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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슈만 교향곡 1번 ‘봄’(Schumann, Symphony No.1 in B flat major Op.38 `Spring`)

Bawoo 2014. 1. 19. 23:57

Schumann, Symphony No.1 'Spring'

슈만 교향곡 1번 ‘봄’

Robert Schumann

1810-1856

David Zinman, conductor

Tonhalle Orchester Zürich

 

David Zinman conducts Schumann's Symphony No.1 'Spring'

 

오! 봄은 한 해의 청춘이요 O! Primavera, gioventu dell'anno,

청춘은 인생의 봄이어라! O! Gioventu, primavera della vita!

이 이탈리아어 시구는 슈만의 교향곡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지만, 만약 슈만 교향곡 1번에 제사(題詞)를 붙인다고 하면 일부러 지어낸다고 해도 이보다 잘 어울리는 글귀를 찾아내지 못할 것이다. ‘봄’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기도 하지만, 이 제목을 붙였을 때 슈만이 암시하고자 한 바는 그저 한 해의 첫 계절이었을까, 아니면 한창 나이를 맞아 만개하려 하던 자신의 삶이었을까? 아마도 둘 다가 아니었을까 싶다.

‘봄’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교향곡 1번은 생동하는 자연의 모습과 만개하는 예술가의 창작력 모두를 뜻하고 있다.

청년 슈만, 인생의 봄을 맞이하다

음악가로서 슈만이 처음 시작한 경력은 피아니스트로서였다. 작곡도 시도하기는 했지만 그가 본격적으로 작곡에 전념하게 된 것은 과도한 피아노 연습으로 손가락을 다친 뒤부터였다. 아무래도 익숙한 영역에서 시작하는 게 편했던지 그의 초기작은 대부분 피아노곡이었다. 그러다 1840년에 이르러 다른 영역에 본격적으로 손을 대기 시작해, 1840년에는 가곡을 백 수십 곡 작곡했고―그래서 이 해를 슈만의 ‘가곡의 해’라 부른다― ‘교향곡의 해’라고 일컬어지는 이듬해 1841년에는 교향곡 1번과 처음에는 교향곡으로 구상되었던 ‘서곡, 스케르초와 피날레’, 교향곡 D단조―훗날 수정을 거쳐 교향곡 4번이 된다― 등을 작곡했다. 이와 같은 창작력의 격렬한 분출을 대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때까지 자신의 삶을 가로막고 있던 큰 장애물이 제거되어 드디어 결혼에 성공했다는 안도감과 행복이 그 원천이었을 것이다.

스무 살 때부터 엄격한 교사인 프리드리히 비크에게서 피아노를 배우게 된 슈만은 그의 딸 클라라를 연모하게 된다. 그러나 비크의 반대로 이들의 열정적인 사랑이 결실을 맺기까지는 여러 해가 걸렸으며, 슈만이 소송을 걸어 법원에서 결혼 허가를 받아낸 것은 1840년에 이르러서였다. 이 해가 슈만에게 ‘가곡의 해’였다는 것은 이미 말했거니와, 이 해의 마지막을 장식한 작품은 뤼케르트―독일 시인으로, 훗날 구스타프 말러가 그의 시에 곡을 붙여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와 <뤼케르트 가곡집>을 작곡하기도 했다―의 시집 <사랑의 봄>에 곡을 붙인 것이었다. 아내 클라라와 함께 작업한 이 공동 가곡집은 이듬해 1월에 완성되었다(Op.37). 이어 슈만이 곧바로 착수한 작품이 바로 ‘봄’이라는 제목이 붙은 교향곡 1번임을 감안하면, 이 가곡집의 제목은 한층 의미심장해 보인다.

슈만의 일기에 적힌 바에 의하면, 이 교향곡은 1841년 1월 23~26일 사이에 스케치가 작성되었다. 불과 나흘 만에 한 교향곡의 전체 스케치가 완료된 것이다. 정말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경이로운 속도이다. 2월 말에 시작된 오케스트레이션 역시 단기간에 끝났으며, 초연은 같은 해 3월 31일에 라이프치히의 게반트하우스에서 열린 클라라의 연주회에서 슈만의 절친한 친구였던 멘델스존의 지휘로 이루어졌다.

