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ahms, Ein deutsches Requiem Op.45
브람스 ‘독일 레퀴엠’
Johannes Brahms
1833-1897
Camilla Tilling, soprano
Peter Mattei, baritone
Danmarks Radio KoncertKoret
Danmarks Radio SymfoniOrkestret
Herbert Blomstedt, conductor
Copenhagen Concert Hall
2012.06.08
“가장 순수한 예술적 수단, 즉 영혼의 따스함과 깊이, 새롭고 위대한 관념, 그리고 가장 고귀한 본성과 순결로 일궈낸 최고의 작품이다. (...) 바흐의 <B단조 미사>와 베토벤의 <장엄 미사>를 제외하면, 이 분야에서 이 곡에 비견될 만한 작품은 없다.”
당대 최고의 비평가인 한슬리크가 극찬했던 <독일 레퀴엠>은 브람스가 1856년부터 1868년까지, 장장 10년이 넘는 시간을 소요하며 심혈을 기울여 탄생시킨 노작이다. 그 발단은 1856년 여름에 일어난 은사 슈만의 죽음이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신중한 브람스는 데트몰트 궁정음악가 시절인 1859년에 가서야 그 구상을 표면화했다. 그리고 중간에 소강기를 거친 다음, 1865년에 닥친 그 자신의 어머니의 죽음을 계기로 작업을 재개하여, 이듬해 6곡 구성의 형태로 일단락 지었다. 하지만 1868년 4월 브레멘에서 초연을 가진 후 불만을 느낀 브람스는, 고심 끝에 제5곡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를 추가하여 지금과 같은 형태로 완성시켰다.
라틴어가 아닌 독일어 가사에 의한 레퀴엠
이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독일어 가사에 의한’ 레퀴엠이라는 점이다. 통상 ‘진혼곡’으로 번역되는 ‘레퀴엠’은 기독교에서 행해지는 ‘죽은 자를 기리는 미사’를 위한 음악이다. 전례의 식순에 따른 일정한 라틴어 가사에 의존하는 통상적인 ‘레퀴엠’들과는 달리, 이 <독일 레퀴엠>의 가사는 루터가 독일어로 번역한 성경의 여러 부분에서 브람스 자신이 선별한 구절들의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따라서 이 작품은 기독교 전래의 의식에서 영향을 받았으면서도 그것과 직접적인 연관성은 가지지 않는 ‘연주회용 종교곡’의 성격을 띠게 되었다. 전곡은 모두 일곱 개의 악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대략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레퀴엠은 기독교에서 행해지는 죽은 자를 위한 미사를 위한 음악이다.
제1곡: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합창)
마태복음과 시편에서 가사를 취한 곡. 합창이 세상의 슬픔에 위로가 주어질 것임을 노래한다. 관현악에는 바이올린, 플루트, 클라리넷 같은 화려한 악기들이 배제되고, 저현부는 다시 몇 개의 성부로 나뉘어 사뭇 어둡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제2곡: 모든 육신은 풀과 같고 (합창)
가장 먼저 작곡된 곡으로, 일종의 장송행진곡이다. 베드로 전서에서 취한 가사는 엄숙하고 비통한 표정에 실려 모든 생명체의 필멸을 이야기하고, 야고보서에서 취한 가사는 한결 밝고 온화한 빛을 드리우며 인내와 기다림을 권유한다. 그리고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의 힘찬 외침을 기점으로 시작되는 종결부는 이사야서에서 취한 가사로 시온의 영원한 희락을 노래하며 열광적인 분위기 속에 마무리된다.
제3곡: 나의 종말과 연한이 어떠함을 알게 하사 (바리톤 독창과 합창)
가장 인간적이며 전곡의 핵심을 이루는 곡. 바리톤 독창이 고통스런 어조로 시편에서 취한 가사를 읊조리고 합창이 그 뒤를 따른다. 삶에 대한 회의와 이 세상의 허무, 인간의 고뇌가 절절하게 토로된다. 그에 대한 응답은 ‘올바른 영혼은 주의 손 안에 있어 고통 받지 않으리’라는 신념이다. 외경의 ‘솔로몬의 지혜’ 편에서 취한 이 후반부의 가사는 흔들림 없는 확신을 나타내는 낮은 D음의 오르간포인트 위에서 펼쳐지는 경이적인 푸가에 실려 끊임없이 반복된다.
