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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각국사 혜심 스님 한시(선시) 몇 편

Bawoo 2014. 2. 16. 00:43

       

          * 득도시사가시(得道時辭家詩)*

 

불법에 뜻을 두고 사모하여(志募空門法-지모공문법)

식은 재와 같은 마음으로 좌선을 배우나니(灰心學坐禪-회심학좌선)

공명이란 하나의 깨질 시루이고(功名一墮甑-공명일타증)

사업이란 이루고 나면 덧 없는 것(事業량忘筌-사업한망전)

부귀도 그저 그렇고(富貴徒爲爾-부귀도위이)

빈궁 또한 그런 것(貧窮亦自然-빈궁역자연)

내 장차 고향 마을 버리고(吾將捨閭里-오장사여리)

소나무 아래서 편히 잠이나 자려하네(松下寄安眠-송하기안면)

 

 -넷째 련 '량'자는'슬퍼할 량'자인데' '恨'자의 바른쪽 글자 대신 '良'자가 합쳐진 글자입니다.

 

<혜심 스님이 어머니 장례를 마친 뒤 사대부의 길을 버릴 작정을 하고 집을 떠나면서 지은 시라고 하는데 시의 뜻은 읽어보면 저절로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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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은 연못(盆池)*

 

작은 연못이 대숲가에 움푹  패여 있어(盆池陷在竹邊-분지함재죽변)

거울이 항상 눈앞에 열려있네(鏡匣常開目前-경갑상개목전)

천길이나 되는 푸른 옥 거꾸로 꽂혀있고(倒卓千竿碧玉-도탁천간벽옥)

만리 푸른 하늘 원만히 잠겨있네(圓涵萬里靑天-원함만리청천)

 

  -연못은 마음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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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자와 마주하다(對影-대영)*

 

연못가에 홀로 앉았다가(池邊獨自坐-지변독자좌)

못 속에서 우연히 중을 만났네(池底偶逢僧-지저우봉승)

묵묵한 미소로 서로를 바라보나니(默默笑相見-묵묵소상견)

말 걸어도 그가 대답하지 않을 것을 알기에(知君語不應-지군어불응)

 

-   이 시에서는 연못이 '거울'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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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맑은 못 (淸潭-청담) *

 

차갑기가 얼음 녹은 물 마시듯(寒於味釋氷-한어미석빙)

빛나기가 새로 닦은 거울인양(瑩若新磨鏡-형약신마경)

다만 한가지 맑은 맛을 가지고(只將一味淸-지장일미청)

천처만별 그림자를 훌륭히 비추노나(善應千差影-선응천차영)

 

 -이 시에서는 연못이 '연화장 세계-불교에서 말하는청정과 광명이 충만한

이상적인 불국토-를 뜻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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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은 연못 (小池-소지)

 

바람 자고 파도 일지않으니(無風湛不波-무풍담불파)

삼라만상이 눈에 가득 비치누나(有像森於目-유상삼어목)

많은 말이 무어 필요하랴(何必待多言-하필대다언)

바라만 봐도 이미 뜻이 족한 것을(相看意己足-상간의기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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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제-제목 없음 *

 

마음과 짝하지 마라(莫與心爲伴-막여심위반)

무심이면 마음이 절로 편안하리(無心心自安-무심심자안)

마음이 짝한다면(若將心作伴-약장심작반)

자칫 그에게 속으리(動卽被心만)

 

        *마지막 련 한자는 '속일 만'자인데 '言+曼' 합자입니다.

 

-분별하거나 머뭇거리면 깨달음과는 바로 멀어진다'고 하는 뜻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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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각국사 혜심 스님은 전남 화순에서 태어나  1201년 24세에 사마시에 합격했으나

다음 해인 1202년에 현재의 송광사인 조계산 수선사에 머물던 보조국사 지눌을

스승으로 모시고 출가해서 8년 뒤인 1210년 지눌 스님이 입적하자 뒤를 이어

수선사 2세 법주가 되었다고 합니다.유학과 불교가 서로 다르지 않다는 불유동원(佛儒同源)을

이야기했으며 선시로 불교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기고 했다고 합니다.

고려왕실로 부터 각별한 지원을 받았으며 무신정권 최우 집권기에는 최우가 아들인 '만종''만전'을

혜심의 문하로 보내 법제자가 되게 했다고도 합니다.(이거 무슨 드라마에 나왔었는데 기억이

가물가물합니다.만종이 최우 다음인 최항이던데...ㅠㅠ)

1234년 6월26일 57세에 입적을 했는데 -산에서 맑은 공기 마시고 사셨을텐데 일찍 돌아가셨네요^^-

'마지막 말씀이 '노한이 오늘 몹시아프다-老漢今日痛忙'였다고 합니다.

 

 

*출처:'마음과 짝하지 마라,자칫 그에게 속으리니'란 책 중  '강진 월남사 터'이야기에서 발췌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