Spira Mirabilis performs Schumann's Symphony No.1 'Spring'

2010.12

스피라 미라빌리스는 유럽 각국의 젊은 연주자들이 모여 활동하는 오케스트라입니다. 연주자가 고정되어 있지 않으며 지휘자도 없습니다. 늘 새로운 연주자가 참여하고 공연장에서는 단 한 곡의 작품만 연주합니다. 시대악기를 연구하는 한편으로 일반 청중과 호흡하기 위해 늘 새로운 연주 장소를 물색하는 신세대 신개념 오케스트라입니다.

작곡가 슈만, 음악으로 봄을 노래하다

1악장: 안단테 운 코포 마에스토소-알레그로 몰토 비바체

‘안단테 운 포코 마에스토소’(안단테로 조금 장엄하게)로 지정된 B플랫 장조 4/4박자 도입부는 두 대의 호른과 트럼펫이 나란히 연주하는 팡파르로 시작한다. 주부의 1주제와도 연관이 있는 이 악상은 총주로 다시 한 번 반복되며, 이후 점차 템포가 빨라져 주부로 들어간다. ‘알레그로 몰토 비바체’로 지정되어 있는데 이 경우 ‘비바체’는 템포 지정이라기보다는 그냥 ‘활기차게’라는 뜻으로 이해하면 된다. 즉 ‘알레그로로 매우 활기차게’가 된다. 제시부는 현악기 중심으로 연주되며 기교면에서 다소 까다로우면서 상쾌한 느낌을 주는 1주제와 함께 시작한다. 곧이어 등장하는 2주제는 목관 위주이며 서정적이고 느긋한 표정을 띠고 있어 좋은 대비를 이룬다. 발전부는 1주제를 구성하는 각 동기가 각자 다채롭게 발전하면서 진행된다. 주의할 점은 서주 팡파르의 재현은 엄밀히 말해 재현부의 첫머리가 아니라 발전부의 마지막 부분에 해당한다는 사실이다. 이어 재현부를 거친 다음 코다로 이어져 도입부 음형을 약간 변형한 악구와 더불어 마무리된다.

2악장: 라르게토

E플랫 장조 3/8박자. 3부 형식인데 실질적으로는 단일 주제가 지배하고 있다. 독특한 당김음을 지닌 이 주제는 매우 온화한 느낌을 주며, 1악장 1주제와도 관련이 있다. 1바이올린이 옥타브로 주요 주제를 연주한 다음 경과구(중간에 B플랫장조로 조바꿈한다)를 거쳐 다시 원조로 복귀한다. 코다에서는 트롬본이 3악장을 암시하는 악구를 연주하면서 G단조로 바뀌고 쉼 없이 3악장으로 곧바로 이어진다.

3악장: 몰토 비바체

D단조 3/4박자. 두 개의 트리오를 지닌 스케르초이다. 현이 주요 주제를 거칠게 연주하는 스케르초 섹션에 이어 등장하는 1트리오는 D장조 2/4박자이며, 다시 스케르초 섹션을 거쳐 2트리오(B플랫장조 3/4박자)로 접어든다. 세 번째 스케르초 섹션은 단순히 원래 스케르초를 반복하지 않고 새로 작곡된 것으로, 주요 주제가 한 번 나타난 뒤 코다로 이어진다. 코다는 D장조로 1트리오를 회상한 뒤 끝난다.

4악장: 알레그로 아니마토 에 그라치오소

B플랫 장조 2/2박자. 짧은 서주 후 소타나 형식으로 되어 있는 주부로 들어간다. ‘알레그로 아니마토 에 그라치오소’는 ‘알레그로로 생기 있고 우아하게’라는 뜻이다. 서주의 상승하는 음형은 2주제부와 발전부에서도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주부는 1바이올린이 연주하는 나긋나긋하고도 낙천적인 1주제로 시작된다. 2주제는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전반부는 슈만의 피아노곡 <크라이슬레리아나>의 마지막 곡 주제와 동일하며, 후반부는 서주부 음형을 차용하고 있다. 2주제가 D단조로 되풀이된 후 1주제가 재등장하고, 2주제 후반부 음형이 전개되면서 제시부가 끝난다. 이것이 한 번 되풀이된 다음 발전부로 넘어간다. 비교적 짧은 발전부에 이은 재현부는 제시부와 비슷하게 진행되지만 2주제는 C단조와 G단조로 두 번 연주된다. 힘찬 코다와 함께 전곡이 마무리된다.

