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시(漢詩) 마당 ♣/- 우리 漢詩

閨 情 - 권벽(權擘)

Bawoo 2018. 9. 6. 22:59


                                             閨 情

                                                                           -권벽(權擘)


生憎黃鳥近簾啼(생증황조근렴제) 얄미운 저 꾀꼬리 발 가까이 다가와 울어

喚覺紗窓睡欲迷(환각사창수욕미) 비단 휘장 창가에서 깊이 든 잠 깨우누나 

賴是落花風不定(뢰시락화풍부정) 꽃잎 떨어뜨리는 흔들바람에 기대어 

時吹殘夢到遼西(시취잔몽도료서) 이따금 꿈결에 요서로 실려갔도다


睡欲迷: 혼미코자 하는 잠. 곧 깊은 잠

賴是: 이에 의지해서



권벽(權擘)

1520(중종 15)∼1593(선조 26). 조선 중기의 문신.

[개설]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대수(大手), 호는 습재(習齋). 권염(權念)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광흥창수(廣興倉守) 권억(權憶), 아버지는 좌승지 권기(權祺), 어머니는 청풍김씨(淸風金氏)로 목사 김세영(金世英)의 딸이다. 시인 권필(權韠)의 아버지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543년(중종 38) 진사시에 합격하고 같은 해 식년문과의 을과로 급제, 예문관검열(藝文館檢閱)을 거쳐 홍문관정자(弘文館正字)에 발탁되었다. 이때 안명세(安名世)·윤결(尹潔) 등 청류 선비들과 교유했다.

그러나 두 사람이 당시 윤임(尹任) 등과 친하며 윤원형(尹元衡) 일파를 공박하면서 야기된 을사사화에 화를 입자 모든 교유를 끊고 오로지 학문에만 힘썼다. 명종이 즉위하자 예조참의·장례원판결사(掌隷院判決事)를 역임하고 춘추관기주관(春秋館記註官)이 되어 『중종실록』·『인종실록』·『명종실록』의 편찬에 참여했다.

이문(吏文)에 밝아 행정 실무에 능했고, 선위사(宣慰使)가 되어 일본 승사(僧使)를 접대하고, 이어 서장관(書狀官)과 동지사로 두번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원접사(遠接使)가 되기도 했다. 외직으로는 성주목사·장단부사를 거쳐 안변부사가 되었다가 순무어사 허봉(許篈)의 탄핵으로 체직되었다.

그 뒤 대호군·오위장·강원도관찰사를 역임하며 선정을 폈다. 시문이 높은 경지에 이르러 승문원부제조·제조(提調) 및 지제교(知製敎)를 오랫동안 지내며 문한(文翰)을 주관하였는데, 특히 명나라에 오가는 외교 문서를 전담했다.

1572년(선조 5)김성일(金誠一) 등과 함께 완의록(完議錄)에 올랐고, 광국원종공신(光國原從功臣)에 봉해졌다. 한시에 능해 많은 사람들이 권벽의 시를 즐겼으며, 당대의 명사인 노수신(盧守愼)·정유길(鄭惟吉) 등도 시문을 높이 평가했다.

50여 년 벼슬 재위 기간 가사를 돌보지 않고 자식의 혼사도 모두 부인에게 맡겼으며, 손님도 거의 맞지 않으면서 오직 시에만 마음을 쏟아 높은 경지를 이루었다. 예조참판에 추증되었으며 저서로는 『습재집』 8권이 있다.



참고문헌

  • 『중종실록(中宗實錄)』
  • 『선조실록(宣祖實錄)』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국조방목(國朝榜目)』
  • 『택당집(澤堂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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