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斷想, 閑談]/<단상, 한담>

그녀 한 세상 잘 살아왔을까? 그랬기를....(1)

Bawoo 2013. 5. 18. 11:30

아마 중학교 2학년 때 일께다.아직 철들기 전 소년인 내가 나보다 한살 위이던 그녀를 처음 본 것이.그러니까 아득한 50년전인 60년대  이야기인데 엊그제 일처럼 생생하기만 하다.아름다운 추억이란 다 그런 것인지...

 

그 소녀를 알게 된 것은 부친이  모친과 밑으로 두 여동생이 있는 큰집인 우리 식구들을 당신이 다니는 직장이 있는 동네로 부엌이 달린 방한칸을 마련해 놓고 불러 들여서였다. 생활비 정도나 주며 가끔 들여다 보는 정도로 가장의 책무를 다한 것으로 알고 사시던 부친이  왜 우리 가족을 불러들여 형식적으로나마 같이 살게 한건지는 지금 생각해도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어떤 계기가 있은 것만은 틀림이 없다.부친과 같이 살게된 건 이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는데  이미 부모의 손길이 필요하지 않은 나이가 되어버린 때라 부친에 대한 특별한 기대는없었던 것 같다.원래 부자지간이라는 것이 자랄 때 정성껏 잘 보살펴 키워도  부모 손길을 필요로 하지 않는 나이가 되면 무덤덤하게 되어 버리는게  아닌가 싶은데 부친과 정을 키워 볼 새도 없이 자라온  내게 있어서야 뭐 그리 큰 의미는 없었던 것 같다.그래도 부친 얼굴 한번 본 적 없이 살아온 지난 시절 보다는 훨씬 나은 것이었겠지만... 

 

부친이 우리 식구들을 자리잡게 한 곳은 경의선 철도의 종착역인 파주 문산에서 주내 쪽으로  10여리 쯤 되는 곳에 자리한  전형적인 시골 마을이었다. 앞으론 제법 큰 개울이 있고 뒤로는 나지막한 산이 자리한  꽤 큰 마을이었는데  토박이들이 대대로 농사나 지으며 살았을 법한 이 동네에  우리 식구를 비롯한 외지인들이  자리잡고 살게 된 이유는 전적으로 동네 주변에 2개의 미군 부대가 주둔하면서 부터가 아닐까 싶다.

 

부친은  그 중 한 부대에  군무원으로 다니시면서 8식구를 부양하고 계셨으니  먹고 사는 문제 해결 자체가 만만치 않았던  시절인 것을 생각하면 부친은 나름대로 대단한 능력자이셨던 것 같다.덕분에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삶은 살지 않아도 되었었으니 말이다.

 

그 시골 동네에는  일자리가 없이 지내는 부친또래의 외지에서 온 아저씨들이 꽤 많았었는데 지금 얘기하려는 소녀도 아버지가  일자리가 없어 생활 자체가 엄청 궁핍했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이에 대한 기억으론 장녀인 그녀는 물론이거니와 유일한 아들인 나보다 2살 정도 어린 놀이 친구도 상급학교 진학을 못한 것으로 미루어 짐작이 된다.그러니 그 밑의 세 여동생은 말할 것도 없었고...

 

소녀의 아버지는 무척 잘 생긴 모습이었고 도저히 그런 시골에 있을 사람으로 안보일 정도로 인테리 분위기였는데  왜 그곳까지  들어오게 됐는지는 당시 아직 어린 나로서는 궁금만 했을 뿐 구체적으로 알수는 없었다.굳이 알려고 할 정도로 철이 든 나이가 아니었던 탓도 있긴 했겠지만  이 글을 쓰는 지금 거의 50년전 일인데도 새삼 궁금해지는걸 보면 그런 시골 분위기에 안맞는 분이었던건 틀림이 없다. '사업에 실패했거나 정치권에 몸담아 재산을 다 탕진한 그런 분 아니었을까 싶다'는 얘기를 모친한테 얼핏 들은 것 같기도 하고....

 

어머니라는 분도 역시 그랬다.

시골 사람 분위기는 전혀 나지 않는 늘씬힌 외모에다 상당한 미인이었다.그 시대의 모친 또래분들이 대부분 일제 강점기에 태어난 분들이라 교육다운 교육을 받은 분들이 많지 않았을 터인데 이 분은 상급학교 교육을 받지 않았나 싶은  분위기가 났었다.

 

당시 모친은 이분하고 친하게 지내시는 것 같았는데 아마 나이가 엇비슷하셨었고 같은 외지인인데다  생활이 많이 힘들다 보니 모친에게 먹을 것 같은 걸 조금이나마 신세를 진 것이 아니었나 짐작은 가지만 자세한 것은 잘 모르겠다..

