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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욱의 남해 여행기-"바람과 이슬로 몸과 마음을 씻고"

Bawoo 2013. 5. 26. 07:50

*2012년 11월에 "알마"라는 출판사에서 출간된 책.

 

부제가 "조선의 귀양터 남해 유배지를 찾아서"인 것으로 알 수 있듯이 조선 시대 유배지 역할을 했던 남해로  유배를 당했던 주요 인물들그리고 남해에 남아 있는 역사 유적들을  따라 가본 역사추적(?) 여행기이다.발길은 지금부터 200년전인 조선 숙종조 남해로 유배를 당한 "유의양"이란 분이 남긴 "남해 견문록"에 남긴 발자취를 따라 움직이고...

 

저자는 다년간 고등학교 국어 교사를 한 국문학도 출신.

 

그래서 그런지 글이 매끄럽고 정갈하다.경제 관련 기사나 책을 읽고 옮기다 보면 머리에 들어 있는 지식을 글로 제대로 풀어 내는 공부가 안돼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데 이 작가는 제대로 글쓰기 공부가 되어 있어 한 수 배운다는 느낌이 와 닿는 잘 쓴 글이다.역사 공부도 많이 되어 있어 많은 역사 지식을 얻게 해준다.이미 알고 있는 것도 있지만  새로 알게 되는 것이 더 많다.^^

 

아래는 지금 읽으면서 기억하고 싶은 내용들을 메모해 놓는 과정의 글들.

 

* "처음 만들어진 충무공 사당 충렬사"를 소개하는 글을 읽노라면  이충무공의  후손들-5대 부터 10대손-중 정삼품 이상 당상관을 지낸 분들이 무려 55명이나 된다는 사실을 알게 해준다.삼도 수군 통제사,병마절도사,수군절도사의 벼슬이다.모두  무인들이라는 특징도...글쓴이의 말에 따르면 무인들은 당쟁의 아수라판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웠기 때문에 무인의 길을 택한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인 듯 싶은데 그것보다는 무인이셨던 충무공의 음덕-요즘 말로 하면 가문이 좋은 덕^^-이 더 쉽게 미치는 분야여서가 아니었을까?^^

충무공의 자살설,선조의 옹졸함,서인놈들의 전쟁중에도 충무공을 못죽여 안달한 이야기도 나온다.충무공에 대해 관심이 있어 책을 좀 읽으신 분은 다 아는 내용이지만 처음 접하는 분은 눈이 확 뜨이는 애기일 수도 있을 듯.^^ 

 

*"김구의 화전별곡'편에서는 중종조 개혁을 도모하다 실패하고 죽음을 당하게 되는 조광조와 그 휘하인 김구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가 나온다.물론 화전별곡 이야기도..(고전문학 전공 학자인 내 동기한테 화전별곡에 대해 물으면 아마 해박한 지식을 풀어 놓을 것으로 짐작된다.)ㅋㅋ. 김구 본인은  남해로 32세에 귀양와서 13년 귀양살이를 하고 45세에 임피로 옮겨져 2년뒤 관작을 돌려 받고 고향 예산에 가서 그해 죽었다고 한다.

 

*지금은 없어진 관음포에 얽힌 이야기

원래 이름은 "가칭이" "갇히다"에서 온 말이라고 하며 관음포의 땅 모양을 상징적으로 표현해주는 이름이란다.이순신 장군이 실제로 돌아가신 곳은 이곳이라고 저자는 이야기하는데 진부는 잘 모르겠고 당시 일본 수군을 이곳 관음포로 몰아 넣고 몰살시켰다고 한다.일본놈들에게 이런 치욕적인 역사를 남겨준 땅이기에 일제 강점기 시절 서둘러 매립,육지화 시켜 놓고 여기다 벼를 삼어 쌀을 자기네 땅으로 실어 날랐다는 가슴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곳이라 함.

이순신 장군을 천거한 서애 류성룡과 그의 아저씨에 얽힌 전설 이야기도 나오는데 경북 안동 사람인 서애에 관한 전설이 남해에 전해 내려오는 이유는 이순신 장군을 천거해 왜놈들의 노략질로 부터 구하게해준 고마움의 표시라는 저자의 이야기.

 

* 대국산성에 얽힌 전설 이야기 -청장군이 하룻 밤만에 쌓았다고?

의좋은 "명",'청'이라 불리는 형제가 있었다,그러나 한 여인을 동시에 사랑하게 되고 형제는 내기를 해서 이기는 쪽이 여인과 결혼하고 지는 쪽은 마을을 떠나기로...형인 명은 발에다 쇳덩이를 달고 뛰고 동생인 청은

대국산성을 쌓았단다.동생이 내기에서 이겨 형은 자결을 하고 동생은 여인을 차지하고 왜구를 물리치고...

 

여인은 권력, 형제는 붕당을 이뤄 당쟁을 하는 조선조 지배 계층을 상징한다는  저자의 해석인데 공감이 감.

