한 남자가 컴퓨터 모니터 앞에 웅크리고 앉아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남자의 모습을 눈 여겨 보았던 것은 몸집이 유달리 컸기 때문이었다. 짧고 굵은 목 아래에 붙은 몸통은 왕겨를 가득 담은 특대 사이즈 쌀 포대 같았다. 머리통 역시 작은 바윗덩어리처럼 큼지막했다. 남자의 덩치만큼 놀라웠던 것은 전산실의 정리 상태였다. 전산실은 쓰레기장보다 조금 나은 수준이었다. 엉킨 채 쌓여 있는 전선들은 허물어져 가는 무덤 같았다. 초록색 발광 다이오드가 줄지어 깜박이는 서버 주변에는 크기가 제각각인 컴퓨터 본체가 위태롭게 쌓여 있었다. 믹스 커피 봉지와 컵라면 그릇, 종이컵과 참치캔과 정리되지 않은 서류들이 바닥에 아무렇게나 널려 있어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점심시간에 식탁 맞은편에 앉은 내 또래의 교무보조 세령씨에게 전산실 남자는 누구냐고 물었다. 세령씨는 미역국을 떠먹다 말고 보조개가 패도록 웃었다.
“곰씨요. 전산 보조원이에요.”
네? 하고 되물었다. 곰이 성이나 이름일 것 같지는 않았다. 이름이 있을 거 아니냐는 말에 세령씨는 작년에 이 학교에 왔지만 잘 모르겠다고 했다. 세령씨는 옆자리에 앉은 행정실 주무관에게 물었다. “언니, 곰씨 이름이 뭐야?” 주무관도 곰씨의 진짜 이름은 얼른 생각나지 않는 눈치였다. 나는 고개를 빼고 급식실을 둘러보았다. 식사를 마친 이학년 아이들이 급식실을 나가는 중이었고 육학년 아이들이 줄지어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전산실에서 보았던 곰씨라는 남자는 보이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이 학교에서 일한 지 며칠이 지나도록 점심시간에 곰씨를 본 적이 없었다. 나는 밥을 먹다 말고 곰씨는 왜 점심을 먹지 않느냐고, 어떤 사람이냐고 물었다. 두부조림을 우물거리며 주무관이 말했다.
“곰씨? 곰씨를 아는 건 곰씨뿐일 걸?”
말은 그렇게 했지만 주무관은 곰씨에 대해 세령씨보다 많이 알았다. 마흔 즈음 됐다는 것과 결혼을 하지 않았다는 것, 오래전부터 이 학교에서 일해서 지금은 무기 계약직이라는 것 정도였다. 전산보조 일에서는 문제가 생기는 걸 본 적이 없다고, 무기 계약직인 데다 몸집이 크기 때문인지 교장·교감도 함부로 못한다고 했다. 세령씨가 말했다.
“아, 맞다. 그분 무슬림이에요.”
내가 쳐다보자 세령씨는 수줍은 얼굴로 말했다.
“저번에 지나가다가 전산실에서 봤어요. 하얀 옷으로 갈아입고 절을 하던데요? 무슬림들은 그렇게 한다면서요. 어딘가를 향해서 매일 절을 한다고. 언니, 그래서 점심 안 먹나 보다. 점심 급식 때 돼지고기 자주 나오잖아.”
과학실 컴퓨터가 말썽이었다. 수업을 하다가도 블루 스크린이 뜨곤 했고 거슬릴 정도로 소음이 났다. 컴퓨터를 재부팅했고 바이러스 검사도 했지만 상태는 나아지지 않았다. 전산실의 곰씨에게 전화를 했다. 저 과학보조인데요, 하고 시작한 말에 곰씨는 네. 하고 대답했다. 네, 보다는 왜, 라는 말이 어울리는 목소리였다. 당황한 나는 말을 더듬었다. 급히 고쳐달라는 말이 없었는데도 “이거 빨리 손봐야 한다고 선생님들이 그러셔서요” 하는 말까지 덧붙였다. 곰씨는 컴퓨터 제조 회사를 확인해달라고 했다. 제조 회사를 알려주자 그 회사 제품은 메인보드에 문제가 많다며 컴퓨터 본체를 들고 전산실로 오라고 했다.
메인보드를 들고 과학실로 오면 되는 거 아닌가, 생각했다. 그렇다고 곰씨에게 이리로 와달라고 말하기도 어려웠다. 컴퓨터 본체를 끌어안고 한 층 아래 전산실로 내려갔다. 전산실에 들어서자 쓰레기 더미에 갇힌 기분이었다. 웅웅거리는 서버 소리가 들렸고 텁텁하고 구린 냄새가 풍겼다. 학교가 아무리 바삐 돌아가도 전산실만큼은 방치된 쓰레기 섬처럼 고요할 것 같았다. 곰씨는 플라스틱 서랍장 앞에 앉아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나는 서버 앞에 본체를 내려놓고 곰씨의 옆얼굴을 쳐다보았다. 볼이 우둘투둘해 보일 만큼 얽은 얼굴에 눈썹이 짙었고 콧날이 우뚝했다. 거뭇한 얼굴은 나이를 쉽게 가늠하기 어려웠다. 곰씨는 음, 소리를 내며 메인보드를 찾아들고 일어섰다.