 

소녀는 이분들의 제일 큰 딸이면서 첫째였다.

부모님의 좋은 혈통을 불려 받은 탓인지 빼어나게 예쁜 외모를 하고 있었는데 당시 동네 친한 친구들 사이에선 그녀가 대단한 화제였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뭐 그래봤자 순박한 시골 소년들이 에쁘게 생긴 소녀를 호기심을 갖고 얘기하는 그런 정도였으니까 이성간에 생기기 마련인 그런 쪽으로의 상상은 절대 금지다^^

 

소녀와 첫 대면을 하게 된건 아주 우연한 기회였는데 나중에 일고보니 소녀는 평소 우리 집에 자주 드나 들었는데 마주 칠 기회가 없어 모르고 있었던 것 같다. 모친은 그 소녀를 무척 마음에 들어 하셔서  뭔가 먹을만한 맛있는게 있으면 그녀를 불러서 먹게 하곤  했었던 모양이다.

 

당시 아직 철이 안들었던 나는 학교에서 돌아오면 책가방을 팽개치고 동네의 또래들과 구슬치기,술래잡기  같은 것을 하고 놀기 바빴는데 그날도 여늬 때와 다름없이 밖으러 놀러 나가려고 대문을 나서는데 웬 예쁘장하게  생긴 소녀가 우리 집으로 들어서는 것이었다.그 소녀를 처음 봤을 때의 느낌은 "야!무지무지하게 예쁘게 생겼네.어떻게 저리 예쁘게 생겼지?"였는데 나중에 모친에게 "엄마 쟤 누구야?"하고 물어 보게 되면서 그녀에 대한 것을 알게 되었었다.

 

 

모친은 그녀가 무척 마음에 드셨었는지 그녀의 모친에게 "나한테 며느리로  줘"라고 말씀하시는 걸 우연히 들은 적도 있다.아직 이성에 대해 눈을 뜨기 전인데도 예쁘게 생긴 그녀가 싫지 않았던 아니 연정 같은건 아니라도 마음에 담아 둘 만큼 예뻤던 그녀를 두고 모친이 그런 얘기를 하시는 것이 꽤 기분이 좋았던 기억이 난다.

 

이웃해 살면서 가끔씩 보던 그녀의 모습을 보기 힘들어진건 우리 식구가 같은 동네이긴 하지만 조금 거리가 떨어진 곳으로 집을 장만하여 이사를 하고 또 고등학교를 서울로 다니게 되면서 집에 있는 시간이 별로 없어지면서였다.

 

그녀를 마지막으로 본 건 나도 이미 사춘기에 들어선  고등학교 3학년 봄 무렵인 것 같다.

 

서울에서 자취를 하다 오랜만에 집에 다니러 왔는데 그녀가 집에를 왔었다.

아마도 내가 집에 온 것을 알고 일부러 온 것 같았는데  또래의 다른 아이들보다 순진하고 얌전하기만 했던 나는 그녀에 대한 안좋은 소리를 들은 것이 있는터라 냉대라면 냉대를 해서 보냈는데 지금 생각하면 많이 부끄럽고 미안해서 지금이라도 만나면 사과하고 싶을 정도다.

 

그녀에 대한 안좋은 이야기는 대충 이렇다.

 

그 시절 나하고 같은 학교를 다니던 동급생이 있었는데 워낙 불량기가 있는 아이라 평소에 말도 안하고 지내는 사아였다.같은 학교 동급생이라 어쩔 수 없이 안면이나 트고 지내는 그런 사이였는데 그 친구는 범생이 타입인 나에게 아예 접근할 생각도 못했고 나 역시 관심도 없는 그런 사이였다.그런데 하루는 누닷없이 내게 와서 말을 걸며 "그 소녀를 아느냐"는 거였다. 난 "네가 개를 어떻게 알아"하고 짜증나는 목소리로 되물었는데 그 친구 대답이 아무래도 뭔가 감이 안좋았다.

 

50여년전 그 시절에도 성적으로 문란하고 불량한  애들은 주변에 얼마던지 널려 있었고 그 친구도 그런 부류에 속하는 축이었는데 그런 친구한테서 그녀의 이야기가 나왔다는 자체가 엄청 충격이었다.

