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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정치>"중국, 미국을 따라잡지 못 한다"

Bawoo 2015. 5. 26. 22:03

기사 대표 이미지:[취재파일] "중국, 미국을 따라잡지 못 한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최근 실질 구매력을 기준으로 한 중국의 올해 국내총생산(GDP)이 17조6천억 달러로 미국을 제치고 세계 1위로 올라섰다고 밝혔습니다. 무려 125년 만에 중국이 다시 세계 최대 경제 대국이 됐다는 뜻입니다. 명목 환율을 기준으로 한 경제규모는 10조3천5백억 달러로 미국보다 훨씬 작지만, 물가와 환율을 고려한 중국의 체감 구매력은 미국보다 커졌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세계 경제를 주도했던 국가가 미국이었다면 이젠 점차 중국으로 옮겨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인 셈입니다. 이와 함께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은 독자적인 세계 투자은행과 무역지대를 창설하는 등 미국의 경제 패권에 맞서는 행보를 보이고 있습니다

'중국이 언제 미국을 따라잡을 것인가?'라는 물음은 오래전부터 국제 사회에서 최대 화두가 됐습니다. 세계적인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은 엇갈렸습니다. 어떤 학자는 이미 앞섰다고 했고, 또다른 학자는 조만간 추월한 것이라 주장했습니다. 반면 아직 멀었다는 사람과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전문가도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어제(12월10일) 서울에서 '미국의 세기는 끝났는가?'(Is the American Century Over?)라는 주제의 특별 강연이 있었습니다. 저는 한국고등교육재단의 초청을 받아 참석했습니다. 강연장 규모에 비해 엄청나게 많은 각계각층의 사람이 운집했습니다. 좌석이 모자라 앉지 못한 사람은 대형 스크린을 통해 강연을 보고 들었습니다. 이렇게 뜨거운 관심이 쏠린 것은 주제도 주제였지만 강연자가 바로 국제관계 분야의 최고 석학으로 불리는 조셉 나이(조지프 나이라고도 부름) 미국 하버드대학 석좌교수였기 때문입니다. 
  
조셉 나이는 이 강연 주제와 똑같은 제목의 저서를 지난 3월 출간한 바 있습니다. 1시간 가량의 강연은 자신이 지은 책 내용의 핵심을 요약 정리해 발표하는 형식이었습니다. 조셉 나이의 결론은 "미국의 세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이었습니다. "미국이 쇠퇴하고 있다는 주장은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며 중국의 부상은 미국에 게 큰 위협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먼저 '쇠퇴(decline)'라는 단어의 개념 정리부터 시작했습니다. 쇠퇴에는 '절대적 쇠퇴'와 '상대적 쇠퇴'가 있는데 '절대적 쇠퇴'는 제국주의에 의해 식민지가 되는 등의 내재적인 무능에 의해 이뤄지는 것이며, '상대적 쇠퇴'는 다른 나라와의 비교를 통해 나타난다고 강조했습니다. 미국이 쇠퇴했다기보다는 중국 등 다른 나라의 성장으로 상대적으로 그렇게 보인된다는 것입니다. 나이 교수는 "미국의 이민자 수용 정책, 에너지 자원 확보, 첨단 테크놀로지, 우수 대학과 혁신적의 기업 문화를 고려하면 앞으로도 계속 상당한 힘을 유지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미국이 고대 로마와 같은 절대적 쇠퇴를 할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지만 이는 맞지 않는 비유"라고 덧붙였습니다.

