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humann, Symphony No.3 'Rheinische'
슈만 교향곡 3번 ‘라인’
Robert Schumann
1810-1856
Philippe Herreweghe, conductor
Radio Kamer Filharmonie
Grote Zaal, Concertgebouw Amsterdam
2011.12.11
라인 강은 알프스에서 발원하여 북해로 흘러드는 유럽 굴지의 하천이다. 스위스·리히텐슈타인·오스트리아·독일·프랑스·네덜란드 등 여러 나라를 거치지만 독일을 흐르는 부분이 가장 길기 때문에 예로부터 ‘독일의 강’, 나아가 ‘독일의 상징’으로 여겨져 왔다. 무엇보다 이 강은 고대 로마 시대 이래로 독일 역사와 전설의 주요 무대였다. 유명한 ‘로렐라이의 전설’, 중세의 영웅 서사시 ‘니벨룽의 노래’ 등이 모두 이 강을 따라 흐르고 있다. 그런 라인 강을 독일인들은 ‘아버지 라인(Vater Rhein)’이라고 부른다.
슈만이 ‘라인 교향곡’을 작곡한 것은 1850년의 일이었다. 당시 슈만은 독일 서부 라인 강 유역의 도시인 뒤셀도르프의 음악감독으로 막 부임한 상태였고, 뒤셀도르프는 산업혁명에 힘입어 10년 새 인구가 두 배로 급증하는 등 발전을 거듭하며 라인란트의 중심도시로 급부상하는 중이었다. 미래를 향한 활력으로 가득한 새로운 도시에서 슈만은 자신의 오랜 꿈을 보다 구체화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로 부풀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베토벤(라인 강 유역의 도시인 본 출신이다)의 유산을 계승하여 ‘진정한 독일음악’을 위한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것이었다.
라인 강. 중앙 로렐라이 바위와 중북부 라인 계곡.
슈만이 뒤셀도르프로 이주한 것은 1850년의 일이지만, 사실 그와 라인의 인연은 더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직 피 끓는 청춘이었던 1829년, 그는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유학을 한 적이 있었다. 하이델베르크로 향하던 도중에 그는 프랑크푸르트에 들렀는데, 거기서 접한 마인 강(라인 강의 지류)의 풍경에 매혹되었고 결국 라인 강에까지 이르게 된다. 그는 코블렌츠에서 라인을 처음 만났으며, 그 ‘거룩한 흐름’(슈만의 연가곡집 <시인의 사랑>에 나오는 표현이다)을 따라 마인츠까지 다다랐다.
“에렌펠스(마인츠 근처 라인 강변에 서 있는 성)의 아름다운 폐허는 나와 라인의 모이제투름(생쥐 탑, 역시 라인 강변에 서 있는 성의 하나)을 자랑스럽게 응시하고 있었다. 태양은 당당하고 자랑스럽게 지고 있었으며, 황혼이 소리 없이 물들고 있었다.”
에렌펠스 성(왼쪽)과 모이제투름(오른쪽).
그는 포도주로 유명한 ‘라인의 진주’ 뤼데스하임에도 들렀는데, 그곳의 저녁 풍경은 특히 그를 매혹시켰다. ▶뤼데스하임 전경.
“몇 척의 배가 생생한 모습으로 떠 있었다. 노인들이 집 주위 의자에 파이프를 물고 앉아 있었다. 강변에선 귀여운 아이들이 즐겁게 뛰놀고 있어 달이 뜨는 줄도 모를 지경이었다. 이윽고 점점 고요해지기 시작했다. 뤼데스하임에서 만든 술을 한 잔 들었다. 늙은 선주가 딸과 함께 강물을 저어 나갔다. 라인은 바람 한 점 없이 조용하다. 달빛은 푸르다 못해 투명하다. 뤼데스하임은 달빛의 신비한 파도 속에서 어두운 로마인의 폐허와 함께 비추고 있었으며, 저 높은 산 위에는 로슈스카펠레(성 로슈에게 봉헌된 예배당)가 외로이 서 있었다. (...) 다시 땅에 내렸다. 달빛은 계속 은빛을 비추고 있었으며, 라인의 물결이 고즈넉이 밀려들어 나그네의 눈을 감겼다.”
Zinman/TOZ - Schumann's Symphony No.3 'Rheinische'
David Zinman, conductor
Tonhalle Orchester Zürich
2003.10
라인에 깃든 독일인의 정신
1850년의 슈만에게 라인은 그런 추억의 대상이었고, 이제는 새 희망과 포부를 펼쳐나갈 무대였다. 9월에 드레스덴을 떠나 뒤셀도르프로 이사한 그는 음악감독으로서의 직무를 수행하는 한편, 충만한 의욕을 두 개의 대작을 통해서 표출했다. 먼저 10월에는 첼로 협주곡 a단조의 작곡을 진행시켜 11월의 시작과 함께 완성했고, 그 후 곧바로 교향곡 3번 E♭장조, 즉 ‘라인 교향곡’에 착수하여 12월 초에 완결 지었다. 전자가 드레스덴에서의 어두웠던 나날들을 반추하고 정리하는 의미가 강하다면, 후자는 온전히 미래를 향한 열망과 의지를 드러낸 작품으로 볼 수 있다.
