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斷想, 閑談]/<단상, 한담>

그녀 어디서 잘 살고 있을까?

Bawoo 2013. 10. 11. 05:59

* 네번째 이야기-허무한 끝맺음

 

1.

1968년 19살이 되던 해 겨울,

대학입시에 실패하고 돌아온 결과물은

폐결핵 2기라는  2년반의 기나긴 투병  생활을 요하는

청천벽력같은 의사의 진단이었다.

 

2.

자그만 의학 상식만 있어도

6개월 정도 약을 먹으면 잡을 수 있는 병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방치한 무지 탓에

입시장에 가는 버스에서 졸도할 정도로

큰 병을 만들어 버린 것이다.

 

3.

의사는

산에 있다는 요양원행을 권유했지만

해외에 취업하고 계신 부친의 송금으로

여유롭자 않게 생활하는 형편에

요양원 생활을 하는 것은 사치로 생각되었고

대안으로

구파발에 있는 모 사설 절에 가서

지내게 되었다.

재수를 하는 중학교 3학년때 짝꿍과 함께...

 

4.

이 절은 ,

젊은 시절 용하다고 이름을 날린

내가 투병 생활을 하러 갈 당시에는

연세가 이미 70은 넘으신 은퇴한 무속인이

지은 절이라고 했는데

그 분은 당시 40대는 되어 보임직한 두명의 아들 가족들과 함께

은퇴후 여생을 이 곳에서 보내고 계셨다

 

5.

동창과 내가 이곳에 하숙을 하기로 하고 배정받은 방은

두 아들중  큰 아들 내외분이 관리하고 있는  별채에 있었는데

이 별채에 있는  우리 방에서는 절안에 자리잡고 있는 각 건물들이

한눈에 다 들어 왔다.

 

6.

우리가 기거하는 별채 옆 작은 연못을 사이에 두고는

대웅전인 법당 건물이 자리잡고 있었고

별채 앞 시멘트로 포장된 마당 건너편에는

이 절에서 제일 크고 높은 3층 짜리 건물이 자리하고 있었는데

이 건물 3층엔 절의 실제 주인인  70이 넘은 노부부가 살고 있었다.

 

7.

1층엔 우리에게 하숙을 치기로 한 40대는 넘어 보이는 큰 아들 내외분이 살고 있었고

2층은 평소엔 비어 있었는데 한번은 이곳에서 요란한 징소리가 나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가운데 이 절의 최고 어른인 노부부 두분이 할머니는 춤을 추고 할아버지는 큰 북을 치고 있는 것을 보아 아마 이렇게 큰 굿 의뢰가 들어올 때를 대비하여 만들어 논 방 같았다.

 

8.

친구와 내가 머물고 있는 별채에서 법당과 본채 사이로 눈을 들어 바라보면

그곳에도 3층 짜리 한식 건물이 하나 있었는데

이 건뮬에는 노부부의 둘째 아들되는 분이 가족들과 살고 있었다. 

 

9.

나에게 하숙을 치는 큰 아드님은 특별히 하는 일 없이

절 관리를 하는 것으로 생활을 하는 것  같았고

둘째 아드님은 모 방송국에 별정직으로 다닌다고 들었었다.

 

 

10.

둘째 아드님네는 자녀가 엄청 많았는데

위로 딸이 넷에 밑으로 늦동이 쌍동이 아들해서 모두 여섯 남매였다.

 

제일 위인 언니는 나보다 두세살 정도  위였는데

모 방송국에 성우로 근무한다고 들었는데 정말 미인이었다.

주로 단역만을 하다 빛을 못보고

당시 연애하던 사람과 결혼하면서 은퇴를 했는데

한때는 모 주간지에 추첨 모델로 얼굴이 실리기도 했었다.

 

11.

이 언니는 나에게 많은 관심을 보였는데 일테면 방송국에서 우유를 싼 값에 구입해서 내가 먹도록 해준 그런 것이었는데 이것이 나에 대한 이성적 관심인 것을 당시에는 잘 몰랐었다.

