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상상력이라는 프레임으로 보면, 정조시대는 조선의 르네상스가 아니라 '중세의 가을'이었다. 정조는 계몽군주가 결코 아니며, 닭 모가지를 비틀어도 밝아오고야 말 근대의 새벽을 막으려 했던 보수반동군주였다."
책에 실린 프랑스의 태양왕 루이 14세와 조선의 만천명월주인옹(萬川明月主人翁) 정조를 비교한 글에서 김기봉(사학) 경기대 교수가 내린 정조에 대한 평가다. 그는 이 글에서 17세기 프랑스의 절대군주 루이 14세처럼 18세기 조선의 국왕 정조도 절대왕권의 기획을 통해 근대국가를 지향했다는 일부 한국학 연구자들의 주장을 비판한다. 그나마 태양왕은 절대주의로 그 자신도 일부를 이루는 구체제(봉건제)의 지양에 기여했지만, 정조는 조선의 새 지식인을 문체반정이라는 문화독재로 억압해 근대를 향한 조선의 내재적 발전의 기회를 상실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만천명월주인옹'은 정조의 호다.
책은 한국사와 동·서양사 연구자들을 모두 아우르는 역사학회가 지난 2011년 12월 조직한 학술대회 '역사로 본 18세기'에서 발표됐던 논문들을 엮은 것이다. 비교사의 방법을 동원해 18세기 조선의 역사를 서구 및 동아시아 역사와 교차검토한 기획의 결실이다. 18세기 조선의 마지막을 장식한 탕평군주 정조가 책의 제목에 부각된 데서 알 수 있듯, 정조에 대한 다채로운 해석이 돋보인다. 특히 할아버지 영조와 함께 그동안 조선 후기 르네상스를 이끈 개혁군주로 불렸던 국내 일각의 평가와는 비교되는 내용이 많다.
김 교수뿐만 아니라, 오수창(국사학) 서울대 교수도 영·정조 등 18세기 조선 군주들의 정치행태에서 동시대 유럽에서와 같은 근대로의 이정표를 상정하는 한국사학계 일각의 시도에 비판적이다. 그는 책에 실린 '18세기 조선 정치사상과 그 전후 맥락'이란 글에서 탕평군주의 이념과 정책이 거둔 성과가 작지 않지만, 본질적으로 해체단계에 접어든 구체제의 수습책에 불과했음을 역설한다. 기본적으로 영·정조대의 탕평정치와 그것을 떠받치던 신군주론이 주자학의 세계관을 배경으로 구성된 왕 개인의 제왕학 혹은 정치기술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 교수는 조선의 근대적 전망을 1812년 홍경래난과 1862년 농민항쟁 등 19세기 직접 국가와 대결하기에 이른 민의 정치의식과 운동에서 찾고 있다.
물론 책에는 '조선의 18세기, 국정 운영 틀의 혁신'을 쓴 박광용(국사학) 가톨릭대 교수처럼 백성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란 측면에서 영·정조대를 주목하거나 18세기 중국을 동시대 서유럽 및 조선과 견준 한승현(사학) 건국대 교수처럼 강력한 군주권을 구축하려 한 점에서 18세기 중국과 조선이 흡사했다고 평가한 글들도 실려 있다.
책의 주제인 18세기는 이례적으로 동서양의 국가별 학회는 물론 국제학회(세계18세기학회)가 조직돼 있을 정도로 특별한 시대다. 1996년 국내에서도 '한국18세기학회'가 출범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자부의 세기였던 18세기 조선에 대한 새로운 비교사적 이해의 틀을 제시하고 있는 게 이 책의 특징이다.
문화일보-최영창 기자 ycchoi@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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