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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 김홍도의 '죽리탄금도"화제시

Bawoo 2016. 11. 8. 21:58


[김홍도/ 죽리탄금도]

 

[종이에 수묵/고려대 박물관 소장]

 

 

 

독좌유황리()

탄금복장소()
심림인불지()

명월래상조()

홀로 대숲 깊숙이 앉아 거문고 타니
그 소리 긴 휘파람 소리 내어 되울리고
심림()에 묻혀 있어 뉘 알랴만
명월()이 찾아와 서로 반기네



김홍도의 부채그림 ‘죽리탄금(竹裏彈琴·대숲 속에서 금을 뜯다)’에 홀로 금을 연주하는 선비가 앉아 있다.

당나라의 대시인 왕유(王維·699∼761)가 펼쳤던 대숲 속 탄금 독주 퍼포먼스의 재현이다. 선비는 홀로 앉히고 그 뒤에 차 끓이는 동자와 그 앞에 커다란 바위를 포치해 대숲이란 연주무대를 입체적으로 안배했다. 작은 부채 속 깊숙한 공간설정이며 댓잎의 농담 및 시원스러운 여백 처리에서 예사롭지 않은 구성력이 엿보이는 그림이다. 화면 위 빈 곳 흘려 쓴 글씨는, 김홍도가 왕유의 시 ‘죽리관(竹裏館)’을 옮겨 적은 것이다. 



그윽한 대숲에 나 홀로 앉아, 

거문고 타다가 휘파람 길게 불어본다. 

숲이 깊으니 사람들이 모르지만 

밝은 달이 비추어 주네. 

獨坐幽篁裏(독좌유황리), 

彈琴復長嘯(탄금부장소). 

深林人不知(심림인부지), 

明月來相照(명월래상조). - 왕유, ‘죽리관’ 

달 아래 대나무 숲에서 홀로 금을 연주하다 소리 높여 노래한다는 내용에는 다분히 당나라 시 특유의 주정적 낭만이 드러난다. 이러한 탄금의 연주를 따라해 본 사람은 별로 없겠지만, 옛 그림과 옛 시에서 수없이 재현되고 정착된 이미지다. 

왕유는 40세에 벼슬을 접고 홀로 장안 근처에 별장을 짓고 이사해 늘그막을 지냈다. 그는 30세에 아내와 사별했으나 불심을 지녔기에 홀로 지냈다고 한다. 그의 별장은 사실상 여러 채 건물이 화려하고 번듯한 호화별장이었는데, 왕유는 소박하게 지냈노라 생각했고 후대인들도 그것을 인정했다. 별장 이름이 ‘망천장’이다. 망천의 명소를 읊은‘망천별업’ 20수가 유명한데, 그 가운데 ‘죽리관’이 널리 인용됐다. 중국 원나라의 ‘망천도’를 보면 죽리관은 천여 그루 대나무 속 우람한 건물인데, 명나라로 들면서 사람들은 죽리관의 풍경을 소박하게 그림으로써 그들 자신의 운치를 소박한 양 표현했다.

특별히 애호된 죽리관의 주제는 무엇일까. 홀로 연주하다 신이 나서 노래하며 달빛에 만족한다니, 건강한 자족이며 자오(自娛)이다. 달과 대숲의 무대에 단정하게 앉은 그림 속 연주자는 실로 의연하다. 남명선생 조식이 병석에 누웠을 때 한강선생 정구가 문병을 했다. 조식이 말했다. “고질을 앓다가 그대를 대하니 마치 왕유의 망천도를 감상하듯 황홀하구료.” 김홍도의 ‘죽리탄금도’를 보며 우리도 황홀한 기운을 느껴보면 어떠할까. 사실 조식은 그림은 보지 않은 채, 정구의 방문으로 연상된 기억 속 그림의 이미지로 큰 힘을 얻고 있다. 



<해설 자료: 고연희의 옛 그림 속 인물에 말을 걸다>그윽한 대숲서 홀로 琴을 타니 ... 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