漫吟(만음)제멋대로 읊다.
- 李玄錫(이현석)
九月西風晩稻黃 [구월서풍만도황] 구월 서풍에 늦벼도 누렇게 익고
寒林落葉盡迎霜 [한림낙엽진영상] 겨울 숲 낙엽은 모두 서리 맞았네
田翁白酒來相餉 [전옹백주래상향] 늙은 농부에게 막걸리 권하며
漫興陶然醉夕陽 [만흥도연취석양] 절로 흥에 취해 지는 해 보네
*寒林;겨울의 낙엽이 진 숲
*漫興:이렇다 하는 느낌이 없이 저절로 일어나는 흥취
[서예 습작]
李玄錫(이현석 1647(인조 25)∼1703(숙종 29).
조선 후기의 문신.
〈이현석 시〉, 『근묵』, 1688, 해행서, 29.1×42.2㎝, 성균관대학교박물관. 경기전(慶基殿) 영정을 봉심한 후 이규보(李奎報)의 시에 차운하여 남용익(南龍翼)에게 준 시.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하서(夏瑞), 호는 유재(游齋). 서울 출생. 실학자인 수광(睟光)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성구(聖求)이고, 아버지는 호조좌랑 상규(尙揆)이며 어머니는 강대수(姜大遂)의 딸이다.
1667년(현종 8) 진사가 되고, 1675년(숙종 1)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 이듬해 예문관검열에 보직된 뒤 삼사의 여러 벼슬을 역임하였다. 1682년 우승지가 되었으나 송시열(宋時烈) 등 서인의 예론(禮論)을 반대하다가 철원에 부처되었다.
1688년 다시 동래부사에 임명되었고, 이듬해 경상도관찰사, 1691년 동지중추부사, 1693년 춘천부사를 지냈다. 이듬해 청풍현감을 자원하여 나가『명사강목(明史綱目)』을 저술하였으며, 그 뒤 한성부판윤·우참찬·형조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관직에 있는 동안 군학(君學)과 시무(時務)에 관한 여러 소장(疏章)과 저서를 제진(製進)하였다. 탕평책과 중농정책을 건의하였으며, 경연강의(經筵講義) 교재의 개편을 진언하였다.
국방정책에도 많은 관심을 가져 강화도 축성방안과 봉수제도의 개선방안 등을 건의하는 상소를 올렸으며, 춘천부사 등 지방관으로 있을 때는 진휼에 심혈을 기울였다.
또 경제세무(經濟稅務)에 관한 실용적인 사상을 가지고 조세의 감면 등 각종 정책을 입안하였고, 역리(易理)로써 군도(君道)와 치술(治術)을 설명한『역의규반(易義窺斑)』을 저술하여 임금에게 올렸다. 성리학에도 조예가 깊었는데, 이론보다는 존심양성(存心養性) 등 실천적인 덕목에 치중하였다.
저술활동
저서로는『명사강목(明史綱目)』24권,『역의규반(易義窺斑)』1권,『유재집(游齋集)』24권 등이 있다.
- 『인조실록(仁祖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사마방목(司馬榜目)』
- 『유재집(游齋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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