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감] 일제 강점기 종군위안부 관련 책-소설, 연구서 등-은 많이 나와 있는 편이다. 이 작품은 그 분야의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겠는데 다른 문학작품과 달리 소설 형식을 빌렸으나 새로(?) 발굴한 위안부 관련 역사적 사실을 담은 기록문학으로 이해했다.
작품 내용 중에 일본군 부대장 중에 위안부를 받아들이기를 거부한 인물도 있었던 것으로 나오는데 이는 처음으로 안 내용이었다. 그러면서 든 생각이 부대장 본인은 자신의 양심(?)에 따라 올바른 행동을 한 것이겠으나 언제 죽을지 모르는 처지-전장-에 있는 젊은 군인들의 스스로도 억제가 안 되는 성욕 해소할 기회를 빼앗은 것이니 이에 따른 원망은 없었을까 하는 점이었다.
[참고] 종군 위안부 관련 문학 작품 중에 기억에 남는 작품
1. 한 명: 김숨
2. 하얀 국화: 매리 린 브락트
3. 다시 찾은 봄: 양석일
이외에도 많은데 우선 이 작품이 기억나는군요.
작품에 대한 소개는 아래 책소개로 갈음합니다.
[여담] 작가는 1946년 생이니 올해 77세신데 이리 글을 쓸 수 있다니 아직 건강하신 가보다. 50년 생인 나는 건강 상태가 글 쓰고 그림 그리는 걸 거의 포기하고 블로그에 자료 올리는 것도 며칠에 한 번 정도일 정도로 컴퓨터 보는 자체를 삼가고 있는 처지인데. ㅠㅠ. 하긴 노년의 건강이라는 게 생물학적인 나이를 기준으로 갈음할 일은 아닐 터. 그래도 분명 장문의 글 특히 창작성 글을 쓰기에는
결코 녹록한 나이가 아닌 건 틀림없건만. 우리나라 문학계를 위해서는 커다란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책소개
한국 문학 사상 최초로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진실을 담은 소설 『에미 이름은 조센삐였다』와 1980년대를 대표하는 밀리언셀러 『고삐』의 저자인 윤정모의 신작 장편소설 『그곳에 엄마가 있었어』가 다산책방에서 출간되었다. 문단의 원로 소설가로 ‘르포 문학의 대가’라고 불리는 윤정모는 한국 근현대사의 비극적인 사건들과 그로 인해 희생된 개인들의 아픔을 알리는 데 천착해 온 작가다. 광주 민주화 운동, 동백림 사건, 6·25 전쟁, 베트남 전쟁 등을 소설화해 감춰진 역사를 조명해 온 작가는 특히 자신의 “평생 작업”이라고 표현할 만큼 위안부 문제에 오랜 시간 매진했다. 작가는 1991년 고 김학순 할머니가 위안부 피해 사실을 처음 증언하기 전까지 거의 금기시되던 이 주제를 이미 1982년 『에미 이름은 조센삐였다』를 통해 수면 위로 끌어올렸으며, 1990년대에는 일제 만행사에 대한 해외 심포지엄에도 참여해 발언하는 등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전하는 데 앞장섰다.
『그곳에 엄마가 있었어』는 이러한 작가가 그간에 쓴 일련의 역사소설, 그 결정판과도 같은 이야기다. 소설은 태평양 전쟁에 끌려갔던 부모와 감당하기 힘든 진실과 마주하게 되는 소설가 아들이라는 한 가족의 서사 속에 격랑의 한국 근현대사를 담담하지만 호소력 짙게 풀어낸다.
올해로 작가 인생 55주년을 맞은 윤정모는 이 소설을 통해 우리 시대에 무엇을 전하고자 하는가?
1945년 해방된 이후 거의 80년 가까이 지난 지금, 일제강점기를 체험한 세대는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얼마 전 또 한 분의 할머님이 돌아가시면서 2023년 현재 한국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 생존자는 고작 9분뿐이다. 작가는 모든 피해자분들이 사라지기 전에 그들의 목소리를 기억하고 역사를 바르게 볼 것을 강하게 호소한다.