 

*선소에 있는 장량상의 동정 마애비-장량상은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의 유격대장,진린 제독이 조선을 도와 왜적을 물리친 공적을 커다란 바위에 기록해 놓았다 힘. 저자의 말에 따르면 유의양은 "남해문견록"에서 "~대명 은혜를 어찌 잊으리오"라고 써 놓았다고 하며 귀양에서 풀려다 사헌부 집의 벼슬 자리에 있으면서 이미 망하고 없는 명나라를 위해 단을 쌓고 제사를 올릴 것을 건의 했다고 한다.

 

이 대목에서 저자의 못난 조상님들에 대한 비판이 신랄하다.유의양이 살았던 시기는 명은 이미 멸망하여 없고 청이 강성하던 시기.이런 때에 없어진  나라를 위해 제사를 지내야 한다는 조선 지배 계층의 사고방식.외래 문물의 유일한 통로인 청나라 마저도 외면.-'19세기 조선의 몰락은 외침에 의한 망국이 아니라  스스로의 몰락 아니겠는가?' (저자의 의견에 100% 동감-썩을 못난 조선조 지배 계층 양반님네들)

 

*봉천사 묘정비- 순조 28년 세도정치를 시작한 홍문관 대제학 김조순이 비의 글을 짓고 부제학 김난순이 글을 썼다.내용은 이이명이 남해 문화에 이바지한 공로를 기록한 것이라고 함.이후 이이명과 숙종에 관한 역사적 사실 이야기들.이미 알고 있었던 내용이지만 다시 봐도 새롭고 재미있다.(167~200쪽 까지)

 

*남해 향교-봉강산 자락 끝에 소재.서포 김만주이 귀양살이 당시 이 남해향교에서 '주자어류'전질을 빌려다가 '주자찬요'라는  책을 엮었다고 '서포연보에 전한다 함.그리고 경안군-소현세자의 셋째 아들-에 얽힌 이야기들(208쪽 까지)

 

*다정리 고인돌-딱이 뭐라 쓸만한 내용이 없슴.(221쪽 까지)

 

*백이정 난곡사-고려말 성리학자 이재 백이정-우리나라에 성리학을 처음 들여왔다 함-을 추모하는 사당.이제현,박충좌,이희급의 위패도 같이 있다함.이제현.박충좌는 백이정의 제자이고 이희급은 정유재란때 이순신 장군을 도와 왜군을 크게 무찔른 공을 기려 남해 사람들이 모심. 뒤로는 백이정에 얽힌 이야기들-원 지배기의 고려말  역사 애기가 나온다.

 

*용문사 벽장 속에는 삼혈포

용문사는 남해에 남아 있는 절 가운데 가장 오래된 절.조선 중기 백월당이라는 중이 원효대사가 지은 보광사를 헐어 지었다고 전함.임진왜란때 많은 승병이 나와 나라 지키는데 공을 세운 것을 온 곳을 숙종이 치하하여 수국사로 지정하고 위패,연옥등,촛대,번등을 하사했으나 일제 강점기에 연옥등과 촛대는 일본놈들이 빼았아 갔다함. 삼혈포는  벽장속에 있고...

 

*임진산성-왜구 침탈의 역사를 말해 준다.

민보성,잔땡이성이라고도 불리는 이 성은 신라시대에 만들어졌다 함.남해에 있는 성들이 다 만들어진 연대가 오래 되었으며 이는 왜구 침탈의 역사가 오래 되었슴을 말해 준다.남해에 있는 성들은 왜구와 남해 사람들 간의 침탈과 응전의 산 증거물이다. 

 

*김만중과 류명현의 유배지 -노도

-서로 반대당에 몸담고 있어 권력의 부침이 엇갈린 두사람, 종국엔 둘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노도로 귀양와서 그곳에서 생을 마치다. 김만중은 숙종 18년에,류명현은 그보다 뒤인 숙종 29년예순에...

 

-잘알려져 있지 않아 나도 처음 알게된 '류명현'이란 조상님은 남인 출신으로 권력에 부침이 있었고 종국엔 귀양지 노도에서 생을 마감했지만 형조,이조판서 벼슬까지 한 대단한 분.

 

-"김만중' 조상님이야 국어책에 늘상 나온 분이라 누구나 아는 지명 인사인데 이분이 노도에서 3년간  귀양살이 하며 57세로 생을 마감할 때 까지 '사씨남정기''구운몽''서포만필'을  지었다고 함.(이런  사실은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슴.이 분 귀양살이하던 초당을 최근에 복원했다 함.)

