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녀를 처음 본 건 71년도 대학입시 시험장에서 였다.
그녀나 나나 한창 꽃다운 나이인 20 초반이긴 했지만 그때 그녀의 모습은 과장해서 말하면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의 모습이었다.얼굴도 예뻤지만 무엇보다 키가 늘씬하게 커서 시원스러워 보이는 모습이 보는 이들의 시선을 한 눈에 끌어 들일 만큼 너무도 매력적이었었다.오죽했으면 그 해 중에 입대가 예정돼 있어 나에겐 생애 마지막 기회인지도 모를 입시장에서 시험에 대한 부담도 까맣게 잊은 채 한동안 넋을 놓고 바라 보았을까?
그런 그녀와 동기생으로 다시 만나게 된 걸 알게 된 건 과 신입생 상견례 자리에서 였다.
입시장이야 지원만 하면 누구나 다 들어 설 수 있는 것이지만 합격의 기쁨을 누리는 건 학교에서 허락한 제한된 소수 인원에 국한된 것이니 그녀나 나나 합격을 해서 그 학교 학생이 된다는 보장은 되어 있지 않았던 터...
"맙소사 ! 얼굴도 미인인 데 공부도 잘 했나보네.설마 합격할 줄이야.." 내가 그녀를 다시 보며 머리 속에 퍼뜩 떠올린 건 이 생각이 먼저였다. 먹고 자는 시간 외엔 수험서와 씨름해야만 했던 지난 1년 동안의 힘겨웠던 나날을 생각하면 그녀 역시 나와 다름없는 시간을 보냈을 터,그것이 얼마나 힘든 인고의 세월인지는 겪어본 사람만이 아는 일이니 그런 세월을 참고 견뎌냈을 그녀가 너무너무 대단해 보였다.거기다 얼굴까지 예쁘다니...
그런 그녀와 군에 입대하게 되는 날인 12월3일 하루전 까지 학교에 나가면서 같은 과 동기로 시간을 같이 공유하게 되는 기억은 강의실에서의 공식적인 만남이 전부였다.유독 내성적인 내 성격 탓도 있었지만 그녀는 당시 접근 불가의 공주님이었다.얼굴 예쁘지,소위 전국 준 수재급들인 내노라하는 학생들과 어깨를 같이 하는 실력을 갖고 있지,거기다가 부친이 당시에 모교 독문과 교수로 재직하고 계셨으니 집안도 막강하지,암튼 못배우고 여유없는 생활을 꾸려 나가시는 부모님을 둔 나로서는 진짜 가까이 할 엄두를 낼 수 없는 그런 대상이었다.어디 그게 비단 그게 나 뿐이었겠는가? 그녀와 로맨스를 만들어 보았다는 얘기를 동기 누구한테서 들어 본 기억이 없는 걸로 봐서는 나 보다 여건이 좋았을 다른 이들도 감히 접근을 못했슴이 틀림없다.
그런 그녀에게 입대전 1년간의 학교 생활중 유일하게 한번 말을 건넨 적이 있다.
지금도 기억이 생생한 데, 입대 하루 전 과 동기 전체가 참석해 베풀어 준 송별회가 끝나고 헤어지는 자리에서 그녀에게 쭈빗거리며 다가가 "송별회 해 줘서 고맙다"는 말 한마디 해 본 게 전부이다.
그 뒤 바쁘고 힘들게 생활하는 중에 그녀가 동기중 제일 먼저 S대생과 연애 결혼 했다는 소식을 들었고 당시 "그럼 그렇지" 하며 고개를 끄덕인 기억이 있는 데 , 이후 많은 세월이 흘러 내가 퇴직하기전엔가 그녀가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 홀로 내려와 지내고 있다는 이야기를 친한 동기로 부터 들었었다.그 친구는 "같은 지역에 사니 자주 연락하고 지내라"는 주문을 했지만 군에 입대하기 전 1년이 채 안되는 기간을 같은 과 동기로 지냈다는 인연만으로 몇십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새삼 연락을 하기에는 명분이 너무 없었다.더군다나 남자 동기도 아니고 여자 동기인데다가 젊은 시절 불가근(不可近)의 존재였던 그녀였으니..그녀도 아마 그리 생각했으니 내가 현직에 있을 때도 연락 한번 할 생각을 안했을 테고....
그런 그녀와 몇년전 만남의 자리를 갖게 된건 순전히 동기중 가장 친하게 지내던 친구의 공이다.
당시 사업을 하고 있던 친구는 어떤 일로 내가 사는 지역에 볼 일이 있었고 이때 지금 자주 만나고 있는 다른 동기까지 같이 만나는 자리가 만들어 진 것이다.
20초반 꽃다운 나이에 처음 본 이후로 30여년도 더 지난 세월이 흐른 뒤에 50중반의 여인의 모습으로 내게 나타난 그녀는 예전 젊은 시절의 아름다운 모습은 무심한 세월의 힘 앞에 많이 변모되어 있었지만 그래도 예전 모습이 많이 남아 있었다.
이후 인연이 계속 이어져 한달에 한번 정도는 동기들 둘 또는 세,넷이서 만남의 자리를 이어 오고 있지만 그녀도 나도 또 다른 동기도 40여년전 우리가 처음 만났던 그 때의 모습은 아니다.그러나 다른 동기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누가 "지나온 삶에서 가장 기뻤던 때가 언제냐고 묻는다"면 난 서슴없이 40여년도 더 전인 "71년 대학 입학한 그 시절"이라고 말할 수 있기에 그 시절 만난 동기들과의 만남은 수십년이 지나 모두 노년기에 접어든 지금도 언제나 기쁘고 마음이 설렌다.
비록 지내온 세월은 각자 다른 삶의 길을 걸어 왔고 남은 세월도 그러하겠지만 가는 길의 끝은 결국 같은 곳일터.그 때가 올 때까지 기쁜 우리 젊었던 시절을 되돌아 보며 행복할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우리들 만남이 소중한 것임을 생각하는 요즈음,그녀가 우리들을 만날 때면 나 처럼 즐겁고 행복하기를 바란다.그래서 우리들의 삶이 앞으로 얼마나 보장되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만날 때 마다 웃음 꽃이 함빡 피는 그런 만남이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다.
그녀가 늘 건강하고 행복한 모습으로 우리 곁에 있어 주기를 바라면서...
2013.4.6 토.아침에 3시간쯤 걸려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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