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렁이
며칠만에 운동을 나선 길
점점 나빠지는 심장은 어쩔 수 없더라도
다리 힘마저 없어지면 안되니
걷기라도 열심히 해야된다는 생각으로 나선 길
아직은 튼튼한 다리에 감사하며
동네 앞산을 부지런히 걷는다
최소 두시간은 걷기로 하고
목적했던 반환점을 돌아 한숨을 돌리고
도서관 뒤 약수터로 근력운동을 하러 가는 길
그 길 가는 중
콘크리트 포장 인도에
지렁이 한마리 나와 꿈틀거리고 있다.
징그러운 놈
녀석은 언제봐도 징그럽다.
어릴 적
가재잡겠다고
약수터 도랑에 있는 큰 돌 들쳤다가
가재는 없고
커다란 지렁이만 꿈틀대고 있는 것에
어찌나 놀랐던지...
근데 왜 나와있담
습기도 없고 그늘도 없어
그냥 있으면 틀림없이 죽을텐데
도대체 어디서 나온 것이람
둘러보니
길 한 쪽은 산을 막은 콘크리트 담이니 아니고
차도와 인도를 구분해 놓은 곳에
화단이 있는걸 보니
녀석 거기서 나온 것 같다.
근데 도대체 왜 나왔담.
나와봐야 콘크리트 바닥 뿐이라
살만한 곳이 전혀 없는데
그걸 모르고 나왔을까
사는 곳이 너무 어둡고 답답해서
좀 더 나은 곳이 있나 하고
그러고 보니 여기저기
이미 죽은 녀석들이 보인다.
도대체 무슨 일인가
자기들끼리 한바탕 전쟁이라도 한 것인가
암튼 살려주기로 했다
그냥 놔두면 틀림없이 죽을테니
보기에만 징그럽지
사실 나에게 해를 입히지도 않는 동물이다
근데 방법이 없다
손으로 잡을 수는 절대 없는 일
두리번 거리며
녀석을 화단으로 다시 밀어낼
나뭇가지 같은게 있나 찾는다.
다행이
부러진 나뭇가지 한개
눈에 들어온다
간밤 비에
산 위에서 내려온 것 같다
옳타꾸나 얼른 집어들고
녀석을 화단 쪽으로 밀어낸다
녀석 진저리치듯 꿈틀거린다
내 마음도 녀석의 징그러운 모습에
진저리가 나지만
녀석은 이런 내 마음과 관계없이
자기를 살려주려는 것인지는
전혀 모르고 진저리를 친다
몇 번의 밀어내기 끝에
드디어 화단 위에 녀석을 올려놓았다
그곳은 아늑하다
습기도 있고 그늘도 있다
녀석이 살기엔 안성맞춤인 곳이다
그 좋은 곳을 마다하고
습기도 그늘도 없는 콘크리트 바닥인 인도로
왜 나왔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곳에서 자칫 목숨을 잃을 뻔 했으니
나를 만나 목숨을 건진 건 천만다행인 일
녀석 나에게 감사하고 있을까
뭐 그러지 않아도 된다
어린 시절 녀석 모습만 보고도
질겁을 한적이 한두번이 아닌
정말 싫은 짐승이고 지금도 그렇지만
녀석도
한 세상 잘 살다 가게 하고 싶은 마음에서
한 일이니
이유가 뭔지는 모르지만
콘크리트 바닥에서 온몸이 말라가며 죽는
그런 비참함으로
삶을
마치는 것을 볼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우리네 인간의 삶도
노년까지 순탄하게 살다
큰 병 앓지않고 큰 고통없이
언제까지일진 몰라도
그렇게 살다가야 가장 큰 복이고
나도 그런 삶을
앞으로 얼마가 될지 모르는 세월동안
살다 가고 싶은 것을...
2014.8.9 아침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