위로 솟아오르는 곰씨의 머리를 보며 나도 모르게 숨을 멈췄다.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 없는 거구였다. 어어, 이거 대체 뭐지, 하고 중얼거리게 만드는 비현실적인 몸집이었다. 곰씨가 완전히 일어서자 내 오른발이 반걸음 뒤를 밟았다. 삼국시대나 조선시대에 태어났더라면 오랑캐와 왜적의 갑옷을 한 주먹에 부수고 아군에게 승리를 안겨줬을 법한 사람이었다. 짧은 머리칼은 어딘지 균형이 맞지 않았고 배도 거북이 등처럼 나왔지만 그게 흠으로 보이지 않을 만큼 거대한 몸이었다. 곰씨가 말했다.
“빨리 고쳐야 한다고 해서.”
내가 했던 말이었다. 컴퓨터 본체를 들고 전산실로 오라고 말한 이유를 설명하는 것 같았다. 곰씨는 본체를 열고 능숙한 손놀림으로 내부 청소를 했다. 케이블 몇 개를 분리한 다음 메인보드를 갈아 끼웠다. 모니터에 과학실 컴퓨터 본체를 연결하고 몇 가지 설정을 수정했다. 그러고는 다 됐다는 얼굴로 본체를 툭툭 쳤다. 나는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본체를 들고 전산실을 빠져나왔다.
컴퓨터는 원래대로 돌아왔다. 속도도 빨라졌고 불길한 소음도 한결 줄어들었다. 보면 볼수록 재미있는 양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맙다는 말도 하고 새로 왔다는 인사를 해야겠다 싶어서 병 음료를 들고 전산실에 다시 내려갔다. 곰씨는 전산실 문을 등지고 벽을 향해 서 있었다. 내 핸드폰에서 이슬람 예배시간을 알리는 소리가 울렸다. 핸드폰 어플리케이션에 뜬 나침반 방향을 확인해보았다. 곰씨가 바라보고 있는 방향은 메카가 있는 곳이었다. 곰씨는 양손을 귀로 올렸다. 나는 곰씨가 하고 있을 말을 되뇌었다.
“알라후 아크바르.”
곰씨는 두 손을 앞으로 모았다. 쿠란을 암송하고 있는지 잠시 가만히 서 있었다. 다시 알라후 아크바르, 하고 말하면서 허리를 구십 도로 굽힐 차례였다. 알라후 아크바르가 무슨 뜻이냐고 묻는 내 질문에 바싹 마른 아버지는 속삭이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알라는 위대하다.” 아버지는 그렇게 말하고는 다음 기도문을 웅얼거리며 허리를 굽혔다. 아버지가 혼자 예배를 하던 어둑한 방에는 A4용지에 인쇄된 이슬람의 천국 그림이 붙어 있었다. 이사할 때마다 그림을 떼었다가 붙여서 네 귀퉁이가 스카치테이프 자국대로 너덜너덜한 그림이었다. 그림 속의 궁전과 나무들, 숲과 사람들의 모습은 흐릿했다. 그래도 이파리에서 줄기까지 모두 초록색인 나무의 생명력은 인상에 남았다. 넓고 두터운 잎과 새순처럼 뻗은 가지 사이에서 금방이라도 붉은 열매가 맺힐 것 같았다.
나는 어둑한 곰씨의 전산실을 뒤로 하고 실험준비실로 돌아왔다. 점심을 먹기까지는 아직 사십 분가량 남았다. 다음 실험준비를 해놓고 아침에 끝내지 못한 로스쿨 인터넷 강의를 들을 생각이었다. 실험준비실 컴퓨터 화면에 메시지가 떠 있었다. 세령씨가 보낸 메시지였다. 이번 일요일에 여의도공원에서 노동 관련 집회가 있다고, 같이 가고 싶은 분은 답을 달라는 내용이었다. 학교의 비정규직 직원들에게만 보낸 메시지였다. 노동 관련 집회 참석은 내게 필요한 경험이었다. 내가 가고자 하는 로스쿨의 특성화 과목에는 노동법과 인권법에 대한 내용이 있었다. 로스쿨 인터넷 강의에서 강사로 나온 변호사는 면접에서 중요한 건 순발력이라고 했다. 명료하게 이야기하면서도 깊이가 있어야 한다며 현장 경험이 있는 게 좋다고 했다. 가겠다고 답 메시지를 보낸 뒤 세령씨를 생각했다. 예쁘지는 않지만 딱히 못생긴 얼굴도 아니었다. 누구에게나 잘 웃어주는 부류의 여자였다.
여의나루역에서 세령씨를 만났다. 노랗고 붉은 마른 이파리들이 발에 밟혀 바스라졌다. 45인승 대절 버스들이 도로 양 길가에 빼곡했다. 길가에 벽이 쌓인 것 같은 풍경이었다. 최루탄, 물대포 같은 단어들이 떠오르면서 은근히 긴장됐다. 여의도공원 중심에 널찍한 깃발들이 높이 솟아 있었고 집회 장소를 향해 산책하듯 걷는 사람들 가슴팍에는 ‘노동개악 저지투쟁’이라는 문구가 적힌 천이 묶여 있었다. ‘살기 위해 단결투쟁’이라는 문구도 있었는데 정작 사람들은 무엇에 쫓기는 것 같지 않았고 궁색해 보이지도 않았다. 집회장으로 가는 사람 중에는 정장을 걸치고 넥타이를 맨 노인도 있었다.
