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장면 1 (옛날-어릴 적)
저어기
아득하게 멀리도 바라 보이는
60년 전 세월 속에
한 여인이 걸어오고 있다.
아직 30이 채 안 되어 보이는
젊은 여인.
그녀 양쪽엔
아이들 하나씩
매달리듯 붙어 있고
머리엔
커다란 보퉁이 올라있다.
등에도
아이 하나 업혀 있는
모습이다.
그녀 바른 손엔
어린 계집아이 하나
매달리듯 잡혀있고,
왼손은
머리에 인 무거운 보퉁이를
행여 떨어뜨릴세라
꽉 잡고 있다.
계집 아이보다 조금은 커 보이는
사내 아이는 잡을 손이 없어
여인의 치마 자락을 놓치면 큰일 날세라
부여잡듯이 잡고 있고
등에 업혀 있는 아이는
마냥 잠들어 있다.
행여 여인을 놓칠세라
힘겹게 따라 걷고 있는
여인의 아들, 딸일 아이들
머리를 짓누르고 있는
보퉁이가 주는
목이 끊어질 듯 아픈
엄마의 고통은 알 리가 없다.
등에 업힌 아기는
그저 잠들어 있다.
엄마일 여인 하나에
자식일 아이들 셋.
제일 큰 사내 아이는
대여섯살 쯤 되어 보이고,
사내아이의 동생일
계집 아이는
몇 살 어려 보인다.
한눈에 보아도 초라한 행색들,
여인은
머리에 인 보퉁이만큼이나
삶의 무게가
너무 힘겨워 보이는
모습이고
아이들은
자기들이 가는 길 앞에
놓여있는 삶이
어떤 것인지는 아무런
생각도 없다.
그저,
지금 엄마인 여인이
곁에 없으면
큰일난다는 것을
알 뿐이다.
장면 2 (지금- 노인들)
어느 집 작은 방
의료용 침대에 한 노인 누워있다.
한 눈에 보아도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그런 모습
그 노인을 좀 젊어 보이는
노인 둘이 지켜보고 있다
누워있는 노인은 어머니이고
지켜보는 노인들은 아들과 딸이다
셋 다
험난한 세파를
힘겹게 견디며
한 세상 함께 살아냈을 모습들
아들, 딸일 두 노인은
모친일 노인을 바라보며
함께 살아낸
지난 세월을 떠올리는 모습이다.
시간의 차이는 좀 있고
별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어머니인 노인이 먼저 세상을 뜨겠지만
자식인 두 노인도 세상을 뜨기는 마찬가지
그러나 지금은
병석에 누워있는 모친일 노인이
오래 누워있을 수록
자식일 두 노인
특히나 함게 살고 있는
딸인 노인의 삶이 버겁다.
비록
따로 살고 있는 여동생이
일주일에 며칠씩 와서
거든다고는 하지만
전적인 책임은
같이 사는 자기의 몫
자기를 낳아주고 길러준
어머니를 간병하는 일이기에
피할래야 피할 수도 없는 일.
힘이 들어도 견뎌내며 하고는 있지만
속내는 '저렇게 오래 살면 뭣하나'이다
자식인 어린 새끼는
앞으로 같이 살아갈 날이
무수히 남았기에
죽을 먹이던 밥을 먹이던
품안에 보듬어 키워내지만
늙고 병든 부모는
살아갈 날이,
설사 병이 낫는다 해도
눈앞에 빤히 바라보이는
얼마 남지 않은 날인 터
그렇기에
힘들게 하는 병수발이
하나도 즐거울 일이 없다.
아무런 희망이 없이
단지 힘만 드는 일이기에
병석에 누워있는 모친일 노인도
이를 잘 알기에
자식인 노인에게 미안한 마음이지만
당신도 어쩌지 못하는
당신의 몸 상태이기에
그저 자식 눈치만 볼 수밖에
별 도리가 없다
살아있다는 것이
당신에게나 자식에게나
고통일 수도 있는
지금의 삶
그 삶 속에
당신의 지난 세월 온갖 삶이
녹아들어 있고
그 삶 속에
얼마 뒤가 될지는 모르지만
자신의 뒤를 따라 올
자식들의 남은 삶의 모습이
절로 바라 보인다.
당신의 손자, 손녀인
당신 아들, 딸의 자식들이
당신이 지금 누워있는 이 침대에
당신의 아들, 딸이 누워있는 모습을
당신의 아들, 딸이
당신을 지켜보고 있는
지금 그 모습 그대로
똑같이 지켜보고 있을
그런 모습,
살아낸 삶의 모습은
전혀 같지 않지만
삶의 마침은
결국은 똑같을
지금 당신을 쳐다보고 있는
당신 자식들의 모습이.....
2014. 8. 5 노환으로 병석에 누워계신 모친을 생각하며 새벽에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