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음악 감상실 ♣/- 슈 만

Robert Schumann - Piano Quintet in E flat major, Op. 44

Bawoo 2017. 12. 27. 23:14


Robert Schumann


Piano Quintet in E flat major, Op. 44

  


슈만이 1842년 ‘실내악의 해’에 작곡한 피아노 5중주 작품으로, 고전적인 형식미를 충실히 구현하면서 특유의 낭만적 시정과 환상을 자유롭게 펼치고 있는 걸작이다. 당시 유행하던 피아노 5중주의 편성에서 벗어나 현악 4중주에 피아노를 더한 색다른 편성을 선보이고 있다. 4악장 구성.


원숙한 실내악 작품

슈만은 1842년 한 해 동안 3개의 현악 4중주를 비롯하여 다양한 실내악 작품을 작곡했다. ‘실내악의 해’라고 불리는 그해 가을, 그는 또 하나의 실내악 작품을 선보였다. 그것이 바로 〈피아노 5중주〉(Op.44)이다. 그는 세 곡의 현악 4중주를 완성한 뒤 다시 피아노 음악으로 돌아와서 완전히 새로운 편성의 피아노 5중주를 탄생시켰다. 1829년에 완성한 피아노 4중주 이후 처음으로 선보인 피아노를 위한 실내악이지만, 슈만의 가장 원숙한 실내악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형식미와 낭만적 시정의 완벽한 조화

슈만의 실내악 작품 중 가장 사랑받고 있는 〈피아노 5중주〉는 고전적인 형식미를 충실하게 구현하면서도 슈만 특유의 낭만적 시정과 환상을 자유롭게 펼쳐낸다. 특히 슈만이 그 아름다움에 감탄해 마지않았던 슈베르트의 〈피아노 트리오 2번〉에서 깊은 영향을 받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슈만은 슈베르트의 피아노 트리오와 동일한 E장조를 사용하고, 슈베르트와 마찬가지로 장송행진곡을 2악장에 배치하였다. 또한 피날레 악장에서 이전 악장들에서 사용한 선율들을 극적으로 다시 제시하는 방식도 슈베르트와 매우 유사하다. 그만큼 슈만은 슈베르트의 작품에서 자신이 느꼈던 감동을 자신의 작품 속에서 되살리고자 시도했던 것이다.

슈만은 단숨에 이 작품을 완성했지만, 그러면서도 세심한 설계를 보여주고 있다. 각 악장들의 통일성뿐만 아니라, 정교하고 치밀한 대위법이 연주자들 간의 대화가 중요한 실내악의 묘미를 탁월하게 구현하고 있다. 이처럼 명료한 구성 속에서 슈만이 펼쳐가는 낭만적 환상의 세계는 더없이 아름답다. 피아노가 중심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으면서도 각 악기들의 균형을 절묘하게 유지함으로써 풍부한 음향과 다채로운 음색의 변화를 보여준다.

슈만은 이 작품을 아내인 클라라에게 헌정했으며, 이듬해 라이프치히에서 이루어진 공개초연에서도 클라라가 피아노를 연주하였다. 원래 작품을 완성한 1842년 가까운 지인들이 모인 자리에서 클라라가 이 작품을 연주하기로 했지만 갑작스러운 병으로 멘델스존이 연주를 대신하게 되었다. 즉석에서 연주를 소화해야 했던 멘델스존은 연주가 끝난 뒤 어렵고 난해한 피아노 파트를 수정할 것을 권유했다. 그리하여 슈만은 2악장과 3악장을 개정하여 이듬해 대중에게 공개했다. 초연무대를 빛낸 클라라는 “활기와 신선함으로 가득한 눈부신 작품”이라고 감탄하면서 이후로도 이 작품을 즐겨 연주했다.