공원은 집회 참석자들로 북적였다. 세령씨는 오만 명 이상 모일 거라고 했다. 언제부터 이런 데 다니기 시작했느냐고 물었다. 세령씨는 자기도 집회 참석은 처음이라고, 살다 보면 관심이 안 생길 수 없다고 말하며 웃었다. 세령씨가 무슨 이유로 노동 집회에 참여하려 드는지 얼른 이해가 되지 않았다. 세령씨의 학교생활은 그리 힘들지 않아 보였다. 우리 엄마처럼 가사도우미로 아파트와 아파트를 건너 다니는 것도 아니었고 적으나마 월급을 정기적으로 받았으니 생계유지가 어려운 생활은 아닐 터였다.
집회장 진입로 옆에는 장사꾼들이 부산 어묵과 맥반석 오징어 따위를 팔았다. 파란 꽃무늬 스티로폼 아이스박스에 쟁여온 생수와 소주, 맥주가 심심치 않게 팔려나갔다. 그을린 얼굴에 주름이 자글자글한 남자가 목에 저장된 것 같은 소리를 뽑아냈다. 생수소주맥주 캔맥주, 생수소주맥주 캔맥주. 맹맹하면서도 곡조를 띤 목소리는 북적이는 사람들 틈에서도 또렷이 들렸다. 가벼운 옷차림에 작은 가방을 멘 사람들이 집회장으로 들어가기 위해 길게 줄을 섰다. 집회장으로 들어가는 길 양 옆으로 몽골텐트들이 줄을 맞추어 세워져 있었고 하늘에는 노동개악 저지라는 구호가 적힌 애드벌룬이 떠 있었다. 어린 아이들이 같은 문구가 인쇄된 풍선을 들고 잔디밭을 뛰어다녔다. 잔디밭 너머로 공룡과 판다 모양 에어쿠션과 알록달록한 볼풀이 보였다.
집회장에 줄 맞춰 앉은 사람들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았다. 모인 사람들에게서는 힘이 느껴졌다. 집회 참가자들이 사회자의 인도에 따라 구호를 내지르며 주먹을 위로 치켜올릴 때는 무서운 느낌마저 들었다. 사람의 수에 압도되는 기분이었다. 앞사람에게 바짝 붙어 종종걸음으로 집회장에 들어가던 세령씨가 우뚝 섰다.
“어? 저기, 저기 곰씨예요!”
정말 곰씨였다. 곰씨는 파란 줄무늬 종이 선캡을 쓰고 있었다. 선캡이 축구공 위에 얹은 종이비행기 같았다. 곰씨는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묵묵히 무대를 바라보고 있었다. 세령씨는 줄에서 빠져나와 곰씨가 있는 곳으로 나를 이끌었다. 사람들 틈을 파고들어 길을 냈다. 세령씨는 메시지 보고 나온 사람이 또 있었다며 어린애처럼 좋아했다. 여기요! 여기요! 하고 곰씨를 불렀다. 곰씨는 나와 세령씨를 보고도 알아보았다는 눈짓을 했을 뿐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곰씨와 나, 세령씨는 파란 줄무늬 종이 선캡을 쓰고 나란히 앉았다. 연단은 우리 자리에서 오십 미터쯤 떨어진 곳에 있었는데 힘이 잔뜩 들어간 춤을 추는 사람들의 공연이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생각했던 것만큼 위험해 보이지 않았다. 공중파 방송국 카메라가 집회 영상을 담았다. 사진 찍을 단상을 따로 마련해 두었을 정도로 기자들이 많았다. 경찰은 여의도공원 바깥에 배치되어 있을 뿐 집회를 건드리지는 않았다.
마이크를 랩퍼처럼 비스듬히 치켜든 남자가 오른손 주먹을 내지르며 연설을 했다. 노동계를 손보려는 정부의 속셈은 재벌 배 불리기라고 했다. “배때지에 낀 기름기, 우리가 빼줍시다!” 하고 외치자 집회장에 모인 사람들이 함성을 지르며 박수를 쳤다. 지나치게 과격한 표현이어서 듣기에 거북했다.
“그 무슬림 아저씨가요 폐차장 이층 버스에 산대요, 레알 멋지지 않아요?”
내 발로 온 시위 현장이었지만 오래 있고 싶지 않았다. 어색했고 불편했다. 내가 그동안 해왔던 아르바이트들을 생각하며 노동 현장에서 느꼈던 분한 마음을 다시 깨워보려 했으나 좀처럼 흥은 일지 않았다. 세령씨는 가느다란 목소리로 “우리도 사람답게 살고 싶다” 하고 외치며 눈물까지 찍었다. 학교에서 보던 웃는 얼굴과 달라 그것도 어색했다. 세령씨는 눈치가 빨랐다. 내 분위기를 알아차리고는 피곤하다며 일찍 나가자고 했다. 곰씨에게도 같이 가자고 졸랐다.
