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시(漢詩) 마당 ♣/- 우리 漢詩

春江卽事 - 權尙夏

Bawoo 2018. 9. 10. 22:13




                                      春江卽事


                                                                            -權尙夏


春雨濛濛掩客蓑(춘우몽몽엄객사) 봄비 보슬보슬 내리매 나그네 도롱이로 몸 감싸고 

暮江煙浪沒平沙(모강연랑몰평사) 해 저문 강엔 물안개 일어 모래톱을 감추길래

急敎舟子停歸棹(급교주자정귀도) 사공에게 돌아가는 배 급히 멈추게 하곤 

隔岸柴扉問酒家(격안시비문주가) 언덕 너머 사립문 단 집에 가 묻기를 주막은 어드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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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시열의 학통을 이은 노론 계열로, 인물성이론(人物性異論)을 지지하는 호론(湖論)의 입장을 취했다. 할아버지에게 배우다가 10세 때 사림파의 거두 유계를 만나 가르침을 받았다. 1661년(현종 2) 진사가 되었으며, 1663년에는 송시열을, 2년 뒤에는 송준길을 만나 두 사람을 스승으로 학문에 몰두했다.
1659년에 있었던 자의대비 복제문제로 1674년(숙종 즉위) 송시열이 덕원으로 유배되자,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청풍에서 학문에 힘썼다. 1689년(숙종 15) 기사환국으로 송시열이 정읍에서 사사되었을 때 유품을 받고, 그 유언에 따라 괴산 화양동에 만동묘를 세웠으며, 숙종의 뜻을 받들어 대보단을 세웠다. 1703년 찬선(贊善), 이듬해 호조참판에 이어 1716년까지 13년간 해마다 대사헌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나가지 않았다. 

한편 1715년(숙종 41) 가례원류 사건에 연루되어 소론의 공격을 받아 파직당했다(→ 가례원류시말). 이 사건은 '회니시비'에 뿌리를 둔 노론·소론 간의 갈등이 이 책의 저작권을 둘러싸고 표면화된 것이었다. 노론이 다시 집권하면서 우의정을 비롯해 여러 벼슬을 제수받았으나 모두 사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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