상대적 쇠퇴에 대해 나이 교수는 더 상세한 설명을 했습니다. "20세기가 시작된 1900년에 미국이 세계에서 차지하는 생산 점유율이 25%였는데 2차 대전 직후인 1945년에 거의 50%가 됐다가 20세기가 끝난 2000년에 다시 25%로 돌아왔다. IMF에 따르면 미국의 전체 생산 점유율이 향후 18%까지 떨어질 것이다. 미국은 '마샬 플랜'을 통해 유럽의 부흥을 도왔고 2차 대전 이후에는 일본을 지원했고 1990년에는 중국의 WTO(세계무역기구) 가입을 유도하는 등 다른 나라의 경제 성장에 큰 도움을 줬다"고 말했습니다. 이들의 경제가 함께 성장해야 미국의 번영으로 이어진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럼 중국은 미국을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인가? 나이의 결론은 이렇습니다. 경제력, 군사력, 소프트 파워 3가지 측면에서 한마디로 어렵다는 것입니다. 우선 "중국의 눈부신 경제 발전은 높게 평가하지만 다만 규모만으로 경제력이 누가 낫다고 판단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Sophistication of Economy'란 면에서 중국은 미국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우리말로 하면 '경제 세련도', '경제 고급화 정도'로 할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해 중국 경제가 양적으로 크게 팽창했지만 내부를 정밀하게 들여다보면 질적으로 많이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는 1인당 국민소득을 예로 들며 "중국이 빠르게 성장한다 하더라도 현재 1인당 국민소득은 미국이 중국의 4배 이상"이라고 역설했습니다. 또 "중국이 계속 7.5%이상의 성장률을 유지할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며 "고성장을 기록하는 국가들을 살펴보면 결국 정상적인 성장 수준(3-4%)으로 회귀한다는 경제학자들의 분석을 인용했습니다. 또 4조 달러나 되는 중국의 외환보유고에 대해서도 "중국이 달러를 매도하면 미국이 무릎 꿇게 된다고 보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렇게 되면 중국도 주저앉게 된다"면서 "중국 정부와 관료의 통제를 받는 위안화가 향후 기축통화로 자리잡기를 원하는 나라는 별로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조셉 나이는 군사력에서도 중국은 미국의 적수가 될 수 없다는 견해를 표명했습니다. "중국이 군비 예산을 지난 10년여 동안 대폭 늘려왔지만 여전히 미국의 국방 예산이 4배 이상"이라면서 "중국의 군사력은 중국 주변인 동아시아에서의 증강일 뿐 결코 미국에 대한 도전이 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소프트 파워'와 관련해서는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의 발언을 인용했습니다. 리콴유는 "중국은 13억명의 인구를 활용할 수 있지만 미국은 이민 정책을 통해 이보다 많은 70억 인구를 활용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중국의 치명적 약점인 중국 공산당 1당 독재, 시민 사회(Civil Society) 미성숙, 중화주의로 대표되는 편협한 내셔널리즘, 인근 국가와의 마찰을 지적하면서 소프트 파워 면에서 미국이 월등한 우위를 갖고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단적으로 말해 일본과 호주 같은 나라가 중국의 영향 아래 놓이기를 원하겠느냐는 것입니다. 

조셉 나이는 '중국 위협론'을 과거 사례를 들며 반박했습니다. "1960년대 소련이 인공위성 등 우주 개발에서 미국보다 앞서자 미국에는 '소련 위협론'이 등장했다. 1980년대 일본이 탁월한 제조 기술을 앞세워 기적같은 경제 성장을 하자 미국 사람들은 너도나도  'Janpan is Number 1'을 외쳤다. 당시 소련과 일본은 키가 10피트(305cm)나 되는 사람 같았다. 지금 그들이 미국을 추월했는가?  현재 중국도 마찬가지이다. 사실을 오도(misleading)하거나 일종의 착시라 볼수 있다." 나이 교수는 "100년전 영국의 유일한 라이벌은 독일이었다. 양국의 긴장 관계는 1차 세계대전의 한 요인이 됐다. 미국은 중국과 서로 도움을 주는 긍정적 관계가 돼야지 '제로섬' 게임을 해서는 안되다"고 강조했습니다. 최종 결론은 중국이 가까이 왔지만(come close) 미국의 세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조셉 나이가 미국의 주류 학자인 점을 감안하면 그의 논리를 100% 그대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지만 우리나라 정책 당국자에게는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고 생각됩니다. 미국과 중국, 두 강대국의 지형 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처하려면 무엇보다 국제 정치와 경제의 흐름에 대한 정확한 정보와 적절한 대책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조셉 나이는 올해 77살의 노령임에도 명료한 발음과 열정적인 자세로 어렵고 복잡한 사안을 명쾌하게 설명해 1천여 참석자들의 뜨거운 박수 갈채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아쉬운점도 다소 있었습니다. 강연자의 무게와 강연 주제의 중요성에 비춰볼 때 홍보가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이 정도 강연이라면 일반 언론사 기자들이 충분히 취재할만한 내용인데도 취재석조차 마련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상당수의 동시통역기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아 꽤 많은 사람들이 영어로 진행되는 강연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불편을 겪었습니다.    

취파_640* 조셉 나이(Joseph S. Nye, Jr.) 교수 프로필

1937년에 태어난 하버드 대학교 케네디 정책대학원의 석좌교수이자 전임 학장이다. 1977년부터 1979년까지 보안, 과학, 기술 담당 미국 국무부 부차관보로 활동했고, 핵무기 비확산 국가안전보장회의 의장을 역임했다. 1993년부터 1994년까지 국가정보위원회 의장직을 수행했고, 1994년과 1995년에 미국 국방부 국제안보 담당 차관보로 재직했다. 그리고 이 세 직책에서 모두 공로상을 수상했다. 또한 1989년부터 1993년까지 유엔사무국 군축위원회의 미국 대표로도 활동했다.

프린스턴 대학교의 우드로윌슨 상, 미국 정치과학협회의 찰스 메리엄 상, 미국 국제정치학회의 공로상, 프랑스의 교육공로훈장을 수상했으며 제네바 대학교와 오타와 대학교, 런던 대학교,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초빙교수로 재직했고, 유럽과 동아프리카·중앙아메리카에서 연구 활동을 하기도 했다. 저서로는 '소프트 파워' '제국의 패러독스'  등 13권의 학술 도서가 있으며 2008년 2,700명의 국제관계학 학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미국 외교 정책에 가장 영향력 있는 학자'로 선정됐다.

 

* SBS - 권종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