전철 안에서 곰씨는 모든 사람들의 눈을 끌었다. 옆에 있던 나까지 무안해질 정도였는데 정작 곰씨는 전철 창밖으로 보이는 노을 진 한강을 무심히 바라볼 뿐이었다. 세령씨가 곰씨에게 오늘 집회가 어땠냐고 물었다. 곰씨는 “네. 좋았습니다” 하고 대답했다. 세령씨가 집이 어디냐고 묻는 말에는 “딱히 어디에 산다고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하고 말했다. 얼른 이해되지 않는 말이었으나 질문을 허락하는 얼굴은 아니었다. 그 뒤로 우리는 아무 말 없이 창밖을 바라보며 서서 왔다. 전철은 땅속으로 들어갔고 검은 창문에 나와 곰씨와 세령씨 모습이 비쳤다. 나는 창문에 비친 곰씨의 무표정한 얼굴과 널찍한 몸통을 곁눈질했다. 곰이라기보다는 코끼리에 가까웠다. 먼저 건드리지 않는다면 내게 해코지하지 않을 사람이었다. 아무 말 없이 함께 있어도 편안했다. 가는 도중 자리가 났는데도 굳이 앉아야겠다는 마음이 들지 않았다. 창에 비친 내 얼굴은 곰씨와 비슷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런 내 표정이 마음에 들었고 어딘지 모르게 속이 후련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다음 월요일, 세령씨는 마스크와 고무장갑을 끼고 실험준비실로 나를 찾아왔다. 세령씨가 말했다.
“두 시간만 내요. 괜찮죠?”
곰씨는 마스크를 차고 고무장갑을 낀 세령씨와 나를 보고는 눈을 껌벅였다. 싫은 기색은 아니었다. 세령씨가 곰씨에게도 마스크와 고무장갑을 내밀었지만 둘 다 곰씨에게 맞지 않았다. 곰씨와 나는 세령씨의 지휘에 따라 말없이 청소를 했다. 시커멓게 썩은 걸레와 푸른곰팡이 덩어리가 떠다니는 컵라면을 쓰레기봉투에 버렸고 고슬고슬 성긴 먼지 뭉치를 진공청소기로 빨았다. 사무용 철제 책상 서랍에 가득 담긴 3.5인치 플로피디스켓을 모두 버렸다. 서버실 구석에 쌓여 있는 헌책들을 옮기다가 바닥에 쏟았는데 그 책들 중에는 십 년은 넘어 보이는 플레이보이 잡지도 있었다. 세령씨는 플레이보이 잡지를 한 장 한 장 넘겨보며 “어머머, 진짜 죽여주네요” 하고 말했고 곰씨는 당황한 얼굴로 자기 것이 아니라고 했다. 세령씨는 “아유, 이 양반 아주 내가 미쳐” 하고 웃으며 곰씨의 팔을 꼬집었다.
청소는 두 시간으로도 모자랐다. 지나가던 교사들이 내 등을 두드리며 학교에 큰 기여를 하는 거라고 우스갯소리를 했다. 교감까지 와서 칭찬을 하는 바람에 은근히 기분이 좋기까지 했다. 오후 시간을 공부에 쓰지 못한 게 아까웠지만 직장 생활에 충실할 필요도 있었다. 정리된 전산실은 번듯했다. 전산실 가운데에 가로놓인 서버 뒤로 돌아가면 제법 넓은 공간이 나왔다. 세령씨는 퇴근 시간이 지나길 기다렸다가 창고에서 동그란 테이블과 접이식 의자를 가져오게 했다. 서버 뒤 공간에 탁자와 의자 세 개가 놓였다. 서버와 칸막이에 가로막혀서 밖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공간이었다. 쓰레기봉투까지 버리고 오자 세령씨는 테이블에 믹스커피를 타 놓았다. 서버 소리가 거슬렸지만 깨끗한 전산실은 아늑하기까지 했다. 뭔가를 해냈다는 생각도 들었다. 곰씨와 나는 의자에 앉아 달달한 믹스커피를 홀짝였다. 세령씨가 말했다.
“우리, 여기를 아지트로 해요.”
그럴 필요까지 있나 싶었지만 싫지도 않았다. 곰씨는 허리를 세우고 가슴이 올라오도록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표정이 어정쩡했다. 곰씨가 거절하려나 싶었고 은근히 그러지 않았으면 했다. 곰씨는 눈을 껌벅이며 혀끝으로 입술에 침을 묻혔다. 하도 뜸을 들여서 세령씨가 “좋다는 거예요, 싫다는 거예요?” 하고 물었다. 곰씨가 세령씨와 나를 번갈아보며 말했다.
“그 도색잡지, 정말 제 거 아닙니다.”
나는 커피를 입에 담은 채 웃음을 터트렸다. 세령씨가 큰소리로 웃으며 곰씨의 팔과 얼굴을 수건으로 닦아주었다. 목 울대가 움직이도록 마른 침을 삼키던 곰씨도 이가 보이도록 웃었다. 처음 보는 곰씨의 웃는 얼굴이었다.