소설을 마무리하는 동안 또 한 분의 위안부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참혹하게 당했던 고통과 수모는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할 것이며, 어떤 경우에도 고통을 준 나라와는 매국적 협상을 할 수 없다고 각인하기 위해 이 소설을 썼음을 새삼 깨닫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_「작가의 말」에서
목차
그곳에 엄마가 있었어 · 009
작가의 말 · 333
주 · 339
책 속으로
6학년 때 늦봄 어느 공일 날, 다시 그 남자가 왔다. 만취한 상태였다. 그는 신발도 벗지 않고 들어와 엄마의 머리채를 잡으려 했다. 엄마가 피하자 살림살이를 집어 던지며 “이년아, 이 거머리 같은 년아, 제발 좀 떨어져라, 이 갈보 년아!”라고 악담을 퍼부었다. 그때 엄마가 벌떡 일어나 그 남자를 밀치면서 “이 미친 남자, 무슨 헛소리냐”고 악을 썼다. 놀라운 반전이었다. 남자는 비틀거리며 몇 번 더 헛주먹질을 하다가 부엌으로 나가 그릇들을 깨부순 후 떠나갔다. 1950년대 말경이었다. 대한민국에는 정신에 금이 간 남자들이 그렇게 많았다. 주정뱅이들은 물론, 쌀 한 톨 구해 오지 못하면서 밥솥이 보기 싫다고 망치로 깨부수는 남자들 또한 부지기수였다. 그러니까 세 번째 본 그의 인상은 힘 빠진 주정뱅이였다.
_37쪽, 1장 「그 남자가 죽었다」에서
내 입에서 엉뚱한 질문이 흘러 나간다. “왜 그렇게 술만 마셨을까요?”
“세상이 자기를 괴롭혀서 안 마시면 살 수가 없다나.”
세상의 어떤 일이 그 남자를 괴롭혔습니까? 세상이 그를 괴롭힐 만큼 그가 무슨 일이라도 했습니까? 세상과 접촉하면서 살았던 적이라도 있습니까? 세상에서 준 괴로움이 나와 내 어머니입니까?
_49쪽, 2장 「그 남자의 아내」에서
“피해 군사? 노예가 피해 군사다?”
“우리는 노예가 아닙니다!”
“너흰 노예들이야. 우린 돈을 주고 조선을 샀거든! 보통은 전쟁을 통해서 나라를 빼앗지. 지금처럼 말이야. 하지만 조선은 수고스러운 전쟁도 없이 헐값에 사들인 거야. 잘 들어둬. 너희 고관대작들이 조선을 팔 때 너희들을 노예로 끼워 팔았어. 그래서 조선은 세계 침략사에서도 없는 나라, 국가를 판 나라로 기록되는 거야!”
_73쪽, 3장 「그 남자의 전쟁 일기」에서
전투기가 왔으나 총격 없이 사라졌다. 다시 하역을 시작해서 한 시간쯤 지났을 때 또 공습경보가 울렸다. 같은 일이 두 차례나 더 반복되었을 때 땅에 주저앉아 “폭격기야, 제발 좀 와서 폭탄을 내려다오. 여긴 수천의 유산탄
상자가 있다, 한 방이면 순식간에 모두 날아간다. 제발 좀 이 고생을 끝내달라”고 기도했다. 건우 형이 들었으면
큰일 날 소리였다. 목숨이 경각에 이르러도 살 생각만 하라는 것이 형의 지시였다. 미래에서 기다리고 있을 그날을 반드시 만나야 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었다.
_84쪽, 3장 「그 남자의 전쟁 일기」에서
“함께 귀국했지. 귀국하자마자 그 형님은 반민특위 일을 했어. 친일파들을 조사했는데 어느 날 테러를 당했다네. 대한민국 앞날을 열어가야 할 우리의 수호신이 그렇게 허망하게 당했으니……”
한영우는 고개를 앞으로 당겨오며 나직이 뒷말을 잇는다.
“이놈의 나라는 해방이 되지 못했던 거야.”
_150쪽, 4장 「그 남자의 친구」에서
어머니가 명주 수건으로 싼 것을 무릎에 올려놓고 말한다. “이것이 주옥 언니가 버마 수용소에서, 귀국선에서, 부산 방역소에서 위안부들을 면담하고 기록한 내용들이다. 에미가 겪은 수모도 이 내용과 다르지 않다. 나는 나가서 바람을 쐬고 올 테니 천천히 읽어보도록 해라.”
읽고 싶지 않다. 읽기도 두렵다. 그러나 장군에 대한 궁금증이 ‘그냥 읽어!’라고 재촉해서 보자기를 풀어낸다. 노트 다섯 권이다. 나는 길게 심호흡을 한 후 첫 번째 공책을 펼친다.