나보다 연상인데다가  빼어난 미모에 누구나 선망하는 직장에 성우로 근무하고 있는 그녀가 나에게 호감을 나타내  보인건 한창 좋은 시절에 병마와 싸우는 내가 불쌍해서 보인 관심 정도로 생각했었기 때문이다.설사 그녀의 관심이 이성적인 것이었을지라도  소심하기 그지없는 내 성격으론 상대가 '나 너 좋아해'라고 하기 전엔  절대 인연을 만들 수 없었을테니 뭐 그게 그거였겠지만....

 

12.

둘째는  나하고 동갑내기 였는데

무슨 이유인지 다니던 고등학교를 중간에 그만두고

집에서 살림만 하고 있었다.

이유를 물어봤으나 대답을 안해서 그냥 모르고 넘어갔으나

40이 겨우 넘은 나이에 무슨 병인가로 세상을 뜬걸 보면

그때도 이미 지병이 있어 학교를 중도에 그만 둔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13.

셋째는 공부에는 관심이 없었는지 야간여고를 다니고 있었는데 

그때 1학년이었던 것 같다,

한창 필 나이인데다가 꽤 미인형 얼굴을 하고 있었는데 

재수를  하던 동창 이야기로는 엄청 끼가 많아

자기를 유혹하려고 해서 애를 먹었다는 이야기를

나중에 들려 주었다.

대학 가겠다고 머리 싸매고 공부하는 놈을 유혹하려 했다니

참 대단하다 싶었는데

이 셋째는 나중에 정상적인 결혼 생활이 아닌 유부남과의 사이에

아들 하나를 두고 살고 있는걸 지금부터 이야기하려는 넷째로 부터

들은 적이 있고 실제로 만나 본  적도 있다.

 

13.

넷째는 내가 이 글을 쓰게 된  이유인데

그 당시는 국민학교 5학년 꼬마였다.

 

40여년이 지난 지금도

누가 들으면 '미친놈'하며 웃고 말 이야기지만

난 이 꼬마를 처음 본 순간

'아!이녀석 크면 꼭 내 아내로 삼아야겠다"라고 마음 먹었었다.

이런 마음은 꼬마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인이 될 때 까지

변하지를 않았었는데 그 마음의 강도는 시간의 흐름과 반비례하며

조금씩 약해 졌던것 같다.

원인은 꼬마소녀,나 둘 다에게 있지만

아무래도 내쪽이 더 많은 듯 싶기는 하다.

 

꼬마 소녀가 소녀가 되고 아가씨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처음 봤을 때의 모습과 다르게 변해 가는 모습에 실망하게 된 것이

가장 큰 이유이긴 하지만..

 

14.

내가 국민학교 5학년 짜리 꼬마 소녀에게 반하게 된 이유는

아마도 자아가 형성되기 전의 내 성격이 크게 작용한 것이 아닌가 싶다.

남 앞에 자신있게 말 한마디 못하는 지극히 내성적이고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던 내 성격이 너무나 싫었던 나에게 있어

그 꼬마 소녀는 경이의 대상이었다.

 

항상 자신감에 넘쳐 있는 밝은  표정으로

이미 청년기인 나와 재수하는 친구에게

'오빠 오빠'하며 잘도 따랐었다.

머리도 엄청 좋아 반에서 항상 일등이라고 했으니까

고등학교까지 일등이라곤 못해본 나에게 있어선

그것도 참 대단해 보였다.

한마디로 나하곤 격이 안맞다 싶은 꼬마 소녀를

나혼자만이 은밀하게 마음에 품고

소녀가 성장하기를 기다렸는데

일단 최소한의 격은 맞춰 놓았었다.

머리가 암만 좋아도 피나는 노력없인

결코 들어갈 수 없는 명문 대학에 들어가 놨었으니까...

 

 

15.

꼬마 소녀는

나의 이런 마음을 알리가 없었을께다.

아니 소녀의 모친을 비롯한 어느 누구도..

