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피케티 논쟁'이 막 시작됐을 무렵인 지난 3월 한국은행은 2013년 국민계정 통계를 발표했는데, 지난해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GNI)이 2만6205달러라고 했다. 원화로 환산해 2870만원쯤 되니, 4인 가족 기준으로 계산하면 1억1480만원이다. 이게 평균소득이라니, 그러니까 작년에 이 정도 돈을 벌지 못했다면 평균에도 못 미친다는 말이니, 이 뉴스를 듣고 나처럼 당황한 분들 많았을 것이다.
이를 감안했음인지 한국은행은 기업과 정부 같은 데서 번 돈을 제외한 가계총처분가능소득(PGDI)이라는 용어를 써서 실제로 가계에서 번 1인당 국민소득은 1500만원 정도라고 설명해주었다. 4인 가족의 홑벌이 가장이라면 연봉 6000만원만 벌었어도 평균은 된다는 얘기다. 사실 국세청의 2012년도 통계를 봐도 연말정산 대상 근로소득자 1576만 명 중 연봉 1억원이 넘는 경우는 41만 명(2.6%)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불평등 문제는 그리 심각한 편이 아닌가? 아니다. 며칠 전(10일) 통계청이 발표한 소득 격차 지표를 보자. 우리나라 도시 가구의 상대적 빈곤율이 지난 20년새 두 배 가까이 늘어났고, 대표적인 소득 불평등 지표인 지니계수와 5분위 배율 역시 크게 악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연소득이 중위소득(소득 순으로 전체 가구의순위를 매겨 정확히 중간이 되는 소득)의 절반에 미치지 못하는 가구의 비율이 1993년에는 8.2%였으나 2013년에는 14.5%로 늘어났다. 같은 기간 지니계수(0에 가까울수록 평등하고 1에 가까울수록 불평등이 심하다) 역시 0.256에서 0.307로 높아졌고, 상위 20%의 소득을 하위 20%의 소득으로 나눈 5분위 배율은 3.84배에서 5.70배로 커졌다. 한마디로 갈수록 빈부격차가 확대되고 있다는 말인데, 이건 토마 피케티 파리경제대학 교수가 '21세기 자본론(Capital in the Twenty-First Century)'에서 주장한 내용 그대로다. 가히 피케티 신드롬이라고 할 만한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이 책의 내용을 한 줄로 요약하면 "돈이 돈을 낳는 속도가 사람이 돈을 버는 속도보다 빠르다"는 것이다. 피케티는'21세기 자본론'에서 미국과 영국을 비롯한 20개국의 3세기에 걸친 납세 자료를 기초로 소득 불평등이 악화되는 현상을 실증적으로 규명하고 있다. 그는 자본수익률(r)이 근로소득이나 생산량의 증가율(g)을 앞서왔다는 의미의 'r>g'라는 부등식을 통해 자본주의가 구조적으로 불평등을 심화시킬 수밖에 없다고 설명한다. 피케티는 그래서 빈부 격차와 사회 불평등은 앞으로 더욱 확대될 것이며, 이를 막기 위해서는 최고 80%의 누진세율과 글로벌 부유세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무튼 올해 3월 이 책의 영어판이 출간되자 700쪽에 가까운 분량에 각종 통계수치가 망라된 경제전문서적임에도 불구하고 미국 아마존에서 베스트셀러 1위(출간 3개월이 지난 지금도 10위권을 유지하고 있다)에 오르는 등 하나의 문화적 현상으로까지 자리잡아가고 있다. 또 피케티 논쟁이 뜨거워지자 그가 인용한 통계수치의 오류라든가 그가 제시한 해법의 타당성을 지적하기도 하지만 불평등을 핫이슈로 끌어냈다는 점에 비하면 이런 문제는 오히려 사소하다는 평가다. 아직 한국어판이 나오지 않아서인지 우리나라에서는 찻잔 속의 태풍에 머물고 있으나 피케티 현상은 남의 나라 얘기가 아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세월호 참사와 안전 문제에 밀려났지만 다음 총선과 대선에서는 경제민주화가 핵심 쟁점으로 떠오를 것이다. 특히 개정된 자본시장법에 따라 앞으로 상장기업의 등기임원들은 5억원 이상 연봉을 받을 경우 공개해야 하는데, 지난 번에 보았듯이 수십억에서 수백억원까지 받는 오너 기업인들이 수두룩해 많은 국민들이 놀랐다. 그런 점에서 로버트 하일브로너의 지적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사회주의가 실패했다면 그것은 경제적 이유보다 정치적 이유에서였고, 자본주의가 성공하게 되어 있다면 그것은 경제력을 길들이는 정치적인 의지와 수단을 찾아서일 것이다." 피케티 신드롬에서 얻을 수 있는 메시지도 다르지 않다.
* 출처 : 머니투데이 / 글쓴이-박정태 경제칼럼니스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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