‘봄’과 관련된 음악은 슈만의 교향곡뿐만 아니라 비발디의 <사계>서부터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며, 들으면서 받게 되는 느낌도 곡마다 각각 다르다. 이 가운데 어떤 작품이 봄을 제대로 묘사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듣는 이의 태도와 기분에 달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봄이라는 계절에 대해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우리의 마음이 얼어붙어 있다면 ‘봄이되 봄이 아닌’(春來不似春) 것밖에 더 되겠는가? 바쁘더라도 때로는 우리 주변에 어느새 찾아와 있는 봄날을 즐길 수 있는 여유를 가졌으면 싶다.

 

추천음반

자발리쉬/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의 1972년 녹음(EMI)은 발매 이래 이 곡에 관한 한 언제나 한 손에 꼽히는 명연이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큰 스케일과 중후한 음색, 호쾌한 박력이 실로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상쾌한 연주이다. 한층 밝고 화려하며 색채감이 뚜렷한 카라얀/베를린 필하모닉의 1971년 녹음(DG)은 자발리슈의 녹음과 흥미로운 대비를 이룬다. 시대악기 연주 가운데서는 가디너/혁명과 낭만의 오케스트라의 1997년 녹음(Archiv)이 단연 뛰어나다. 어떤 애매함도 없이 기능미의 극한을 보여주는 이 연주는 아지랑이나 식곤증 따위와는 무관하게 구름 한 점 없이 화창한 오월의 하늘을 보는 듯하다. 만약 말러가 전곡에 걸쳐 재 오케스트레이션한 버전(관현악 편성을 확대하고 일부 대목을 대위법적으로 보강했다)에 관심이 있다면, 유려함과 균형 감각이 돋보이는 샤이/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의 2007년 녹음(Decca)이 현재로서는 가장 이상적인 선택이 될 것이다.

 

황진규(음악 칼럼니스트) 클래식음악 전문지 <객석>, <그라모폰 코리아>, <스트라드>, <인터내셔널 피아노>, <콰이어 앤 오르간>, <코다>, <라 무지카> 등 여러 잡지에 리뷰와 평론, 번역을 기고해 온 음악 칼럼니스트이다. 말러, 브루크너, 쇼스타코비치, 닐센의 음악을 가장 좋아하며, 지휘자 가운데서는 귄터 반트를 특히 존경한다.

 

  출처 : 네이버캐스트 오늘의 클래식>명곡 명연주 2010.05.17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contents_id=2728  

 

다음 글은 동아일보 문화부 유윤종 선임기자의 2007.06.15 칼럼입니다. 슈만의 교향곡 ‘봄’에 대해 음악애호가 A와 음악 칼럼니스트 B 두 사람의 대화를 빌려 재미있게 쓴 글이라 올립니다.

슈만, 슈베르트 계보 잇다

글: 유윤종(동아일보 문화부 선임기자)

A: 이제 누구를 불러올까요? 1809년생인 멘델스존, 1810년생인 슈만. 연배도 비슷하고, 슈베르트의 교향곡에서 19세기 후반의 풍요한 교향곡 세계를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한 점도 공통점이군요. 두 분이 또한 친구였고. 한 살이라도 많은 멘델스존을 불러올까요?

B: 순서로 따진다면 그게 맞겠죠. 그러나 우리는 슈만을 먼저 만나겠습니다. 이유는 두 가지에요. 하나는, 이제 3월이잖아요? 슈만의 첫 번째 교향곡인 ‘봄 교향곡’을 소개하기에 계절감이 그만이죠.

A: 찬성이에요. 그러다 보면 5월의 화창한 날에는 멘델스존의 ‘이탈리아 교향곡’도 나오겠군요.

B: 멀리 보시는 성격이군요. 또 한 가지는, 앞선 주인공 슈베르트의 영향력을 슈만이 더 직접적으로 고백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슈베르트의 기억이 지워지기 전에 그 얘기를 꺼내는 게 좋겠네요.

A: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봄’ 교향곡은 슈만이 슈베르트의 교향곡 제9번을 찾아낸 이후에 이 작품에서 영향을 받아 쓴 작품인 거죠?

B: 네, 1939년 말에 스물아홉 살 한창 나이였던 슈만이 연인이었던 클라라 비크에게 쓴 편지를 볼까요. 이렇게 적었네요.

“오늘 슈베르트의 교향곡 연주를 들었소. 이 곡에서는 마치 악기들이 사람의 음성처럼 들리오. 그리고 마치 네 권으로 된 소설처럼, 마치 천국처럼 크고 길어요. 행복을 느꼈소. 앞으로 당신이 나의 아내가 되고, 나도 이런 교향곡을 쓸 수 있게 된다면 좋으련만!”

