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 맞은 단풍이 꽃보다 고운 시월, 만산홍엽이 부르는 눈빛을 외면할 수 없었던 까닭일까. 응모작들이 상대적으로 많지 않았다. 공교롭게도 당선작들 모두 목소리가 낮고 우울한 것이 특징이다.
오서윤의 ‘빌딩의 그림자는 밤에 자란다’를 장원으로 올린다. 낮과 밤의 성격적 교차가 심한 빌딩과 그 거대문명 에 짓눌린 화자의 명암이 대비되는 정경을 그려낸 작품이다. 도심을 잠식한 빌딩 그림자를 공룡에 비유한 것도 인상적이지만, ‘치켜 뜬 층층의 불빛 송곳니처럼 번득인다’, ‘창문을 덥석 문다’ 같은 표현에서는 역동적이고 감각적인 힘이 느껴진다. 세계에서 자아로 이동하는 시상전개방식이나 시선의 유기적인 흐름도 좋고, ‘그림자’로 은유된 억압기제의 이미지를 방어하려는 자의식의 풍경도 적절한 긴장을 유도한다. 서술형의 제목도 선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차상으로 ‘어떤 휴식’을 뽑는다. 적재를 적소에 배치하는 수법이 익숙하고 자연스럽다. 습작으로 단련된 솜씨가 느껴지는 작품이다. ‘하루를 길게 펴고 세어 보는 동전 몇 닢’을 통해선 표현의 묘를 살리며 주제를 유도하는 기량도 읽혀진다.
차하로 선한 ‘가장(家長)’은 진술이 특별하진 않지만 율격이 안정되고 내용이 무리 없이 전개된 작품이다. 자칫 평이하고 단조로운 느낌을 불러들일 수 있으므로 하지만 개성적인 발상과 표현의 새로움에 대해 좀 더 고민하고 천착해 볼 것을 권한다.
시조는 최소한의 말로써 최대한의 경제적 효과를 도출해야 하는 3장 12음보의 언어미학을 제대로 살려내지 않으면 안 된다. 한 단어를 얻기 위한 절차탁마가 중요하다 .
* 출처: 중앙일보-심사위원 권갑하·박명숙(대표집필 박명숙)
중앙시조백일장 10월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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