_200쪽, 5장 「내 어머니의 고백」에서
분례가 위안소에 온 지 닷새 만에 죽었다. 첫 주 양일간 성기 고문에 질벽 파열로 하혈이 멈추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관리인이 내가 기절해서 군인을 받지 않아 그 애가 내 몫까지 받은 탓이라고 했다. 그다음 주부터 나에게 주어지는 군인은 이를 악물고 다 받았다. 하나 남은 내 친구 덕실이마저 죽일 수가 없어서였다. 나는 살아남아야 한다고 굳게 결심했다. 서대문 감옥소 앞 영천옥에는 가끔 기자들도 왔는데 살아 돌아가서 그들에게라도 얘기를 해줘야겠다는 생각에 악착같이 챙겨 먹었다. 군인들에게 건빵 등 군것질을 부탁했고, 군인이 많아 점심 먹을 시간이 없으면 군인이 그 짓을 하는 사이에도 주먹밥을, 건빵을, 씹어 먹었다.
_299쪽, 「어머니의 노트: 일본군 위안부들의 증언」에서
출판사서평
내가 소설 속에서 살해한 그 남자,
아버지가 오늘 죽었다
1981년 독재 정권에 대한 저항의 열기를 외면한 채 작품 집필에 몰두하던 소설가 배문하에게 아버지의 부고가 전해지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아버지에게 인정받지 못한 사생아였던 그는 장례식에 가지 않으려 하지만, 엄마에게 떠밀려 결국 장례식이 치러지는 안동으로 향한다. 장례식장에서 아버지의 아내는 그에게 유품인 일기장을 건네주고, 일기장을 펼치자 뜻밖에도 그 안에는 1943년 10월부터 1945년 6월까지 남태평양 전장에 학도병으로 참전한 젊은 시절 아버지의 기록이 담겨 있다. 아버지의 전쟁 일기를 모두 읽고 난 그는 집에 돌아와 평생 삼켜왔던 질문을 드디어 엄마에게 꺼낸다. 그 남자가 정말 내 아버지가 맞느냐고.
태평양 전쟁에 끌려간 학도병과 위안부들의
생생한 증언과 기록을 토대로 그린 실화 소설
『그곳에 엄마가 있었어』는 아버지의 과거를 파헤치던 아들이 어느덧 엄마의 진실과 마주하는 이야기 속에 학도병과 일본군 위안부들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소환한다. 주인공 화자인 소설가 배문하는 고교 시절 아버지로부터 “너는 쪽발이를 닮았다”라는 말을 듣고 자신의 출생을 의심하게 되면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인물이다. 아버지가 왜 그런 말을 했으며 엄마는 왜 가족사에 대해 침묵한 것인지, 읽는 내내 독자의 관심을 붙잡는 한 가족의 미스터리는 주인공이 우리 역사의 아픔을 들여다보는 순간 서서히 풀리기 시작한다. 소설은 이들 가족이 살아온 삶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가운데서 일제강점기 말부터 6·25 전쟁의 후유증에 시달리던 1950년대, 6·3 항쟁이 일어난 1960년대의 사회상 등까지 우리 역사의 질곡을 함께 그려낸다.
무엇보다 이번 소설이 갖는 또 하나의 큰 의미는 그동안 대중매체가 잘 다루지 않던 조선인 병사들의 처절하고 박진감 넘치는 드라마를 그린다는 점일 것이다. 작가는 남태평양에 끌려간 조선인 징병자, 학도병들의 이야기를 위안부들의 이야기와 접목시킴으로써 일제에 의한 전쟁 피해는 남녀를 구별하지 않았음을 드러내고자 했다고 말한다. 지옥 같은 전쟁터에서도 서로 연대하며 삶의 의지를 다지고, 해방 후 귀국할 방법이 없어 머나먼 섬에 고립된 동포를 구출하는 데 나서며,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던 그들의 이야기에는 바로 우리 민족의 역사가 담겨 있다.
‘소녀’ 또는 ‘할머니’로만 그려지던
위안부 피해자들의 또 다른 삶의 단면을 조명하다
한편 이 소설은 등장인물들의 기록과 증언, 회상을 통해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면서 그들의 삶을 다각도로 조명한다. 흔히 전쟁터에 끌려갔을 당시의 소녀 모습 또는 노인이 된 지금의 모습으로만 그려지던 위안부 피해자는 이 소설에서 단순히 피해자의 순수성을 강조하거나 타자화시키는 그간의 관습적인 문법에서 벗어나 한 시민으로, 여자로, 엄마로 나타난다. 귀국 후 가족에게도 돌아가지 못한 채 홀로 아이를 키우며 살아온 소설 속 엄마의 삶은 또한 전쟁으로 남편을 잃고 가족을 책임졌던 다른 모든 어머니들의 삶과 교차되면서 우리에게 시대의 아픔을 오롯이 전하는 동시에 더욱 깊은 울림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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