A: 역시 ‘그레이트’ 혹은 ‘무궁동 교향곡’ 이야기군요. 듣는 제 가슴이 막 벅차오르는 것 같아요. 이 젊은 작곡가의 꿈은 결국 둘 다 실현되잖아요.

B: 그렇죠. 신혼의 단꿈을 인생의 봄날로 부르지 않는다면 다른 어떤 것이 거기에 해당되겠어요. 그 행복감을 구비구비 선율에 담아낸 야심작이 바로 슈만의 첫 교향곡이었죠.

A: 슈만이 클라라의 아버지인 프리드리히 비크의 반대 때문에 사랑의 결실을 맺지 못하고 오랫동안 힘들어했던 것은 널리 알려진 얘기죠. 저 편지를 쓸 당시에는 어떤 상황이었는지 궁금해요.

B: 한 마디로 한창 힘들었죠. 저 편지가 나온 바로 이듬해에야 법원에서 승소 판결을 받고 결혼에 골인할 수 있었거든요.

A: 여기서 지난 회 이야기를 모르는 독자들을 위해 슈만과 슈베르트의 교향곡이 가진 남다른 사연을 다시 설명해주시는 것이 좋을 것 같네요.

B: 1939년, 빈을 방문한 슈만은 베토벤과 슈베르트의 묘지를 찾아 경의를 표한 뒤 슈베르트의 형인 페르디난트를 방문합니다. 페르디난트는 이 젊은 작곡가에게 동생이 죽은 뒤 10년이 지나도록 공개되지 않았던 교향곡 제9번 ‘그레이트’ 악보를 넘겨주었죠. 악보를 넘겨보고 경탄한 슈만은 이를 세상에 알리기로 결심하고 곡의 공개에 전력을 기울입니다.

A: 그리고 당시 지휘자로 이름을 날리던 멘델스존에게 이 작품을 전해주었고.

B: 작품은 라이프치히의 게반트하우스에서 1939년 멘델스존의 지휘로 세상의 빛을 보게 됩니다. 앞에 슈만이 연인 클라라에게 쓴 편지는 그 두 번째 공연을 보고 기쁨과 흥분에 차서 쓴 것이죠. 슈만은 고전주의와 낭만주의의 다리를 잇는 슈만의 장대한 교향곡에서 자신이 헤쳐 나가야 할 교향악의 가능성을 느꼈을 겁니다.

A: 슈만은 곧바로 첫 교향곡에 착수했나요?

B: 그렇진 않았습니다. 아직 신혼의 단꿈에 젖어 있던 1841년 1월, 슈만은 우연히 무명 시인이었던 아돌프 뵈트거의 시 한 편을 접하게 됩니다. “옮겨라, 그대 걸음을 옮겨라, 골짜기에 봄이 싹트고 있나니…” 로 시작되는 시였는데요….

A: 생각보다는 밋밋하게 들리는 시네요. 슈만으로서는 한창 행복했던 시기였으니 눈에 딱 와 닿았는지도 모르겠어요.

B: 그랬겠지요. 그런데 봄에 대한 시를 읽고 교향곡을 착상한다?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넘어갈 뻔한 일이지만 그것은 교향곡의 역사에 있어서 중대한 발상의 전환을 뜻하는 거였어요.

A: 왜죠? 하이든도 ‘놀람’ ‘시계’ 같은 제목으로 교향곡을 썼고, 베토벤도 ‘전원 교향곡’을 남겼잖아요. ‘운명’이나 ‘영웅’은 베토벤이 의도한 제목인지 의심스럽다고 해도….

B: 조금 다릅니다. 일단 ‘놀람’이나 ‘시계’는 시적인 표제라고 할 수 없죠. 베토벤의 ‘전원’도 다른 문학 장르의 작품과 연계된 제목은 아니었습니다. 낭만주의 예술의 특징 중 하나인 ‘장르 허물기’가 슈만의 시대에 와서 시작됐음을 바로 ‘봄 교향곡’에서 알 수 있는 거예요. 한 발 더 나아가면, 슈만의 교향곡 제3번 ‘라인’이나 비슷한 시기에 나온 멘델스존의 ‘스코틀랜드’, ‘이탈리아’ 교향곡 등도 지극히 낭만적인 발상의 산물임을 알 수 있어요. 지역색이나 여행의 감흥을 교향곡으로 만든다는 것.

