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동생 집엔 고양이 한 마리가 살고 있다.
눈동자,목,발 부분을 빼곤 온 몸이 다 새까만 놈.
모친이 노환으로 쓰러지시기 전
한 달에 한번 정도 볼 땐 징그럽고 쳐다 보기도 싫더니
모친 간병하러 다니면서 매주 이틀씩이나 마주 대하게 된 요즘은
녀석에게 은근히 눈 길이 간다.
아직은 나를 슬슬 피할 때가 더 많지만
녀석도 가끔은 나를 바로 쳐다보기도 한다.
녀석은 불쌍하다.
하루 종일 아니 매일 매일을 작은 끈에 묶인 채 꼼짝달싹 할 수가 없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목에 매여 있는 끈이 허락하는 범위내에서
베란다 쪽에 있는 장식장 위에 올라가 바깥 쪽을 물끄러미 바라보거나
목이 마를 때 욕실에 가서 물을 마시는게 전부다.
이외에는 거의 잠을 잔다.
내가 보기에는 잠 자는 시간이 제일 많은 것 같다.
나는 여동생에게 고양이에게 바람이라도 좀 쏘여 주라고 말한다.
하다 못해 햇볕 좋은 날, 긴 끈에 묶어 옥상에라도 내놓아 주라고 그런다.
그러면 여동생은 휴일엔 꼭 그러겠노라고 대답을 하지만 아마도 실천은 안하는 눈치다.
매일 매일을 먹고 살기 위한 밥벌이 장사와 노모 간병에 지치다 보니
고양이에게까지 마음 쓸 여유가 없는 모양이다.
나는 차라리 고양이를 놔주라고 그런다.
하루종일, 매일 매일을 끈에 묶여 사는 것이 너무 불쌍하다고.
그러나 동생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다.
놔주면 몸이야 자유롭겠지만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온갖 쓰레기통을 뒤지고 다녀야 할텐데
오히려 그게 더 힘들고 고달프지 않겠냐는 얘기다.
그러나 여동생의 진짜 속내는 그게 아니다.
고양이를 묶어 놓고 지내게 하는건 안됐지만
그건 고양이를 놔 먹일 수 없어 택한 불가피한 방법일 뿐이고
고양이는 여동생의 가족이나 다름없는 존재인 것이다.
하루 종일 손님들에게 시달려가며 먹고 살기 위한 돈벌이를 끝내고 집에 돌아오면
맞아주는 것은 병들어 누워있는 노모 뿐이니
비록 말 한마디 못하고 반가운 표정도 짓지 못하는 짐승이지만
이 놈을 보고있노라면 뭔가 모를 위안이 된다는 것을.
여동생은 그래서 고양이를 데리고 있는 것이다.
녀석은 하루 종일,매일매일을 일정한 길이의 끈에 묶여
그 끈 길이를 벗어난 곳은 아무리 가고 싶어도 한 발짝도 못가는 삶이지만
대신 먹고 사는 문제는 아무 걱정이 없이
주인인 여동생의 보살핌을 받으며
주어진 목숨을 편안하게 잘 이어가고 있다.
녀석 지금보니 또 자고 있다.
여동생이 마련해준 자기만의 보금자리에서 세상 편한 자세로,
그리고 처음엔 냉랭하기만 했던 나의 마음도 많이 녹여 놓은 상태로..
2014. 4.12 토. 모친 간병하러 와서 고양이를 보고 느낀 것을 써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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