내가 그 절에 있던 당시는 

고작 국민학교  5학년에 지나지 않는 어린 꼬맹이 소녀에게

1년여 정도 병 치료를 하러  머물렀었던 장성한 청년이

이성으로 보는 마음을 품었을 줄이야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16.

꼬마 소녀가 이런 나의 마음을 어렴풋이나마 알게 된 것은

아마도 내가 군에서 편지를 보내면서 부터가 아닐까 싶다.

군 복무 시절,

이제는 중학생이 되어 있는 소녀에게 편지를 했고

소녀는 사진도 보내주고 했으나 

내 편지 내용이 조금은 부담스러웠는지 

몇번 답장을 보내곤 이내 소식이 끊겼었다.

 

17.

소녀가 내 편지에 답장을 안하게 된 이유는 

소녀 어머니의 의중도 많이 반영되었던게 아닌가 싶다.

소녀의 아버지는 나와 같은 병을 앓고 있었고

그 때문에 다니던 직장도 그만두게 되고

결국에는 스스로 세상을 등지는 극단적 선택을

소녀가 중학생이던 시절에 하고 말았다는 소식을

들어서 알고 있었는데 이는 소녀는 물론 가족 전체에게

어마어마한 삶의 고통을 안겨 주었기 때문이다.

 

18.

가족의 수입원인 가장의 부재는

당장 소녀의 삶을 크게 변화시켜 놓았다.

소녀가 다니던 중학교가 마침 집 근처이기도 해서

휴가때 교문에서 기다려 만난 소녀는

나의 출현이 당황스러웠기도 했겠지만

나의 눈에 들어온 소녀의 모습은

내가 처음 봤을 때의 생기발랄함은

아예 사라지고 없었다.

자신을 이성으로 보려는 나에 대한 부담감과 관계없이

소녀의 삶에 드리워진 어두운 그림자만이 가득한 모습

그리고 사춘기에 접어 들면서 조금씩 변해 가는 외모도 함께...

 

19.

소녀는 자기가 살고 있는 절에와서 

그리 오랜 기간도  아닌  불과 1년 남짓 투병 생활을 한 기억으로만 남아있을

한참 오빠뻘 되는 그저 얌전하기만 했던 청년이

씩씩한 모습의 군인 오빠로 변신해서

교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모습에 

한편 반갑기도 했겠지만 많이 당황스러웠을 것 같았다.

편지의 내용으로 봐선 아직 어린 자기를 이성으로 대하려는

느낌도 얼핏 들었을테니...

 

20.

절에서 투병생활 하던 시절

꼬마 소녀는 나보다는 같이  지내며 재수하던

내 동창을 훨씬 더 따랐다.

나하고는 다르게 활달한 성격의 내 동창은

내가 보기에도 누구나 호감을 가질 수 있게하는

묘한 매력이 있는 친구였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싶었지만

나는 그것이 못내 마음이 안좋았었다.

그렇지만  남 앞에 의사 표현 하나 제대로 못하는

내 성격이 나도 싫었던 시절이었으니

소녀가 나보다 동창을 더 따르는 것이 당연한 일이지 싶었고

거기다 나는 전염성까지 있는

가슴앓이 병을 앓고 있는 상태였으니

애초부터 소녀가 나를 더 좋아해주기를 바라는 자체가 욕심인  일이었다.

 

21.

이  꼬마 소녀가

내 동창을 얼마나 따랐는가는

소녀 할아버지 댁 거실에 놓여 있는 TV를 보는  밤 시간이 되면

꼭 동창의 무릎에 앉아서 TV를 본 것으로도 알 수 있다.

내 무릎에 앉는 경우는

동창이 본가에 다니러 가고 없을 경우에 어쩌다 였는데

이때도 내가 말한마디 없이  안고만 있는게 부담스러웠는지

슬그머니  무릎에서 빠져 나와 다른 곳으로 가벼렸고

나는 그게 얼나나 서운했었던지....

 

22.