명문가의 후손이나-책에 가계도가 나와 있슴-부친 김익겸이 병자호란 당시 강화에서 순절한 탓에 곤궁하게 성장.그러나 부친의 음덕으로 형 김만기의 딸이 숙종의 첫번째 왕비가 되고 김만중도 홍문관 대제학,병조판서를 역임한 골수 서인.후손들도 잘된 분들이 많다고 하는데 정작 본인은 귀양지에서 사망, 

 

-윤선도와의 관계 이야기도 나오는 데 생략하고 두분 다 강직했으나 고산은 천수를 다했고-85세 졸- 서포는 56세에 졸.고산은 20년 귀양살이 20년 은둔도 했으나 서포는 5년 귀양살이에 권력에의 집착을 못 떨쳐 버렸다 함. 고산이 죽는 해에 서포는 35세로 고산이 50년 먼저 태어 났으나 조정에서는 나이에 관계없이 서로 적대 관계였다.고산은 남인,서포는 서인 대변인 역할. 

두분다 국문학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막상막하인 것으로 보이고....

 

*양아리 고대문자-암각화는 '서불과차''서불과지'라 해석하는데 뜻은 '서불이 여기를 지나다'라고 한다.여기서 '서불'은 진시황때 방술사였던 사람을 말하고 이 서불이 진시황의 불로장생약을 구하려고 남해에 머물렀다 한다.그리고 부소산성에 얽힌 이야기-진시황의 장남이엇던 부소는 시황이 죽으면서 왕위를 계승하도록 하였으나 정승 이사.환관 조고의 모략에 의해 자결한다.이에 서불은 '서불과차'라는 전설을 남기고 동쪽으로 떠났다고 한다.

 

*금산-단군 성전과 보리암이 있는 곳.처음 이름은 금강산.작은 봉래산.개암산으로 불렸으나 원효대사가 보광사를 창건하며서 보광산으로 바꿨고 천년뒤 이성계가 다시 금산으로 바꾸어 부르도록 했다 한다.(이성계에 관한 전설이 있슴).

 

-여기서 잠깐;저자의 말에 따르면 임금의 묘호 앞에는 성씨를 붙이지 않는 법이어서 '이태조''이씨조선'이란 말은 일본놈들이 우리를 욕보이기 위해 쓴 말이라고 한다.고려를 '왕씨 고려'라고 하지 않으며 태조 왕건을 '왕 태조'라고 부르지 않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는 것이다.(일본놈들은 참 여러가지로 우리나라를 망쳐 놓았다)

 

류의양의 여정도 여기서 끝났다.류의양은 영조 47년(1771년) 남해로 귀양을 왔다가 영조 51년 다시 등용될 때 까지 4년동안에 아산,종성으로 유배를 갔었다.이후 예조참판,승지 벼슬을 하고 비교적 평온한 말년을 보냈다고 한다.죽은 년도는 기록이 없다고 한다.

 

*미륵이 돕는 마을 '미조항'-조선 시대에는 남해에서 가장 큰 해군기지.종5품 수군첨절제사가 왜구의 침략으로 부터 지킨 역사 속의 항구다.

미조 상록수림은 1962년 천연기념물 제 29호로 지정.-'숲이 우거지면 마을에서 인물이 나고 숲을 건드리면 큰 해를 입는다'는 말이 전해 내려온다.

 

*무민사-최영 장군과 선조때의 첨사 성윤문을 모신 사당.

최영 장군은 왜구를 잘 때려잡아 남해 사람들의 원한을 풀어 준 장수로,첨사 성윤문은 이순신 장군 휘하에서 왜적을 잘 무찔러 남해 사람들을 편히 지내게 해 준 공로로 사당에 모셔졌다 함.

 

*물건 어부 방조림-1959년에 천연 기념물 150호로 지정.'숲을 해치면 마을이 망한다'라는 이야기가 여기도 전해 내려옴.

 

*산골 봉화-남해섬의 산골.남해에서 가장 오래 된 삼층 석탑이었으나 1982년 어느 날 도둑맞고 지금은 가짜 탑이 대신.원래 원효대사가 세운 보광사 탑이었으나 내산 고은사,봉화 함정사 순으로 옮겨 다니다가 당산나무 아래로 옮겨 졌었다고 한다.

 

-읽기를 마치고-

 

남해를 좋아해서 집사람 은퇴후 남해에서 살면 어떨까 하는 마음으로 남해를 가본게 세번 정도는 되는 것 같다.사전 정보 수집도 안하고 차로 해변 도로를 따라 그냥 내달리는 그런 여행이어서 갔다 오기만 하면 뭔가 허전했었다.가슴 속에 남아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는 여행이기에 그랬을 것 같다.그래서 기회가 오면 다시 한번 가보려고 생각하고 있는 차에 도서관에서 이 책을 발견하게 되어 기쁜 마음으로 책을 빌려 왔고 책도 이런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이 책을 통하여 남해에 있는 유적들에 앍힌 사연을 알 수 있게 되었고 어디를 갈 것인가를 정할 수 있게 되었다.무엇보다도  굳이 깊을 필요까지는 없는 남해 관련 역사 지식을 잘 알게 해주는 필자의 해박한 역사 지식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오랜만에 문학작품을 읽는 맛을 느끼게 해 준 필자의 글쓰기 솜씨도  마음에 들었고..

 

남해에 대해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절대 후회하지 않을 좋은 책이라고 감히 말씀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