A: 이해가 갑니다. 그렇다면 하이든의 ‘파리 교향곡’은 어떻게 된 것인지, 모차르트의 ‘프라하’, ‘린츠’ 교향곡은 어떤 발상인지 꼬투리를 잡고 싶지만, 안 하겠어요. 그 제목들은 단순히 창작 시기에 작곡가가 접했던 환경을 알려주고 있을 뿐이지 그 지역을 묘사한 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요.

B: 잘 하셨습니다. 우리는 시리즈를 시작하면서 베토벤식의 기념비적인 고전적 이상주의에서 벗어나는 일상적인 것, 개인적인 것에 대한 사랑으로 초기 낭만주의 교향곡의 성격을 정의했죠. 그렇지만 슈베르트에게 “당신은 낭만주의 교향곡 작곡가였죠”라고 물어보면 “예?” 하고 눈을 크게 뜰지도 몰라요. 그런 개념 자체가 낯설었겠죠. 그렇지만 슈만에게 같은 질문을 하면 그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을 겁니다. 또는 “바로 그거야!”라며 기뻐했겠죠.

A: 열정적인 사랑에 빠졌던 모습을 보아도 슈만은 낭만적인 사람이었을 것 같은데요? 후후.

B: 슈만은 누구보다도 낭만주의 기본 정신에 충실했고, 문학에서 붐을 이뤘던 낭만주의 정신을 음악 분야에 누구보다도 빨리, 충실하게 도입한 주인공이었습니다. 낭만주의 운동이 왕성했던 라이프치히와 하이델베르크에서 대학 수업을 하며 문학도들과 교유했고, 기행에 가까운 당시 대학사회의 자유분방한 분위기를 익혔죠. 문인이 된다는 것까지는 꿈꾸지 않았을 지라도 글쓰기에는 자신이 있었던 문학청년이었던 모양이에요. 그가 음악세계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을 때는 피아니스트나 작곡가가 아니라 유능하고 눈에 띄는 문학평론가였으며 음악 저널리스트였으니까요.

A: 그런데 슈만이 위대한 교향곡을 쓰기로 마음을 굳히는 데는 그 자신이 악보를 찾아낸 슈베르트의 교향곡 제9번이 큰 역할을 했다고 소개하셨잖아요. 그렇다면 두 작품이 많이 닮았나요, 슈베르트의 제9번과 슈만의 첫 교향곡이?

B: 글쎄요, 딱 듣고 “와, 두 교향곡은 실제 닮았구나”라고 할 만한 점은 사실 찾아내기 힘들지도 모릅니다. 있다면 첫 악장이 금관만의 서주로 시작한다는 정도일까요. 그런 소소한 점보다는 슈베르트의 제9번 교향곡을 통해 ‘낭만주의 시대에도 교향곡의 구실이 있다’는 자신감을 얻은 것이 슈만에게는 더 큰 수확이었을 거예요.

A: 슈만도 그런 얘기를 했나요.

B: 암시하는 대목은 많습니다. 이 교향곡이 나오기 한 해 전 <라이프치히 음악신보>에 기고한 기고문을 볼까요. ‘베토벤의 천분을 갖지 않은 채 베토벤의 교향곡을 뒤따르면 안 된다. 슈베르트는 여섯 개의 교향곡을 통해 이미 독자적인 교향곡 작법을 확보했다. 이 작품에서는 네 개의 악장이 개성 있는 배우처럼 역할을 나누고 있다.’

A: 몇 가지가 느껴지네요. 당시 많은 작곡가들이 베토벤의 교향곡을 흉내 내고 있었지만 이렇게 하는 것은 시대정신에 맞지 않는다고 슈만이 느꼈던 것이나….

B: 또 한 가지가 느껴집니다. 베토벤은 교향곡을 네 악장이 긴밀하게 엮인 집중적인 구조로 썼지만 슈베르트 이후의 낭만주의 교향곡에서는 마치 벽면에 걸린 네 개의 그림처럼, 더 연관성이 헐거워질 수 있다는 거죠. 슈만이 항상 이 명제에 충실한 것은 아니었어요. 제1번 바로 다음에 쓰인 제4번 교향곡은 오히려 베토벤보다 더 꽉 묶인 구조를 택하고 있으니까요. 그렇지만 5악장으로 이루어진 마지막 제3번 ‘라인 교향곡’에 이르면 구조는 더 느슨해지죠.

 

A: 어서 슈만 교향곡 제1번 ‘봄 교향곡’을 들어봐야죠? 음, 약간 귀가 따가운 1악장 금관 서주는 낯설지만, 이어지는 현악기의 통통 튀는 리듬이 신선하네요.