‘라인 교향곡’은 슈만의 교향곡들 중에서 베토벤의 영향이 가장 선명한 작품이다. 작품의 주된 조성(E♭장조)과 첫 악장 주제의 힘찬 흐름은 베토벤의 ‘영웅 교향곡’을, 5악장 구성은 ‘전원 교향곡’을 연상시킨다. 아울러 이 곡에서는 슈베르트와 멘델스존의 영향도 감지되는데, 노래처럼 흐르는 선율과 가곡적인 형식을 교향악적인 주제와 구조로 발전시켰다는 면에서 그렇다. 하지만 이 곡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면은 회화적인 이미지의 환기이다. 특히 중간 악장들은 라인 강 유역의 이런저런 풍경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물론 이 역시 ‘전원 교향곡’과 상통하는 면이라 하겠는데, 일례로 슈만은 2악장에 ‘라인의 아침’이라는 제목을 붙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런가 하면 4악장은 쾰른의 유명한 대성당에서 목격한 의식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이러한 표제적 해석의 단서들은 작품의 악보가 출판되는 과정에서 배제되었는데, 아마도 슈만은 이 작품이 보다 순음악적인 견지에서 받아들여지기를 바랐던 것 같다. 하지만 초연 직후 한 평론가가 ‘라인의 생활에 관한 조망’을 거론한 이후 이 교향곡의 이미지는 굳어져버렸다. 그것은 바로 ‘아버지 라인’에 대한 독일인들의 존경과 애정이었고, 그 유역을 터전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실제로 슈만은 아내 클라라와 함께 라인 강 유역을 여행한 후에 그 체험을 바탕으로 이 곡을 썼다. 그가 표현하고자 했던 것은 라인의 다양한 얼굴들, 나아가 그것을 기반으로 고양되는 독일인의 정신과 자부심이었으리라.
강의 시작인 토마호(Tomasee)부터 시작하여 굽이치고, 잔잔하게 흐르는 라인 강의 모습들.
1악장: 활기차게
이 영웅적인 악장은 슈만 교향곡의 첫 악장들 중에서 유일하게 서주부가 생략된, 그러나 구성적으로는 가장 탄탄한 소나타 형식을 취하고 있다. 전 관현악의 총주로 힘차게 등장하여 탄력 넘치는 리듬과 열기 가득한 흐름에 실려 시원스럽게 질주하는 제1주제는 마치 라인의 도도한 물결과 거기에 깃든 독일인의 정신을 나타내는 듯하다. 반면 목관이 제시하는 왈츠풍의 제2주제는 보다 차분하고 우아한 모습으로, 거침없이 내달리는 음악의 흐름에 숨 돌릴 여유를 제공한다.
2악장: 스케르초. 아주 온화하게
독일-오스트리아의 민속 춤곡인 렌틀러 풍의 기분 좋은 스케르초 악장이다. 온화한 기운을 머금고 느긋하게 흘러가는 춤곡의 선율에서 라인에 기대어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의 소박하고 풍요로운 생활상이 묻어나는 듯하다. 중간 중간 아기자기한 삽입구와 넉넉한 호른의 울림이 가미되어 다채로운 느낌을 더한다.
3악장: 빠르지 않게
마치 간주곡처럼 자리한 이 완만한 템포의 악장은 멘델스존의 <무언가>를 발전시킨 듯한 인상을 준다. 더없이 부드럽고 상냥하게 다가서는 이 야상곡이 발산하는 은은한 광채는 달빛 아래 강변을 산책하는 연인의 모습을 비춰주는 듯하다.
4악장: 장려하게
초연 당시의 악보에 ‘장엄한 의식의 반주 같은 스타일로’라고 적혀 있었던 이 느린 악장은 슈만이 클라라와 함께 쾰른의 대성당에서 접했던 의식(쾰른 대주교의 추기경 즉위식)에서 영감을 받아 작곡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장엄한 화음과 코랄 선율 등 종교적 분위기로 가득한 이 악장에는 슈만이 드레스덴 시절에 공부했던 바흐의 대위법의 영향이 짙게 나타나 있기도 하다. 당시로서는 교향곡에서 이런 스타일의 음악을 구현하는 것이 이례적인 일이었기 때문에 부정적인 반응을 얻기도 했지만, 어쩌면 슈만은 ‘라인 정신’의 종교적 승화를 의도했던 것이 아닐까.
5악장: 활기차게
축전적인 분위기로 가득한 피날레 악장이다. 활기찬 주제가 단순 명쾌한 베이스의 움직임을 타고 흐르는 가운데 도처에서 울려 퍼지는 팡파르가 축제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킨다. 종결부에서는 앞선 악장의 주제가 다시 나타나서 활약하고, 첫 악장의 주제도 가세하여 실로 극적인 장면을 연출한 후 마무리된다.
추천음반
가장 먼저 떠오르는 명반은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의 음반(DG)이다. 전반적으로 템포를 느긋하게 잡고 있어서 답답하게 느껴지는 대목도 없지 않지만, 대위법적인 움직임을 적극적으로 부각시킨 스케일 큰 표현들은 장려하기 이를 데 없다. 특히 첫 악장의 도도한 흐름이 일품이다. 독일 악단의 음반들 중에서는 한스 폰크(EMI)와 다니엘 바렌보임(Warner)을 골라보았다. 쾰른의 서독일 방송교향악단을 기용한 폰크의 음반에서는 라인의 감흥이 한층 생생하게 살아나는 듯하며, 베를린 슈타츠카펠레의 저력을 십분 활용한 바렌보임의 능란한 솜씨도 멋지다. 한편 최근에 재발매된 리카르도 무티의 음반(Newton)에서는 지휘자 특유의 늠름한 풍모와 빈 필 고유의 스타일리시한 자발성이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글 황장원(음악 칼럼니스트) 클래식 음악 감상실 ‘무지크바움’ 실장과 한국바그너협회 사무간사를 역임하였다. 무지크바움, 부천필 아카데미, 성남아트센터, 풍월당에서 클래식음악 교양강좌를 맡고 있다. <객석>, <스테레오뮤직>, <그라모폰>, <라무지카> 등에 칼럼을 기고했고 현재 서울시향 프로그램 노트를 담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