피아노를 연주하는 멘델스존
15세의 클라라
1850년 클라라와 슈만


완전히 새로운 피아노 5중주

슈만이 이 작품에서 선보이고 있는 구성은 사실상 완전히 새로운 것이었다. 이제까지의 피아노 5중주는 피아노,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더블베이스로 구성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는 현악 4중주와 피아노를 결합시킨 편성을 선보인다. 이러한 편성은 당시의 문화적 상징성과 악기의 발전을 고려한 것이었다. 당시 현악 4중주는 가장 중요한 실내악 장르로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었으며, 피아노는 음량과 강약표현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면서 콘서트의 주인공으로 부상하고 있었다. 따라서 현악 4중주의 상징적 의미와 피아노의 가능성을 최대한으로 살린 새로운 편성을 시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실내악의 무대가 살롱에서 콘서트홀로 옮겨가던 시기에, 슈만은 자신이 시도한 피아노 5중주의 편성이 사적공간과 공적공간을 이어주고 실내악적 요소와 교향곡적 요소가 공존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줄 것이라고 믿었다. 이 작품이 성공을 거둔 뒤, 슈만이 시도한 새로운 편성은 이후의 피아노 5중주의 표준이 되었고 피아노 5중주는 낭만주의의 중요한 실내악 장르로 굳건히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츠비카우에 위치한 슈만 기념상

악장 구성

1악장: 알레그로 브릴란테

고전적인 소나타 형식을 충실하게 따르고 있는 위풍당당한 1악장은 절묘한 주제의 구성이 돋보이는 악장이다. 바이올린이 힘차게 연주하는 열정적이고 화려한 1주제 선율은 이후 변주곡 풍으로 전개되면서 유려한 흐름을 보여준다. 뒤이어 피아노가 연주하는 더없이 아름답고 우아한 2주제는 1주제와 뚜렷한 대비를 이룬다. 피아노에 이어 각각의 악기가 이 달콤한 선율을 반복하면서 낭만적 시정을 펼쳐나간다. 발전부와 재현부를 거치는 동안 피아노가 현악기들을 이끌면서 주도적인 역할을 이어가고, 코다에서는 1주제 선율을 중심으로 열정적이고 힘차게 악장을 마무리한다.

2악장: 행진곡 풍으로, 조금 느리게

자유로운 론도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는 2악장은 장송행진곡의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곡이다. 바이올린이 깊은 감정을 담아 연주하는 주제선율은 무거운 리듬으로 우울한 행진을 연상시킨다. 뒤이어 첼로와 바이올린이 함께 연주하는 선율은 애도의 분위기를 담은 장중한 애가를 노래한다. 격렬한 슬픔을 담은 아지타토 부분에서는 피아노의 날카로운 선율을 시작으로 비극의 분위기를 절정으로 몰아간다. 이 깊은 비통함을 거쳐 바이올린이 주제선율을 다시 연주하면, 피아노가 이를 고요히 반복한 뒤 숭고한 C장조 화음으로 악장이 마무리된다.

3악장: 스케르초, 몰토 비바체

빠르게 상행하는 피아노의 스케일로 시작되는 3악장은 역동적이면서도 환상곡풍의 자유로움을 보여주는 스케르초 악장이다. 피아노와 현악 성부가 주제선율을 대위법적으로 전개시키는 스케르초 악장은 두 개의 트리오 부분으로 이어진다. 1악장의 2주제에서 가져온 선율을 바이올린이 느릿하게 연주한 뒤에 각 악기들이 이 선율을 반복한다. 그러나 피아노에서 반복하는 셋잇단음표 리듬이 추진력과 긴장감을 팽팽하게 지속한다. 두 번째 트리오에서는 바이올린과 첼로가 무궁동을 연상시키는 현란한 리듬을 제시한다. 피아노는 날카로운 화음으로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여러 차례의 전조를 거쳐 스케르초 부분으로 돌아온다.

4악장: 피날레, 알레그로 마 논 트로포

열정적인 푸가토로 전개되는 피날레 악장은 첫 악장의 주제선율을 극적으로 제시하면서 슈만 특유의 환상을 격정적으로 풀어낸다. 피아노가 힘차게 1주제를 연주하면 비올라가 더없이 서정적인 2주제를 연주한다. 발전부에서도 피아노와 비올라가 서로 주고받으며 대위법적인 진행을 전개하고, 피아노가 1주제를 강렬하게 연주하면서 재현부로 들어선다. 슈만은 재현부에서 전통적 관습에서 벗어난 독특한 조성진행을 보여주며, 제시부와 전개부와는 달리 2주제를 첼로로 재현하고 있다. 코다에서는 피아노와 바이올린이 푸가토를 전개하면서 화려한 클라이맥스를 만들어낸 뒤 강렬하게 마무리된다.


[글-이은진/출처-클래식 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