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 가
-윤택수(1961~2002)
나중에 나중에
고요한 시절이 오면
잘생긴 아들을 낳으리라
아들이 자라
착실한 소년이 되면
함께 목욕탕에 가리라
싫다는 아들에게
등을 밀어달라고 하리라
할 수 없어서 나의 등은 밀었어도
아들은 내게 제 등을 맡기지 않으리니
나중에 나중에
내가 늙고 아들이 장성하면
다시 목욕탕에 가리라
싫다는 나에게
아들은 등을 돌리라고 하리라
할 수 없어서 나의 등은 맡겼어도
아들은 내게 제 등을 밀게 하지 않으리니
나중에 나중에
고요한 시절이 오면
혈연이나 학연으로 이어진 이들을 뺀다면 시인 윤택수를 아는 사람은 드물 테다. 그는 충남대학교를 나와 중학교 국어교사, 잡지사 기자, 용접공, 원양어선 선원, 학원 강사 따위 직업을 전전하며 시 110편을 쓰고 41세에 요절한다. 죽은 뒤 벗들이 『새를 쏘러 숲에 들다』라는 유고시집을 펴냈는데, 그 시집을 읽다가 사유의 약동과 상상력의 비범함에 놀랐다. 이 무명시인이 꿈꾼 것은 고요한 시절이다. 그런 시절 아들을 낳고 늠름하게 잘 키워 목욕탕에 가서 등을 맡기는 게 꿈의 전부다. 이 얼마나 작고 소박한 꿈인가! 하지만 소문에 의하면, 아직 그런 고요한 시절은 오지 않았다 한다. <장석주·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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