그 뒤로 우리는 짬이 나는 대로 전산실 아지트에 모였다. 시간이 아까웠지만 은근히 연락 오길 기다렸다. 세령씨가 말을 많이 했고 나는 고개를 끄덕이거나 맞장구를 쳐주었다. 곰씨는 간간이 웃었다. 별것 아닌 대화인데도 퇴근시간을 넘기기 일쑤였다. 세령씨는 슬쩍 나와 곰씨에게 말을 놓기도 했지만 곰씨는 우리에게 깍듯한 존댓말만 썼다. 세령씨는 교무실 생활이 힘들다고 했다. 열심히 해도 티가 나지 않는다며 심란해했다. 얼굴 표정이 정말 힘들어 보여서 무슨 말이냐고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세령씨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올해가 이 년째거든요. 무기 계약 안 되면 다른 학교로 가야 해요. 그런데 다른 학교도 대개는 자리가 차 있어요. 공고를 내도 내정되어 있는 경우가 많고.”
사정은 나도 알고 있었다. 학교는 정말 마음에 드는 사람이 아니면 무기 계약 전환을 주저했다. 나도 같은 상황이었지만 오래할 생각이 없었으니 세령씨처럼 몰리는 처지는 아니었다. 곰씨는 이미 무기 계약이었다. 무슨 말을 해주어야 하나 생각하는데 곰씨가 세령씨를 보며 물었다.
“사는 게, 힘듭니까?”
곰씨가 먼저 말을 꺼내는 건 드문 일이었다. 세령씨는 조금 놀랍다는 표정을 짓고는 씁쓸히 웃기만 했다. 세령씨의 불안이 무엇인지 이제는 나도 알았다. 생존은 가능하지만 그건 바라는 삶일 수 없었다. 사고가 나거나 아프기라도 하면 당장 나락에 떨어질 터였다. 눌린 삶에서 탈출할 유일한 방법은 결혼을 잘하는 거였지만 여러 조건들로 볼 때 그것도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앞날이 불안하기는 곰씨도 마찬가지일 것 같았다. 속사정이야 알 수 없지만 마흔이 되도록 동굴 같은 전산실에서 웅크리고 있는 걸 보면 예순 넘어서 어찌 살아갈지 빤했다. 어쩌면 저 덩치로 폐지를 모으러 다닐지도 몰랐다. 나는 세령씨에게 아직 젊지 않느냐고, 못할 게 뭐가 있느냐고 말했다. 세령씨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실질적인 대안보다는 마음을 추스르는 것이었으니 나름 적절한 조언이었다. 나는 거들어주길 바라며 곰씨를 쳐다보았다.
곰씨는 어두운 표정을 하고 종이컵을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안 그래도 거뭇한 얼굴이 더 검게 느껴졌다. 뭔가를 감추고 있는 사람이라는 느낌이었다. 곰씨는 종종 그랬다. 무덤덤한 표정에서 갑자기 음험한 얼굴로 변하는 곰씨를 보면 과거를 캐묻고 싶은 충동이 들기도 했다. 자기 때문에 분위기가 무거워졌다고 생각했는지 세령씨가 목소리 톤을 올렸다. 셋이서 곰씨의 집에 한번 가보자고 했다.
“우리 곰씨 아저씨가요, 폐차장에 산대요. 저기 주공 3단지 고개 너머에 있는 거기요. 그것도 이층 버스에서 산다는 거예요. 레알 멋지지 않아요?”
나는 두 사람을 번갈아 살폈다. 내가 모르는 얘기를 둘이 나눴다고 해서 딱히 속상할 일은 아니었다. 곰씨는 말이 없었다. 나는 세령씨가 적당한 선을 자꾸 넘어서려는 게 불안했다. 세령씨는 거침이 없었다. 대답 없는 곰씨에게 몸을 기울이고 협상하듯 말했다. 집 초대가 어려우면 점심시간에 급식실에서 같이 밥을 먹자고, 돼지고기가 나오는 날은 자기가 다른 반찬을 싸오겠다고 했다.
곰씨가 산다는 폐차장에 가게 된 것은 엄마가 타고 다니던 차를 처리해야 했기 때문이다. 십육 년 넘은 경차였고 주행거리도 이십육만 킬로미터를 넘긴 지 오래였다. 엔진이 힘을 내지 못했다. 정비소에서도 더 이상은 방법이 없다며 길바닥에서 퍼지기 전에 폐차를 하는 게 좋겠다고 했다. 여러 집을 돌면서 가사도우미를 하려면 차는 반드시 필요했다. 한숨을 쉬는 엄마에게 중고차를 뽑아드리겠다고 했다. 내가 모은 돈으로 우리 집의 필요를 채울 수 있어서 좋았다. 폐차 생각을 하면서부터 나는 곰씨를 생각했다. 대행업체를 이용하지 않고 폐차장에 직접 가기로 했다.
곰씨가 산다는 폐차장은 도로변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다. 야트막한 언덕을 넘어 과수원과 논 사이에 난 콘크리트 도로를 지났다. 늦가을 오후의 하늘은 기분 좋게 맑았다. 열어둔 차창으로 들어오는 바람에 귀밑이 간지러웠다. 곰씨가 사는 곳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레는 기분이었다. 몰래 구경하러 가는 기분이 들었으나 마주친다 해도 폐차할 차가 있으니 무안할 일은 아니었다.