당시 엄청 보수적이어서 "이성을 사귀면 결혼을 전제로"라는 사고 방식이 머리 속에 박혀 있던 나에게 그녀의 얘기가 내 기준으론  잡놈과에 속하는 그런 친구한테 말이 나온다는 자체가 놀랍기 그지 없었다.지금 생각하면 그 친구가 그 소녀를 좋아해서 일부러 거짓말을 했을 수도 있었겠다 싶지만   책이나 보면서 범생이로 학창시절을 보내던 나는 상황 판단을 제대로 할만한 분별력이나 사물을 보는 시각이 정립이 안된 아직은 어린 나이여서  그녀에 대한 실망감은  엄청 컸었다. 지금에 와서야 '뭐 그런 일 가지고"라고 말할 수도 있는 대수롭지 않은 일로 치부할 수 있는 그런 일일 수도 있지만 그녀의 예쁜 외모가 아무한테나 접근 대상이 되고 또 그걸 그녀가 받아 들였다는 자체가 내겐 너무너무 실망이었다.

 

이후 그녀에 대하여는 서울로 이사온  몇년 뒤 우연이 만난 그 동네 친구로 부터  대학로 근처 양장점에 보조로 취직해서 숙식을 해결하고 있다고 들은 것이 전부다.

 

그녀가 어떤 삶을 살아왔고 지금 어떤 모습으로 늙고 있을지는 너무너무 궁금하지만 전혀 알 길이 없다.

성장기에 잠깐 산 동네에서 우연히 알게 된 그 소녀가 머리속에 가장 먼저 추억으로 떠오르는 것은 아마도 내가 세상에 태어나서 제일 처음 본 예쁜 모습의 소녀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부모가 뒷바라지를 잘 해줬을 경우에 어떻게 성장했을까 하는 가정은 의미가 없는 것이긴 하지만 공부도 잘했다고 하는 그녀가 어려운 환경 탓으로 꿈을 펼쳐 보지도 못하고 어린 나이에 생활 전선에 뛰어 든 걸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안좋다.

 

노년의 삶을 살고 있는 지금  여성으로서 가장  아름다운 시기인 20초반의  아가씨들을 봐도 그냥 예쁘다는 생각이 들 뿐 이성의 감정보다는 예쁘지만 너무 어리다는 생각을 먼저 하게 된다.어떤 때는 내 젊은 시절을 떠올리며 다시 한번 보지만 아무리 그래봐야 "예쁘지만 너무 어리다"다. 그러니 그보다 훨씬 어린 나이인 중고교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며 요즘 중고생들을 볼 때 마음이야 물어 무엇하랴.그냥  헛웃음만 나온다."내가 저들 만한 나이 때에 그리도 아름다운 추억이 있었구나" 하고 말이다.

 

요즘의  청소년들도 그들만의 추억을 만들어 가며 성장기를 보내고 있겠지만 내가 성장기를 보낸 60년대 시절과 지금은 모든 것이 너무 차이나게 발전되고 변모되어 있으니 이성에 대해 느끼는 감정과 마음 가짐도 분명 다를 것이다.그리고 내가 성장기를 보낸  그 시절에도 문란하고 무절제한 생활을 하는 학생들은 얼마던지 있었으니 그들은 나와 같은 좋은 추억으로만 남아있는 추억꺼리들은  별로 없을꺼라는 생각이 든다. 

 

세상을 살아내면서  알게 된  일이지만  누구나 눈길을 줄 만큼 외모가 아름다운 여성은  그 자체가 큰 재산이어서 이를 잘 활용하여 일생을  안락하게 잘 지내는 여성들을 꽤 많이 봐 왔다.물론 반대의 경우도 많이 봐왔고..나하고 한 동네에서 성장기 몇년을 보냈을 뿐 현실적으론 말한마디 변변이 나눠 본 적도없는 그녀가 항상 내 기억 속에 자리하고 있는 건 힘들고 고달픈 어려운 시절이었지만 순수한 마음을  간직한 사람들이 지금보다는 많았던 시절이었고 나도  거기에  속하는 인간이어서 그런 것 아닐까 싶다.

 

그녀가 어려운 환경을 잘 딛고 일어나 스스로를 잘 관리하는 현명한 처신으로 영화 언페이스풀에 나오는 리차드 기어처럼 " 난 당신만을 위해 내 모든 것을 다 쏟아 부었다"는 말을 하는 좋은 남자를 만나  물질적으로도  풍족하게 한평생 잘 살아 왔기를 바래본다. 그래서 부모로 부터 못받은 혜택을 자녀들에게 원없이 쏟아 부어 주었을 그런 삶을. 그리하여 노년에 접어든 지금  잔디 밭을 뛰어 노는 손주들을 흐뭇한 마음으로 입가에 미소를 짓고  바라보면서  자신의 성장기 시절 힘들었던 나날들을 편안한 마음으로 추억하고 있기를..............

 

(그나저나 그녀의 추억 한켠에 나는 자리하고 있는걸까?  갑자기 궁금해진다.헐~~)

 

                                                                                                  2013.5.18 아침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