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訪曹處士山居(방조처사산거) - 박순(朴淳)

Bawoo 2016. 12. 2. 22:56

訪曹處士山居(방조처사산거)

                                                                                   - 박순(朴淳)

 

醉睡仙家覺後疑(취수선가교후의) : 신선 집에 취해 자다 깨어 의아했는데

白雲平壑月沈時(백운평학월침시) : 흰 구름에 잠긴 골짝 달도 지는 시간이라

翛然獨出脩林外(소연독출수림외) : 후다닥 긴 숲 밖을 홀로 뛰쳐나오려니

石逕音宿鳥知(석경공음숙조지) : 돌길에 지팡이 소리 자던 새만 듣누나.

[서예 습작]




 

박순(朴淳, 1523년 ~ 1589년)은 조선의 문신이며 성리학자, 시인이다. 본관은 충주. 자는 화숙, 호는 사암이다.

성균관 대사성 박우(朴祐)의 아들이며 눌재(訥齋) 박상(朴祥)의 조카이다. 훈구파신진 사림의 교체기에 사림운동에 전력한 선비이자 관료로서, 왕의 외삼촌이자 훈구파의 대부였던 윤원형을 축출시켜 조선 역사에 사림의 시대를 열었다. 성균관 대사성, 예조판서, 한성부 판윤 등을 거쳐 영의정에 올랐고 청백리에 녹선됐다. 조선시대를 통틀어 장원급제자는 영의정이 되지못한다는 징크스를 깬 몇 안되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중종실록을 마무리할 정도의 학자이자 관료였던 부친 육봉 박우(-祐)에게 14세까지 배웠고, 15세에 화담 서경덕의 문인(門人)으로 들어가 책과 실제를 병행하는 학풍으로 평생을 살았다. 남명 조식퇴계 이황의 문하생이기도 했으며 고정관념에 얽매이거나 구애받는 것을 싫어했다. 이런 그의 성향으로 원로가 된 후에도 한참 후배였던 율곡 이이성혼과도 교우가 매우 두터웠으며 이 때문에 서인(西人)으로 지목되면서 당시 주류 유학계의 탄핵을 받았다. 그의 동문이나 문하생들이 모두 동인(東人)이 되어 그를 공격했고 14년간이나 지켜왔던 정승 자리에서 내려와 포천에 은거했다. 시호는 문충이며, 홍문관 대제학영의정으로 품계는 대광보국숭록대부이다. 사후 1591년 광국원종공신 1등에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