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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제국 최후의 육군대신]시모무라 사다무 (下村定)

Bawoo 2016. 10. 5. 23:56



시모무라 사다무 (下村定)

1887년 9월 23일 생 - 1968년 3월 25일 사망

 

 

 

고지현에서 출생한 시모무라는 1908년 5월에 육사 20기를 졸업한 후 포병소위로 임관해 1916년에 육군대학 제 28기를 수석으로 졸업했다. 1917년 10월에 참모본부 근무를 거쳐 1919년에 프랑스 주재무관으로 유럽에서 근무한 시모무라는1922년에 귀국 후 소좌가 되어 1925년부터 육군대학 교관으로 일했다.

 

1927년에 제네바 해군군축조약 당시 일본측 군축위원이었던 시모무라는 3월에 포병중좌로 승진 후 1930년에 다시 참모본부로 돌아와 1933년에 야전중포병 제 1연대장으로 부임 후 1935년에 관동군 고급참모 겸 제 1과장으로 일했다. 1936년에 소장으로 진급한 시모무라는 8월에 참모본부 제 4부장으로 부임 후 1937년에 제 1부장이 되었다.

 

1939년에 육군중장으로 승진 후 육군대학 교장을 거쳐 1942년 10월에 제 13군 사령관으로 취임한 시모무라는 1944년에 서부군 사령관, 11월에 북지나 방면군 사령관이 되었다가 1945년 5월에 대장으로 승진 후 종전을 맞이했다. 그는 패전 후인 8월 23일에 육군장관 겸 교육총감이 되었다. 이어서 시데하라 내각에서도 유임된 시모무라는 제국육군 최후의 육군장관이기도 했다.

 

1945년 11월 28일에 열린 제국의회 중의원 본회의에서 사토 다카오 의원으로부터 군국주의가 발달했던 이유에 대해 견해를 질문받자 육군장관이었던 시모무라는 다음과 같이 답변했다.

 

<이른바 군국주의의 발생에 대해서는, 육군으로 말하자면 육군 내의 인간이 군인으로서의 올바른 길을 오해하여, 특히 지휘권한에 있는 자가 행실이 나빴던 것, 그것이 근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것이 내외의 여러가지 정세와 복잡한 인과관계를 발생시켜 어떤 자는 군의 힘을 배경으로, 어떤 자는 그 세력에 편승하여 이른바 독선적이고 횡폭한 조치를 했던 자가 만든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런 것을 놓아둔 것이 군의 부당한 정치간섭입니다. 설마했던 것이 중대한 원인이 되어 지금의 이러한 비참한 상태를 국가에 안긴 것은 어떤 변명도 통할 수 없습니다. 내가 육군 최후의 수장으로서 의회를 통하여 이 점에 대해 전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하는 바입니다. 육군은 해체했습니다. 과거의 죄업에 대해 우리들은 금후, 사실에 기초하여 사실적으로 사죄해야 합니다. 정말로 유감이지만 국민 여러분께 동정을 구하며 육군의 과거에 대한 죄악때문에 지금 사토 의원의 질문처럼 충직했던 군인의 공적을 소멸시키고 마는 것은

많은 전몰영령들에게 큰 실례가 되는 것임에 이를 참작하여 줄 것을 부탁드리는 바입니다...>

 

 

1959년에 열린 제 5회 참의원 선거에서 자민당 전국구 의원으로 당선된 시모무라는 이후 제 7회 선거에도 출마했지만 낙선했다. 그 후 1968년 3월 24일, 도쿄 분쿄구에서 버스에 치여 중상을 입은 시모무라는 다음날 부상이 악화되어 사망하였다. 향년 80세였다. 

 

 

출처 : 후쿠가와 히데키 <일본육군장관사전>, 사진은 라이센스가 필요없는 무료공개용     


[출처] 시모무라 사다무|작성자 도위창/ 정보 -책 '쇼와육군 '931~94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