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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회(書懷)-김굉필(金宏弼)

Bawoo 2016. 12. 4. 21:51


서회(書懷)

                                                                              -김굉필(金宏弼)


處獨居閒絶往還(처독거한절왕환) : 홀로 있으며 한가한 곳에 사니, 오가는 이 드물고
只呼明月照孤寒(지호명월조고한) : 오직 달을 부르니, 가난하고 외로운 나를 비추네
憑君莫問生涯事(빙군막문생애사) : 그대 생각으로, 나의 생애 묻지 말라
萬頃波數疊山(만경연파수첩산) : 넓은 바다 안개 낀 물결, 첩첩한 산들이 가득하니라


[서예 습작]





김굉필(金宏弼, 1454년 ~ 1504년)은 조선 전기의 문인, 교육자, 성리학자(號)는 한훤당(寒暄堂)·사옹(蓑翁),[1] 또는 한훤(寒暄)이며 자는 대유(大猷), 시호는 문경(文敬)이다. 점필재 김종직의 제자로 김일손, 김전, 남곤, 정여창 등과 동문이었다. 《소학》에 심취하여 스스로 '소학동자'라 칭하였고, 《소학》의 가르침대로 생활하였다.

1480년(성종 11) 초시에 합격하고, 1494년(성종 25년) 훈구파 출신 경상도관찰사 이극균(李克均)에 의해 유일(遺逸)로 천거되어 출사하여 주부(主簿), 사헌부감찰, 형조좌랑 등을 지냈다. 1498년 무오사화가 일어나자 평안도 희천에 유배되었는데, 그곳에서 지방관으로 부임한 조원강의 아들 조광조(趙光祖)를 만나 학문을 전수하였다.

그 자신도 조광조·이장곤·주계정 이심원·김안국·이연경 등의 제자들을 배출했으며 이들은 서인학파를 이루게 되었다. 《소학》을 행동의 근간으로 삼아 《소학》을 알지 못하고는 사서육경을 알 수 없다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본관서흥(瑞興)이다. 한성부 출신.[위키백과 김굉필 에서 발췌]


[시 정보 출처: 책-한국 한시 진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