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玉臺體(옥대체) *
權德輿(권덕여)
昨夜裙帶解(작야군대해) : 어제 밤엔 치마 끈이 풀리고,
今朝蟢子飛(금조희자비) : 오늘 아침에는 갈거미 날아왔네.
鉛華不可棄(연화불가기) : 화장을 차마 그만 둘 수 없음은
莫是藁砧歸(막시고침귀) : 혹 낭군님 돌아오지 않을까해서네.
<단어 풀이>
* 玉臺體 : 중국 남북조 시대에 진나라의 서릉(徐陵)이 편집한 <옥대신영>의 시문을
모방하여 만든 시체(詩體). 戀情詩(연정시:연애시)
* 裙帶 : 치마끈.
* 蟢子 : 긴 다리 거미의 일종(吉兆로 여김).鉛華 : 여자들이 얼굴을 단장하는 분가루.
* 莫是 : ~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다.
* 蒿砧 : 여기서는 아내가 남편을 일컫는 은어.
<감상 포인트 >
예전 사람들은 치마(裙)가 벗겨지거나 갈거미(蟢)가 내려오면 기쁜 일이 생긴다고 여겼는데,
여기에서는 아내분이 어제 치마끈이 풀리고 오늘은 갈거미를 보았으니 좋은 징조(서방님이
돌아오지 않을까)를 기대하는 모습을 읊었음.
<지은이 약력>
당나라 천수(天水) 약양(略陽) 사람. 자는 재지(載之)고, 권고(權皐)의 아들. 윤주(潤州) 단도(丹徒, 지금의 江蘇에 속함)에 옮겨 살았다.
어려서부터 문사로 이름이 알려졌다. 4살 때 시를 지을 줄 알았고, 15살 때 산문 수백 편을 지어 『동몽집(童蒙集)』을 엮어 명성이 더욱 높아졌다.
처음에 하남(河南) 막부(幕府)를 보좌했다가 감찰어사(監察御史)로 옮겼다. 덕종(德宗)이 그의 재주를 듣고 태상박사(太常博士)로 불렀고,
거듭 승진하여 중서사인(中書舍人)에 올랐다. 기거사인(起居舍人)을 거쳐 지제고(知制誥)를 겸하다가 다시 중서사인으로 옮겼다.
정원(貞元) 말에 예부시랑(禮部侍郞)에 오르고 세 번 공거(貢擧)를 관장해서 ‘득인(得人)’으로 불렸다.
헌종(憲宗) 원화(元和) 초에 병부(兵部)와 이부(吏部)의 시랑을 지냈다. 5년(810) 예부상서(禮部尙書) 겸 중서문하평장사(中書門下平章事)에 임명되었다.
나중에 형부상서로 옮기고 산남서도(山南西道)의 절도사(節度使)로 나아갔다. 2년 뒤 병으로 귀향했지만 도중에 죽었다.
시호를 문(文)이라 해서 당시에 권문공이라 일컬어졌다. 저서에 『권재지문집(權載之文集)』 50권이 있다.
『전당시(全唐詩)』에는 시가 10권으로 편집되었고, 『전당문(全唐文)』에는 산문 27권이 수록되어 있다.
[출처] 시 원문 및 해설: 카페'한시 속으로' , 지은이 약력: 네이버 지식백과ㅡ 권덕여 [權德輿] (중국역대인명사전, 2010.1.20, 이회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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