소녀와의 인연은

내가 퇴직을 하기 전인

40대 후반인 15년전 까지 끊임없이 이어졌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잠시  다녔던 직장에서 만난  남자와 결혼을 하고 연락이 끊겨 버린 

30대 10여년의 기간을 제외하면...

 

23.

나는 소녀가 그리 빨리 결혼을 하리라곤 상상도 못했다.

소녀에게 의무가 있는 일은  아니었지만 소녀 밑으론 한창 학교를 다녀야 할 쌍동이 남동생이 있었기 때문에 난 당연히 동생들을 소녀가 공부를 시켜주는 것으로 자신의 삶을 희생할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소녀는 이러한 의무아닌 의무를 회피하고 자신만의 삶의 길을 선택해버린 것이었다.

소녀의 이런 여건이 내가 소녀에게 현실적 접근을 하는데 제약이 됐던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당시 나도 막내 여동생 학비를 책임지는 가장 역할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소녀와의 인연이 현실화될 경우 소녀의 쌍동이 동생들을 부양하기에는 무리였고 이것이 부담으로 작용했었다.

 

24.

소녀는 어린 나이에 아버지가 스스로 세상을 등지고 난 뒤 자기 몫으로  감당하는 삶이 너무나 버거웠었나보다.꿈은 펴보지도 못하고 여학교도 낮에 아르바이트를 하며 번 돈으로 어렵게 야간을 겨우 마칠 수 밖에 없었던 자신의 싦의 너무 싫었던 것인지도 모른다.그래서 두 동생들의 뒷바라지를 해야 하는 고달픈 삶 보다는 자신만이라도 삶의 고달픔에서 벗어나고 싶었는지도....

그렇다고 내게 어떤  희망이 보였던 것도 아니었는데다 설사 희망이 보였다해도 나와의 인연은 모친의 반대로  쉽지도  않았을테니....

 

25.

소녀의 어머니는 한을 가지고 계셨다.

자신의 남편이 지병으로 스스로 삶을 마감하고 그로 인해 남은 온 가족이 생활고에 시달릴 수 밖에 없는 힘든 생활을 하게된 데 대해서....

당연히 남편과 같은 병력을 갖고 있는 나를 아무리  투병 생활을 잘 마무리하고 명문대 입학 그리고 군대도 무사히 갔다온 것으로 좋게 봐주려해도 나를 보면 스스로 삶을 마감한 남편의 모습이 안떠오를 수가 없었을테니까...

 

26.

소녀를 다시 만난 것은 40 초반 무렵 한창 근무를 하던 중이었다.

창구 여직원이 창구에서 누가 찿는다고 알려줘 보니 소녀가 이제는 소녀가 아닌 모습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조금은 민망한 얼굴로 그러면서도 반가운 모습을 하고서...

 

27.

찻집에서 마주한 소녀는 얼굴 표정이 여전히 밝지 않았고 그렇다고 그 연유를 알려주지도 않았다.

워낙 속내를 잘 안들어 내는 성격인지 나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나는 그것이 나에 대한 불신으로 생각되어 나도 소녀에 대한 마음을 전부 열어 놀 수는 없었다.

 

28.

사람들은 잘 모르는 것인지 모르나 '상대가 자신에게 마음을 안 열어 보이면 그 상대도 자신에게 마음을 안 열게 되는 것이라는 건 아주 평범한 진리다.'

이제는 이성이라기 보다는 오빠,동생같은 마음으로 소녀를 보는 것인데 소녀는 그런 면에서 나에게 많은 실망을 안겨 줬다.원래 성격이 그런 것인지 자기를 이성으로 봤던 나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그런 것인지는 몰라도 소녀는 전혀 자기 이야기를 하려고 하지 않았다.

모친과 함께 살고 있는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서 '왜 신랑이 안보이냐'는 나의 물음에 명확한 답변도 안해주었고 자신의 지금 형편이 어떤 것인지도 알려 주질 않았다.

분명 생활에 여유는 없어 보이는데 속내를  안보여주니 내가 불신의 대상으로 간주되는 것 같아 그것도 싫었다.