핸드폰에서 오후 예배 시간을 알리는 아랍어 음성이 길게 울렸다
폐차장 후미진 곳에 이층 버스가 있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삼십 년은 넘은 차였다. 폐차된 차는 아니었는지 번호판도 붙어 있었고 타이어에도 공기가 차 있었다. 보통 버스보다 큼직했다. 처음 보는 외관이었다. 도로를 오가면 누구든 한번은 돌아볼 버스였다. 하얀색 도색이 벗겨진 곳에 드러난 붉은 페인트는 섬처럼 도드라져 보였다. 몸통을 감싼 금속판의 가장자리가 녹이 슬어 둥그스름했다. 관광용으로 만든 차량인지 버스의 일층 뒤편은 통유리창이었다. 선글라스처럼 짙게 코팅된 차창은 안에서 커튼을 쳐놓았다. 버스의 앞과 뒤에는 VOLVO라는 엠블럼이 붙어 있었다.
이층 버스로 걸어갔다. 사람이 있는 기척은 없었다. 차 뒤편에는 이동식 천막이 세워져 있었다. 천막 안에 가스레인지와 LPG 가스통, 수돗가가 보였다. 그릇과 조립식 취사도구들이 아슬아슬하게 쌓여 있었다. 어수선하고 쓸쓸한 이곳이 곰씨의 자리였다. 이층 버스 뒤편의 그늘진 자리였기 때문인지 춥고 습한 느낌이었다. 핸드폰에서 오후 예배 시간을 알리는 아랍어 음성이 길게 울렸다. 평소에는 바로 꺼버렸지만 곰씨의 이층 버스 앞에서 울리는 이슬람 기도 소리는 어색하지 않았다. 이곳에서 메카를 향해 엎드렸을 곰씨를 생각했다. 어딘가에서 같은 방향으로 허리를 숙이고 있을지도 모를 아버지를 생각했다. 아버지는 파키스탄 사람이었다.
피가 잘 섞였기 때문인지 내 외모는 순수혈통의 한국 사람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아버지가 있는 한 출신이 드러나는 것을 피할 수 없었다. 아버지를 보고 있으면 이등 시민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투석이 필요할 정도로 심한 만성신부전증을 앓고 있었을 뿐, 나쁜 아버지는 아니었다. 이슬람교를 강요하거나 단식을 해야 한다고 난리를 피우지도 않았다. 그러나 아버지는 십이 년간 엄마를 속였다. 파키스탄에 본처가 있었다. 중학생이었을 때, 아버지의 영문 메일을 훔쳐 읽고 엄마에게 알려주었다. 엄마는 이혼을 요구했고 아버지는 쫓겨나듯 파키스탄으로 떠났다. 아버지가 출국하는 날, 엄마는 나를 공항에 데려갔다. 나는 먼 여행 떠나는 사람을 전송하듯 그렇게 아버지를 보냈다. 살아있는 사람을 관에 실어 날려 보내는 기분이었다. 가끔 내가 보고 싶다며 서툰 영어로 쓴 메일을 보내기도 했는데 고등학교를 졸업할 즈음부터는 그것마저 없었다.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머뭇거리다가 수도를 틀어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손을 씻었다. 핸드폰을 켜고 이슬람 예배 애플리케이션이 알려주는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이 방향으로 나아가면 아버지가 있는 곳에 닿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이층 버스 앞문 아래에 뒤축이 구겨진 커다란 운동화가 보였다. 인기척이 없기는 했으나 곰씨가 버스 안에 있을지도 몰랐다. 검은 유리창 뒤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을 수도 있었다. 남의 집에서 뭘 하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고 이층 버스 안에서 곰씨가 나오기라도 하면 어쩌나 싶었다. 나는 발자국 소리를 감춰가며 그곳에서 나왔다. 집으로 돌아가 폐차 대행 서비스를 부르기로 했다.
“사람들이 우리를 삼보조라고 한대요…전산실 보조, 교무 보조, 과학실험 보조”
그게 무슨 뜻이냐고 내가 묻자 세령씨가 말했다.
“전산실 보조, 교무 보조, 과학실험 보조요. 멋지지 않아요? 무슨 삼총사 같애.”
그렇게 말하면서도 세령씨 얼굴은 어딘지 모르게 어두웠다. 곰씨도 세령씨가 평소와 같지 않다고 느꼈는지 손에 숟가락을 든 채 세령씨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곰씨와 내가 가만히 있자 세령씨는 고개를 들고 억지로 웃으며 “무기 계약 못할 거 같아요. 다른 학교 알아보라고, 아까 교감선생님이 그러셨어요” 하고 말했다.
퇴근 뒤에 우리는 술을 마셨다. 술자리까지 함께하면 그날 공부를 날리는 셈이었지만 조르는 세령씨를 밀쳐내지 못했다. 둥근 테이블이 열 개쯤 놓인 프랜차이즈 술집이었다. 주문을 받고 안주를 나르는 사람들은 내 또래였다. 가슴에 교육생이라는 명찰을 단 여자 직원이 주문을 받았다. 우리는 안주로 저녁식사를 대신했고 세령씨는 칵테일 소주만 시켰다. 세령씨는 금방 취했다. 평소에는 말이 많은 사람이었는데 술이 들어갈 만큼 들어가고 나서는 곰씨처럼 말이 없었다.
