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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학연(丁學淵) 선생 한시 모음(1)

Bawoo 2014. 10. 8. 22:07

秋笛(추적)  - 가을 피리

 

寥亮霜天鴈字迴(요량상천안자회) : 텅 빈 강을 하늘 기러기 무리 돌아오는데

䤬鑼潭北釣魚坮(사라담북조어대) : 사라담의 북쪽 조어대로구나

蘆花一霎都飛去(로화일삽도비거) : 갈대꽃 삽시간에 우수수 떨어져 내리니

不獨江城怨落梅(부독강성원낙매) : 江城에서 매화꽂 지는 것만 원망하지 말게나.

 

䤬鑼潭 : 양수리 부근에 있는 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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秋風(추풍) - 가을 바람

 

魚鱗雲散碧天澄(어린운산벽천징) : 비늘구름 흩어져 푸른 하늘 맑게 펼쳐졌는데

吹斷江南雁一繩(취단강남안일승) : 울음소리 강남땅에서 끊어지는 기러기 편대 한줄기

去去哀鳴留不得(거거애명유부득) : 가고 가며 구슬픈 울음소리 머물지 않는데

荻花深處只漁燈(적화심처지어등) : 갈대꽃 깊은 곳에 고기잡이 등불만 비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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秋花(추화) - 가을 꽃

 

數曲漁歌月似鉤(수곡어가월사구) : 어부가 몇 곡조 울려퍼지고 달은 갈고리 마냥 걸렸는데

蘆花如雪最風流(노화여설최풍류) : 갈대꽃 눈처럼 흩날리니 풍류가 가득하구나

吾家悔置秋聲館(오가회치추성관) : 나의 집 가을 소리 가득한 곳에 있음 한하노니

一夜西風損白頭(일야서풍손백두) : 온 밤 서풍에 흰머리가 더욱 세어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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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秋花(추화) - 가을 꽃

 

開遍蓼花香一溪(개편요화향일계) : 활짝 핀 여뀌꽃 향기 시내에 가득한데

漁家寂寞不成蹊(어가적막불성혜) : 강가의 집 적막하여 오솔길 자취 없어라

縱然水曲飄零盡(종연수곡표령진) : 설령 물굽이에 흩날려 떨어져 다할지라도

猶勝春江踐作泥(유승춘강천작니) : 외려 봄 강 진흙탕에 밟힘 보다는 나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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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秋蟲(추충) - 가을 벌레

 

細月西傾樹影過(세월서경수영과) : 초승달 서쪽으로 기울고 숲 그림자 옮아가는데

臨窓何物弄機梭(임창하물농기사) : 창가에서 무엇이 베틀 북을 놀리는가?

山村寡婦誅求盡(산촌과부주구진) : 산촌의 과부 가렴주구에 다 빼앗기고

羨汝今年織最多(선여금년직최다) : 네가 금년에 짠 베가 가장 많겠다고 부러워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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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학연(1783~1859)은 다산 정약용 선생의 큰 아들이다.
단산 선생이  강진으로 유배를 떠나자 유배지를 오가면서 아버지의 저술을 돕고 학문연구에 힘썼다.
수년 전 일본 궁내청서릉부 소장본 정학연의 시집인 『삼창관집』이 발견되어 노경희에 의해 해제가 작성되기도 했다.
정학연은 아버지가 유배 중인 1805년부터 보은산방에서 『예기』와 『주역』을 전수받으면서 학문연구에 힘썼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1783년 성균관에서 공부한 이후로 정조의 총애를 받고정치의 중심에서 활동하다가 정조가 죽은 1800년

반대파의 숙청작업으로 유배를 떠나게 된 학자로서 큰 아들 정학연에게 학문적영향을 많이 미쳤다.
정학연과 관련하여는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그가 의술에 매우 뛰어났다는 사실이다.
최근 경기도박물관에서 공개한 신현의 『성도일록』에 따르면정학연은 매우 의술에 뛰어나 권세 있는 사람들의 병을 치료해
주어 아버지 정약용을 유배에서 풀려나게 하려고 노력하여 마침내 풀려나게 하는 데 성공했다고 한다.
아버지로부터 전수받은 의술을 활용하여 아버지의 구명운동을 전개한 것이다.
정학연이 의술에 뛰어나다는 기록은 여러 곳에 나오는데 그는이러한 의술을 아버지를 위해서 사용했다.
신현은 『성도일록』에서 이러한 사실을 효행이라고 할 만하다고 평하고 있다.
중국 금나라의 장종정이 『유문사친儒門事親』이란 의서를 지을 때 그 책이름에 대해서 "유문사친이라고 말한 것은 오직
유학을 하는 사람이라야 능히 그 이치를 밝힐 수 있고 부모를 섬기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의학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라고 말한 것은 유학자의 책무와 의학이 밀접하게 관련되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었다.
조선 최고의 유의 허준은 "병을 치료하고자 한다면 먼저 그사람의 마음을 치료하라." 고 말한다.
우리의 아픔을 뼈 속부터 같이 슬퍼해줄 진정한 의료인을갈구하는 것은 과연 허망한 꿈일까?
* 출처: 시- 카페 '한시 속으로'/ 프로필-검색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