田家
- 梁慶遇
枳殼花邊掩短扉(지각화변엄단비) 탱자꽃 핀 울타리에 작은 사립문 닫혀 있고
餉田村婦到來遲(향전촌부도래지) 새참 내간 시골 아낙 돌아오기 늦는구나.
蒲茵曬穀茅簷靜(포인쇄곡모첨정) 멍석에 곡식 널려 있는 초가집 고요한데
兩兩鷄孫出壞籬(양양계손출괴리) 짝지은 병아리들 무너진 울타리 틈새로 나가누나.
田家:농부의 집/농가
지각화(枳殼花) ; 탱자나무꽃.
향전(餉田) ; 밭에서 먹는 새참. 밭에 새참을 내 가다.
포인(蒲茵) ; 부들풀대로 엮은 멍석자리.
쇄곡(曬穀) ; 곡식을 햇볕 아래 널어 말리다.
모첨(茅簷) ; 초가지붕의 처마.
양량(兩兩) ; 두 마리씩 짝을 지어. 우루루 개념보다 질서있는 움직임.
계손(鷄孫) ; 닭의 자손이니 병아리.
괴리(壞籬) ; 무너진 울타리.
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이자 문신. |
[가계] 본관은 남원(南原). 자는 자점(子漸), 호는 제호(霽湖)·점역재(點易齋)·요정(寥汀)·태암(泰巖). 아버지는 충장공 양대박(梁大樸)이다.
[활동사항]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아버지 양대박이 창의하자, 아우 양형우(梁亨遇)와 함께 아버지를 보필하였다. 양경우는 아버지의 명에 따라 고경명(高敬命)에게 갔는데, 고경명은 양경우에게 기무를 맡겼다.
때마침 왜적이 금산(錦山)을 치려 하자 고경명은 양경우에게 진산(珍山)을 지키게 하고 자신은 금산에서 싸우다가 패하였다. 이에 고경명을 구하려고 가는 중에 아버지가 진산에서 순국하였다는 소식을 들었다. 다시 되돌아가서 아버지의 시신을 전주(全州)로 옮겨 청계동으로 돌아가 장사를 치렀다.
1595년(선조 28)에는 격문을 돌려 군량 7천 석을 모으는 공을 세우니 조정에서 참봉에 제수하였다.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 때에는 종사관으로 있으면서 공을 세웠다. 그 해에 별시 문과에 급제하여 죽산현감·연산현감을 거쳐 판관이 되었다.
1616(광해군 8)에는 중시(重試: 조선시대에 당하관 이하의 문무관에게 10년마다 한번씩 실시하는 과거)에 급제하여 홍문관교리로 승진하였고 이어 봉상시첨정에 이르렀다. 그 뒤 폐모론(廢母論)이 일어나자 벼슬을 버리고 향리로 돌아와서 학문에만 전념하였다.
[학문과 사상]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과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의 문하에서 배웠다.
[저술 및 작품]
유집 『제호집(霽湖集)』은 『양대사마실기(梁大司馬實記)』와 함께 묶어 간행되었다.
[상훈과 추모]
조정에서 이조참의를 추증하였다. 정조 때에는 정려(旌閭)를 내렸는데 거기에는 ‘부자충의지문(父子忠義之門)’이라 하였다.
[참고문헌]
『전라문화의 맥과 전북인물』 (전북대학교 전라문화연구소, 1990)
『남원지』 (남원지편찬위원회, 1992)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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