제4곡: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합창)
가장 짧은 곡. 시편에서 취한 가사로 신의 사랑과 천국의 평안을 화사하고 청명하게 찬미한다.
제5곡: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소프라노 독창과 합창)
마지막 단계에 추가된 곡. 요한복음, 이사야서, 외경 등에서 가사를 취한 이 곡에 브람스는 자애로운 어머니의 초상을 투영했다. ‘어미가 자식을 위로함과 같이 내가 너희를 위로할 것이라.’ 소프라노 독창과 그 뒤를 따르는 합창이 신의 약속을 우리에게 전해준다.
제6곡: 우리가 영구히 머물 도성은 없고 (바리톤 독창과 합창)
라틴어 레퀴엠의 ‘진노의 날’(Dies irae)에 상당하는 곡. 우선 히브리서와 고린도 전서에서 취한 가사가 노래된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다 변화하리니, 마지막 나팔소리에 홀연히 그렇게 되리로다.’ 바리톤의 묵시적 선언과 함께 심판의 날에 대한 공포가 무섭게 일어난다. 그러나 여기서도 브람스는 요한계시록에서 취한 가사로 다시 한 번 ‘신의 섭리에 대한 믿음’을 노래함으로써 위기를 극복하고 궁극의 평안을 향해 나아간다. 힘차고도 우아한 고딕식 대 푸가가 전곡의 클라이맥스를 장식한다.
제7곡: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합창)
마침내 죽음의 공포는 사라지고, 망자는 승천하여 영원한 안식을 취하며, 그 뒤에 남겨진 자들도 위로를 얻는다. 요한계시록 제14장 13절이 장중하면서도 차분하게 울려 퍼지다가, 마지막에는 온화하고 조용하게 마무리된다.
Klemperer/Philharmonia Orchestra - Brahms, Ein deutsches Requiem
Elisabeth Schwarzkopf, soprano
Dietrich Fischer-Dieskau, baritone
Ralph Downes, organ
Philharmonia Chorus
Philharmonia Orchestra
Otto Klemperer, conductor
Kingsway Hall, London
1961.01.02-04.26
추천음반
인기 있는 명곡인 만큼 명반도 많지만 스테레오 시대로 범위를 한정하자면, 가장 먼저 꼽아야 할 것은 오토 클렘페러의 녹음(EMI)일 것이다. 클렘페러 특유의 중후하고 강인하며 대범한 해석이 압권이며, 피셔-디스카우와 슈바르츠코프로 이루어진 독창진도 빛난다. 다음으로 이 곡에 가장 어울리는 오케스트라라고 할 수 있는 빈 필하모닉의 음반들 중에서는 카라얀의 두 가지 녹음(EMI, DG)도 유명하지만, 여기서는 요즘은 다소 구하기 어렵지만 대단히 개성적인 베르나르트 하이팅크(Philips)를 거론해본다. 하이팅크는 예의 ‘모범생’적인 이미지를 벗어 던지고 다분히 과장되며 고도로 극적인 어프로치를 감행하며, 톰 크라우제와 군둘라 야노비츠의 독창도 일품이다. 한편 시대악기 연주에 의한 음반들 중에서는 해석의 충실도와 앙상블의 정련도가 매우 높은 존 엘리엇 가디너의 녹음(Philips)이 가장 돋보인다. 아울러 전반적으로 차분한 기조와 합창의 아름다운 결이 두드러지는 필리프 헤레베헤의 녹음(Harmonia Mundi)도 기억해둘 만하다.
글 황장원(음악 칼럼니스트) 클래식 음악 감상실 ‘무지크바움’ 실장과 한국바그너협회 사무간사를 역임하였다. 무지크바움, 부천필 아카데미, 성남아트센터, 풍월당에서 클래식음악 교양강좌를 맡고 있다. <객석>, <스테레오뮤직>, <그라모폰>, <라무지카> 등에 칼럼을 기고했고 현재 서울시향 프로그램 노트를 담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