B: 예전에 저명한 문학평론가 한 분이 그러셨죠? 서양 언어에서 봄을 나타내는 ‘스프링’ ‘프륄링’(독일어) ‘프랭탕’(프랑스어) 등은 모두 통통 튀는 신선한 느낌을 주는 데 비해 우리말의 ‘봄’은 조는 듯, 꿈꾸는 듯하다고 하셨던가요…. 정확한 표현이 기억나지는 않습니다만.

A: 마지막 4악장도 역시 ‘스프링 심포니’ 또는 ‘프륄링 쥠포니’라고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는 활기찬 느낌이군요. 어떻게 보면 물기를 탁탁 털어낸 야채샐러드 같구요, 경쾌한 하이든 교향곡의 세계로 들어온 것 같은 느낌도 들어요.

B: 음, 반면 느릿한 2악장은 조금 더 명상적이죠. 협주곡도 그렇지만, 슈만은 느린 악장에 그다지 절절한 애수를 표현하지는 않았어요. 호젓한 느낌을 주는 짧은 악장으로 끝내곤 하죠. 그렇지만 빠른 악장들에서 로맨틱한 느낌들이 충분하니까, 오히려 전체적인 균형으로는 어색하지 않다고 할까.

A: 구체적으로 봄의 어떤 모습들을 나타냈다는 설명도 있나요?

B: 중요하면서도 있을 법한 의문이네요. 슈만은 1악장부터 차례로 ‘봄의 시작’ ‘황혼’ ‘즐거운 동무들’ ‘무르익은 봄’이라는 제목을 붙였어요. 그랬다가 나중에 삭제해 버렸죠.

A: 왜죠? 딱 어울리는 제목들인 것 같은데요. 저도 처음부터 그 제목들을 알았다면 좀 더 즐겁게 들을 수 있었을 것 같아요. 왜 삭제했을까요?

B: 순음악으로서의 교향곡을 이해하는 데 방해가 될 수 있다는 거였어요. 교향곡은 네 악장이 잇따라 지어내는 형식의 균형과, 주제의 구성이 자아내는 미학으로 감상해야 한다.

A: 그게 무슨 얘기죠? 형식적 균형은 균형이고, 교향곡에는 뭘 나타낸다는 표제가 있으면 안 되나요? 게다가 글자 그대로 낭만주의 교향곡인데요! 곡 전체를 나타내는 ‘봄’이라는 제목도 있고….

B: 저런, 화가 나셨나요? 사실 이 문제는 19세기 내내 작곡가들을 괴롭혔던 문제이기도 해요. 아마 슈만도 교향곡이 표제를 나타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을 거예요. 음악계의 보수적인 인물들이 “교향곡은 엄정한 형식에 충실해야지 문학적 내용 같은 것에 종속되어선 안 된다”라고 욕할까봐 두려웠겠죠. 어쨌거나 낭만주의 시대 내내 교향곡에 표제를 붙인다는 것은 뭐랄까, 조금 두려운 문제였습니다. 마음속의 환상을 나타내는 것은 좋다, 그렇지만 그건 소리로 표현되는 환상이어야지 ‘글’을 사용한다는 것은 음악이 글에 종속되는 거라고 봤던 거죠.

A: 하지만 상세한 표제를 써넣은 ‘환상 교향곡’도 있잖아요.

B: 그렇죠. 차이콥스키의 ‘만프레드 교향곡’도 있죠. 하지만 이렇게 각 악장에 표제를 단 교향곡들이 베를리오즈의 교향곡 제1번이나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제5번으로 이름 붙여지지 않은 점을 감안해야 합니다. 결국 교향곡이되 정식의 교향곡으로 취급받지는 않은 거죠. 일종의 뮤턴트(변종)랄까. 차이콥스키의 경우 제4번 교향곡을 쓸 때 자세한 문학적 내용을 상상했지만 후원자인 폰 메크 부인에게 보내는 편지에만 이것을 공개했고 대중들 앞에 발표하지는 않았지요.

A: 그렇군요. 그래도 부지런한 음악학자들 덕에 슈만 교향곡 제1번에 붙었던 각 악장의 제목들이나, 차이콥스키가 제4번 교향곡을 쓸 때 상상했던 내용들이 오늘날 알려지게 된 건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감상에 방해가 되기는커녕 도움이 많이 된다구요.

B: 동감입니다.

출처 : 클래식 사랑방
글쓴이 : 라라와복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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