 

29.

소녀와의 마지막 만남은 퇴직하기 몇년전이니 벌써 20여년이 다  되어 가는 것같다.

나보다 여덟살 아래였으니 그 당시 아직 40이 안된 나이인 것 같은데

한창 근무를 하고 있던 어느날 전화가 걸려왔다.

'남대문 시장에서 신발 가게를 하고 있다고...'

 

30.

시간을 내서 가게에 가 본 나는 화부터 먼저 났다.

시장 지하에서 혼자서 조그만 가게를 차려놓고 어두운 표정으로 있는 모습이 너무싫었다.아니 짜증이 났다.차라리 속 시원하게 자신의 형편이 지금 어떤 상황인지를 말이나 해줬다면 돕고 못돕고를 떠나서 소녀의 실정을 알게되어 속이나 편했을텐데 이도 저도 아니고 봐서 편치 않은 모습이나 보라고 연락을 한 것인지...

이 글을 쓰는 지금 생각해도 난 소녀의 마음을 모르겠다.

최소한 자신의 속내를 들어내는 마음을 내게 보여줬다면 덜 속상하기나 했을텐데...

 

 

31. 

이후의 그녀 소식은 전혀 모른다

그 뒤로 그녀로부터 연락이 전혀 없었고 나도 퇴직하기전 몇년을 일에 치여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다 보니 소녀에 대한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지나가 버렸다. 퇴직후에는 세상과 인연을 거의 끊다싶이한 삶을 살다보니  또 그녀를 잊고 살았던 것 같다.

이젠 그녀도 50 중반을 넘어선 나이가 되어 있을텐데  어디서 어떻게 지내고 있을지 궁금하기 그지없다.

성장기시절 가장인 부친의 부재로 인해 짊어지게 된  삶의 무게가 너무 힘겨웠던 그녀가 마지막으로  보았던 모습 이후의 삶을 잘 살아냈는지는 그래서 더욱 궁금하다.

 

32.

이제 엊그제 같은 그녀의 마지막 모습을 본 때가 20여년이 지나버린 지금.

국민학교 5학년 짜리 소녀에게 마음을 빼았겨 그녀가 갑자기 결혼을 하고 소식이 끊겨버린 내 나이 30초반  시절까지의 10여년 동안 끊이지 않고 이어졌던 그녀와의 인연을 생각해보면 그 인연이 현실적인 인연으로 안맺어진 이유는 자명하다.

 

'서로가 상대방에 대한 아니 나의 그녀에 대한 마음이 처음 그녀를 보았을 당시의 마음과 같은 절실함으로 계속 이어지지 않았다는 것.'

 

이의 가장 큰 이유는 아무래도 그녀가 성장하면서 내가 생각하는 마음을 갖춘 심성이 착한 인물로 성장하는 느낌을 못받은데다 대학을 들어가면서 보게 된 많은 여학생들 때문에 높아진 눈높이가 부수적으로도 작용했을 것이다.

 

소녀의 입장에서 보면 전혀 이성으로 느껴질 수 없는 사람이 자신을 이성으로 보고 접근한데 대하여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안되어 있는 상태인데다  자신에  대한 나의 마음이 확실치도 않은 것으로 보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자신을 절실하게 이성으로 생각하는 상대가 나타나면서 현실적인 선택을 한 것일테고......

 

33.

지금 어디서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전혀 알 수 없는 그녀가  국민학교  5학년 꼬맹이 소녀였을 때 처음 봤던 모습 그리고 아직도 옛날 사진첩 속에 남아 있을지 모르는 군에서 받아 본 그녀의 중학생 때 사진 속의 모습이 이 글을 쓰면서 아련히 떠오른다.

생각만 해도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삶의 무게를 짊어지지 않았을 때의 밝고 명랑하던  시절의 소녀 모습이....

그녀가 무탈하게 잘 지내고 있기만을 바래본다.

 

 

                   2013.10. 11 처음 글 쓰기 시작한 때 부터 시작해서 근 한달만에 마무리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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