세령씨는 발그레한 얼굴로 뭔가를 삭인다는 것처럼 술을 들이켰다. 안됐다 싶었지만 다른 학교를 알아보면 될 일인데 너무 지나치게 힘들어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다. 곰씨는 냉정한 얼굴로 술잔을 기울였는데 그런 그의 모습은 어른처럼 보였다. 긴말을 하지 않아도 사태의 전후를 짐작하는 듯했고 자기가 경험한 것들로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 같았다. 곰씨는 큼지막한 손으로 노가리를 결대로 찢어 세령씨 앞에 놓아주기도 했다. 세령씨는 충혈된 눈을 손바닥으로 부비며 “우리 곰씨 아저씨, 정말 고마워요” 하고 말했다. 말이 옆으로 흐르는 상태는 아니었지만 이쯤에서 술을 조절하지 않으면 세령씨를 업고 집에 가야 할지도 몰랐다.
술집은 장사가 잘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저녁식사 시간이 제법 지났는데도 홀에 손님은 우리뿐이었다. 술집 문이 열리면 들어오는 사람을 쳐다보게 될 정도였다. 딸랑거리는 종소리와 함께 아기를 안은 여자가 들어왔다. 술집 종업원들이 일어서서 인사를 하는 걸 보니 술집 주인의 아내인 것 같았다. 홀에 사람이 너무 없었기 때문인지 아기 엄마는 착잡한 표정이었다. 주방에서 남자가 걸어 나와 두툼한 옷에 파묻힌 아기를 건네받았다. 귀를 기울이지 않아도 부부가 작은 소리로 나누는 말이 들렸다. 밥은 먹었냐는, 집은 춥지 않냐는 별 내용 없는 대화였다. 세령씨는 등받이에 기대고 앉아 부부와 아기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품에 안긴 아기가 칭얼거리면 침을 삼키기도 했다.
세령씨는 아기와 엄마가 술집을 나갈 때까지 술잔만 만지작거렸다. 얼굴은 귓불까지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아, 보고 싶다. 하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 누구를 두고 하는 말인지 알 수 없었다. 세령씨는 흐느끼는 것처럼 웃으며 내가 비밀 하나 얘기해줄까요? 하고 말했다. 곰씨와 나는 세령씨를 쳐다보았다. 세령씨는 아기 엄마가 나간 문을 멍하니 바라보며 말했다.
“나, 미혼모였어요. 가능하면 키우고 싶었어요. 고등학생 때였고.”
은밀하고 날카로운 말이었다. 맥락 없이 터져 나왔으면서도 듣는 사람의 마음을 움켜쥐는 고백이었다. 긴 설명이 없어도 삶을 짐작할 수 있었다. 세령씨는 그렇게 말해놓고는 기능이 멈춘 로봇처럼 가만히 앉아 있었다. 벌어진 눈은 초점 없이 테이블 위에 고정됐고 숨도 얕게 쉬었다. 표정 없는 얼굴이어서 마음이 아렸다. 우리에게 무엇을 바라는 게 아니었고 도움을 원하는 분위기도 아니었다. 그런 사람이 어디 한둘인가, 하는 말로 도닥일 수 있는 사정이 아니었다. 생각해 보니 세령씨의 지난 삶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었다. 고향이 전남 나주라는 것과 방송통신대학을 졸업했다는 것 정도였다.
나도 무언가를 꺼내 놓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멈칫거릴 뿐 말이 나오지는 않았다. 아버지가 파키스탄 사람이었다는 것과 파키스탄에 본처가 있는 걸 숨기고 어머니와 결혼했다는 것이 세령씨와 보조를 맞추어 꺼낼 수 있는 이야기였다. 세령씨와 곰씨의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경계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나면 선을 넘어 저쪽으로 건너갈 것 같았다. 거리를 두자니 상대가 너무 가까이 다가와 있었고 마주 다가가자니 이건 아닌 것 같았다. 나는 로스쿨 면접을 생각했다. 미혼모가 경험하게 되는 법적 분쟁은 어떤 것이 있을까 생각했다. 난데없이 아버지는 천국에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목이 말라 노란색 칵테일 소주를 들이켰다. 아버지는 파키스탄에서 본처와 함께 잘살고 있을지도 몰랐다. 고향에 돌아갔으니 문제가 있던 신장이 다시 회복됐을 수도 있었다. 무슬림들은 아이 많이 낳는 걸 중요하게 여긴다니까 어쩌면 아내를 둘쯤 더 얻고 애도 서넛쯤 더 낳아 잘살고 있을지도 몰랐다.
나는 곰씨를 곁눈질했다. 곰씨는 어두운 얼굴로 검은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가로수로 심긴 메타세쿼이아 나무 앞으로 빨간색 더플코트를 입은 여자가 빠른 걸음으로 걸어갔다. 곰씨는 굵은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탁탁 소리가 나도록 두드렸다. 곰씨의 귀밑 턱 근육이 실룩거렸다. 나는 곰씨가 무슨 말을 하려는 것임을 알아차렸다. 그런 그의 반응이 고마웠고 꺼낼 이야기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나는 아버지를 죽였다.”
쓰고 독한 기운이 가슴의 핏줄을 따라 등줄기까지 퍼져나갔다. 나는 눈을 감았다. 내가 한 말이 아니었다. 아버지를 죽였다는 고백은 곰씨의 것일 뿐이었다. 생각을 멈추어야 했다. 여기서 선을 넘어 내 안을 더듬어봐야 좋을 것이 없었다. 과거로 치닫는 생각을 잡아채야 했다. 곰씨는 중얼거리듯 말했다.
