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유(韓愈/唐)
<유서림사제소이형낭중구당(游西林寺題蕭二兄郎中舊堂)>
中郞有女能傳業 伯道无兒可保家
偶到匡山曾住處 幾行衰淚落烟霞
(중랑유녀능전업 백도무아가보가
우도광산증주처 기행쇠루락연하)
채옹에게 딸이 있어 가업을 전할 수 있었고
백도에게 아들이 없었으나 집안을 보존했네
일찍이 여산의 거처에 우연히 이르러
안개와 노을을 보며 늙은이의 눈물 얼마나 흘렸는지
- 中郞: 전국시대(戰國時代)∼한(漢)나라 때까지 있었던 관명(官名). 여기서는 후한 때의 학자 채옹(蔡邕). 채옹에게 염(琰/文姬)라는 딸이 있어 부친의 문학을 이었다.
- 衰淚: 노루(老淚).
- 匡山: 여산(廬山).
- 烟霞: 안개와 노을. 산수(山水). 속세(紅塵).
- 伯道: 진(晉)나라 때 사람인 등유(鄧攸)의 자(字).
중국 진(晉)나라 때 사람인 등유(鄧攸)는 자(字)가 백도(伯道)로 하동(河東)의 태수(太守)를 지냈다.
영가(永嘉) 말년에 석륵(石勒)의 난이 일어나자 아내와 어린 아들, 조카를 데리고 피난길에 올랐다.
그러나 곧 적을 만나 자식과 죽은 아우의 동생인 조카 가운데 하나를 버리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을 맞았다.
이에 등유는 처에게 말하기를 "내 동생이 일찍 죽어 오직 이 아이 하나만 남았으니 이치를 버릴 수 없소. 그러니 우리의 아이를 버릴 수밖에 없소. 다행히 우리가 목숨을 건진다면 훗날 다시 아이를 얻을 수 있지 않겠소?"라 하니 처가 울면서 등유의 뜻을 따랐다.
그러나 나중에 부부가 온갖 방법을 다해 후사(後嗣)를 얻고자 했으나 얻지 못하니 당시 사람들이 이 일을 의롭게 여기면서 슬퍼하여 말하기를 "하늘은 무심도 하구나 등백도로 하여금 자식이 없게 하다니"라고 했다(☞ ≪진서(晉書)≫ <등유(鄧攸)>전).
전체적인 맥락은 비슷하지만 내용구성이 약간 다른 이야기도 있다.
등유가 피난길에 배로 강을 건너는데 배가 가라앉으려 하자 죽은 아우의 자식을 두고 자기 자식을 물에 던져 무게를 덜었다. 아내와 함께 눈물로 의(義)를 지키고 훗날 다시 자식 볼 것을 기약했으나 소실까지 두고도 끝내 자식을 얻지 못했다.
세인들이 이를 애달프게 여겨 하늘(天道)의 무심함을 한탄하니 일컬어 백도무아(伯道無兒)라 했다는 것이다. 백도가 근심 끝에 후사(後嗣)를 얻지 못하고 죽으니 후세 사람들이 백도와 같은 무사(無嗣)의 처지를 일컬어 백도지우(伯道之憂)라 하기도 했다.
가져온 곳 :
중국 산문의 대가이며 탁월한 시인. (병). Han Yu. (웨). Han Y. | 자(字)는 퇴지. 한문공이라고도 한다. 중국과 일본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친 후대 성리학(性理學)의 원조이다. 어려서 고아였고, 처음 과거에 응시했을 때는 인습에 얽매이지 않은 문체 때문에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해 낙방했다. 그후 25세에 진사에 급제, 여러 관직을 거쳐 이부시랑(吏部侍郞)까지 지냈다. 사후에 예부상서(禮部尙書)로 추증되었고 문이라는 시호를 받는 영예를 누렸다.
유학이 침체되어가던 시기에 유학을 옹호했던 그는 헌종(憲宗)이 불사리(佛舍利)에 참배한 데 대해 끝까지 간한 일로 인하여 1년 동안 차오저우[潮州] 자사(刺史)로 밀려나 있었고, 평생을 불우하게 지내야 했다. 유학을 옹호하기 위해 그때까지 유학자들이 다소 소홀히 하던 〈맹자〉·〈대학 大學〉·〈중용 中庸〉·〈주역 周易〉을 광범위하게 인용했다. 후대의 성리학자들은 기초개념을 이 책들에서 취했고 한유는 성리학의 기초를 놓은 셈이었다.
한유는 당시에 유행하던 규칙적인 운율과 고사성어로 가득 찬 변려문을 배격했고, 위의 책들을 만든 옛 학자들처럼 자유롭고 간결한 문체의 사용을 주장했다. 그가 쓴 〈원도 原道〉·〈원성 原性〉 등은 중국문학의 백미이며 그가 주장한 고문체 문장의 대표작이 되었다. 시문학에서도 그는 기존의 문학적 형식을 뛰어넘으려고 했다. 그러나 문학에서 그가 기울인 노력의 많은 부분은 실패로 끝났다.[다음 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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