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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의 어제시(御製詩) 두 수

Bawoo 2014. 4. 6. 00:41

<詩 1>

 

세 치 황귤을 반으로 갈라    (剖三寸黃-부촌삼황)

한 말의 백주를 당겨 붓노라 (挽一斗白-만일두백)   *挽: 당길 만

잦게도 말고 적게 마시게     (弗頻以少-불빈이소)

그대는 문원의 손님이니      (伊文圓客-이문원객)

 

*해제(解題)

 위 시는 1790년경 정조가 함경감사로 부임하는 '이문원'이란 분에게 내린 귤배명(賜咸鏡監司李文源橘杯銘)이란 시입니다. 이 분은 술을 무척 좋아해서 정조가 신하들과 창덕궁 후원 부용정에서 뱃놀이를 할 때도

술동이가 비었다고 술 배달을 시켰을 정도라고 합니다. 그래서 시에도 단주하라는 말은 못하고 절주를 하라고 한 것이라고 하는군요.

마지막 련의 문원객은 중국 한무제 시대의 유명한 문인 '사마상여'를 가리키는데 당뇨를 앓고 있었다고 

합니다. 정조가 시를 내리는 주인공인 이문원과 일치하는 이름의 주인공을  시구에 넣은 것을 글 쓴이는

이문원이란 인물도 혹 당요를 앓고 있었던 것 아닐까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절주하라고요^^

그러나 정조의 보다 깊은 속내는 변방 수비를 총괄 지휘하는 중요한 자리에 부임하니 술좀 덜 마시고 변방 수비 강화에 힘쓰라는 뜻이 담겨 있는 것으로 글 쓴이는 해석하고 있습니다.

 

 

<詩 2: 원임 제학인 채 제공에게 내리는 귤배명(賜原任提學蔡濟恭橘杯銘>

 

몽의 표주박이든 첨의 야자든 (蒙瓢瞻椰-몽표첨야)  *瞻:쳐다볼 첨

사람 따라 귀함이 달라지는 법(이乎人寶-이호인보)  *그만둘 이: '昇'자의 '曰'대신 '己'

술잔의 역사는 누가 맡았을까 (誰掌광史-수장광사)  * 뿔잔 광: 角+光의 합자.

귤속에 산다는 노인이었을까? (橘中之老-귤중지노)

 

*해제(解題)*

위 시는 1791년 정조가 채제공에게 내린 시라고 합니다. 정조가 40세, 채제공이 72세일 때라고 하는군요.

 

'몽의 표주박'이란 글은 장자(莊子)의 소요유(逍遙遊)에 나오는데 '몽'은 장자의 고향 이름이라고 합니다.

어떤 이가 박씨를 심어 다섯 섬들이 크기의 엄청난 박을 얻었는데 술잔에 적합치 않다고 투덜거리는 것을

장자가 '그렇다면 배를 만들어 강호에 띄울 생각을 왜 못하냐'고  물은데서 나왔다고 합니다.

 

'첨의 야자'란 소식(蘇軾)의 야자를 말한 듯 하다고 합니다. 첨이 소식의 자(字)인 자첨에서 따 온듯 하고

소식이 야자도라 불리운 해남도에 유배가서 야자 잎에 술을 따라 마신 사실에서 인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귤속의 노인'이란 귤 껍질 속에서 유유히 장기를 두었다는 두 노인의 고사-파군 고을에 귤원이 있었는데

서리가 내려 귤 모두를 수확했는데 큰 귤 하나가 남아 있어 갈라보니 두 노인이 장기를 두고 있었고 그 중 한 노인이 '귤 속의 즐거움이 신선 못지않다'라고 했다고 한다-를 말 한 것이라고 합니다.

 

정조와 채제공의 관계는 역사에 관심있는 분들은 대부분 아는 일이라 해설을 생략합니다.(사실 해설하기가

만만하게 쉬운 것은 아닙니다. ㅎㅎ. 개혁군주 정조가 가능했던 것은 채제공이 있어서였다는 정도만 ..^^)

 

*출처: '한국학 그림을 그리다'란 책 중 이화여대 김동준 교수의 '정조 임금이 하사한 귤 술잔'이란 제하의

글에서 발췌,요약.                                                            * 글 쓴이: 바우  禹 元 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