“어릴 때여서 감옥은 안 갔어. 실수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알라께서는 나를 구원하셨지.”
손발을 깨끗이 씻고, 신발마저 훌훌 벗어버리고 성지로 들어서고 싶었다
술자리를 파한 뒤 곰씨가 자기 집에 가보지 않겠느냐고 했다. 세령씨가 좋다며 박수를 쳤다. 세령씨는 내 팔을 팔짱 끼듯 붙들었다. 한잔 더 하자며 같이 가자고 조르듯 말했다. 이를 악물고 버텨야 할 만큼 취한 상태였으나 나는 “좋아요! 가요!” 하고 큰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길가로 나서서 택시를 잡았다. 곰씨의 세계가 있는 이층 버스 안으로 들어가 버리고 싶었다. 곰씨의 동굴로 들어가 몸을 웅크리고 마음껏 앓고 싶었다. 생존을 위해 해야 하는 최소한의 것만 해결하며 시간에 맞추어 메카를 향해 엎드리고 싶었다. 손발을 깨끗이 씻고, 흰옷을 입고, 신발마저 벗어버리고 성지로 들어서고 싶었다. 흰 손바닥을 얼굴로 올리며 아버지가 읊던 말로 기도하고 싶었다.
곰씨는 몸을 우겨넣듯 택시에 올랐다. 택시 조수석을 최대한 뒤로 빼고도 택시기사의 몸이 한쪽으로 밀렸다. 취한 나는 그 모습을 보고 배가 아리도록 웃었다. 세령씨도 손뼉을 치며 깔깔거렸다. 택시기사가 무어라 말하려 하자 곰씨는 “승차거부는 안 됩니다. 여기서 멀지 않아요” 하고 말했다. 택시기사는 운전을 하면서도 옆자리에 앉은 곰씨를 흘끗거렸다. 세령씨는 택시기사에게 걱정 말라고, 우리 곰씨 아저씨 엄청 착하고 좋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나도 곰씨의 두툼한 어깨를 잡고 “뭔 어깨가 내 허벅지 같아!” 말하며 숨 넘어가는 소리로 웃었다. 웃으면서도 눈물이 났다. 나는 소리 내어 울었다 웃기를 반복했고 세령씨는 왜 우냐며 자기 손으로 내 얼굴을 문질렀다. 그러면서 자기도 울음을 터트렸다. 택시기사는 가로등이 없는 어두운 길을 지나 폐차장 앞에 차를 세웠다. 폐차장은 고요했다. 달빛마저 없었다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만큼 컴컴했다.
술이 깨는 기분이었다. 우그러진 저 문을 지나면 선을 넘을 것이고 곰씨의 동굴이 있는 이층 버스에 닿을 터였다. 곰씨와 세령씨가 철문 앞에서 택시를 돌아볼 때까지 나는 조수석 좌석을 붙들고 앞을 노려보았다. 택시기사가 성난 목소리로 어서 내리라고 말했다. 세령씨가 손으로 눈을 가리며 나를 향해 손짓했다. 나는 이를 악물고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곰씨도 바지 주머니에 두 손을 꽂고 내 쪽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전조등 불빛 때문에 내 얼굴이 보일 리 없는데도 내 눈을 깊이 들여다보는 것 같았다. 잠잠히 나를 바라보던 곰씨는 내가 보라는 듯 세령씨의 손을 잡았다.
나는 내리지 않았다.
겨울방학이 왔고 모처럼 공부에 전념할 수 있었다. 학교를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로스쿨 준비에 매달릴까 생각도 했지만 현실이 만만치 않았다. 엄마는 가사도우미 일을 힘에 부쳐 하는 분위기였다. 내가 모르는 약을 삼키는 엄마를 나는 똑바로 보지 않았다. 무슨 약이냐고 묻지 않았다. 엄마가 약을 삼키는 모습은 닥쳐선 안 될 현실을 부르는 모습이기도 했다. 로스쿨 인터넷 강의에서 강사로 나온 변호사는 반들거리는 쥐색 정장에 짙은 녹색 넥타이를 매고 품위 있는 말투로 말했다. 변호사가 되고도 수습기간에는 백만 원 남짓한 월급을 받기도 한다고 했다. 경쟁이 치열해서 전문성이 없으면 가차 없이 밀려난다고 했다. 그렇게 말하는 강사 변호사의 얼굴은 안쓰럽다는 표정이면서도 당당했다. 그 말은 나로 하여금 고삐를 죄게 했다. 조이는 그 느낌은 익숙하고 자연스러웠다.
새 학기가 됐고 나는 출근과 공부를 병행하는 생활을 계속했다. 세령씨는 없었다. 우리의 회합은 그날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세령씨가 떠나자 전산실 아지트 모임은 이어지지 않았다. 복도를 지나가면서 살펴본 전산실은 세령씨와 청소하기 이전처럼 너저분해져갔다. 곰씨는 점심시간에도 급식실로 나오지 않았다. 가끔 복도에서 곰씨를 만나면 나는 데면데면한 얼굴로 인사를 했다. 곰씨는 그동안 아무 일도 없었다는 얼굴이었다. -끝-
문경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