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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 전쟁 종전시 종전 반대 부하에게 살해당한 근위사단장]모리 다케시

Bawoo 2016. 10. 5. 22:14

 

 

 

모리 다케시 (森赳)

1894년 4월 25일 생 - 1945년 8월 15일 사망

 

 

고치 현에서 은행가의 장남으로 태어난 모리 다케시는 히로시마 육군지방유년학교, 중앙유년학교를 거쳐 1916년 5월에 육사 28기를 졸업해 소위로 임관 후 기병 제 13연대에 배치되었다. 육군기병학교를 수료한 후 육사교관을 거쳐 1927년 12월에 육군대학 39기를 졸업했다.

 

기병 제 13연대장, 참모본부를 거쳐 관동군 참모, 기병학교 교관, 육군대학 교관을 역임한 모리는 중일전쟁시 제 1군 참모로서 중국에 출정했다. 그 후 제 6군 참모부장을 거쳐 1941년 8월에 소장으로 진급해 태평양전쟁을 맞이했다. 제 6군 참모장, 헌병대 사령부 본부장을 역임한 후 제 19군 참모장으로서 암본으로 진출한 모리는 자바 섬의 수비를 담당했다.

 

1945년 3월에 중장으로 진급한 모리는 참모본부를 거쳐 근위 제 1사단장으로 취임해 궁성 경비에 종사했다. 1945년 8월 14일에 포츠담 회담의 수락과 관련하여 동부군관구 참모의 방문을 받고 승인방침을 확정한 모리는 그 후 동부군관구 사령부에 소집을 명령하지 않은 채 다나카 시즈이치 사령관으로부터 정식으로 종전의 명령을 전달받았다.

 

8월 15일 새벽에 항복수락에 반발한 장교들에 의한 궁성사건이 발생했는데, 이 때 근위사단 사령부의 사단장실에서 시라이시 미치노리 중좌와 회담중이던 모리 중장은 사단장실을 침입한 이다 마사다카 중좌, 시자키 지로 중좌, 하타나가 켄지 소좌, 쿠보타 켄조 소좌일행의 궐기압박과 마주쳤다.

 

이다 중좌가 궐기를 강요했지만 모리 중장은 쿠데타 참가를 거부했는데, 이 때 하타나가 소좌가 쏜 총에 맞고 쓰러졌을 때 항공사관학교의 우에하라 시게타로 대위가 휘두른 군도에 베여 살해당하고 말았다.

 

 

 

출처 : 후쿠가와 히데키 <일본육군장관사전>, 사진은 라이센스가 필요없는 무료공개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