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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도쿄의 거리에서 /가토 나오키 지음

Bawoo 2015. 9. 23. 23:44

 

<책을 읽은 소감>

1923년 9월 동경대진 당시 학살당한 우리나라 사람들(조선인)에 관한 이야기. 읽는 내내 가슴이 아팠다.

6천에서 1만명이 학살을 당했다는데 -실제로는 정확히 알 수 없단다- 실명으로 나오는 이는 엿장수를 했다는 구학영씨  정도이다. 동요 반달을 작곡한 윤극영 선생 이야기도 나오는데 살아 남을 수 있었던 이유가 같은 조선인이라도 지체가 좀 있는 집안의 자녀들인 유학생의 경우는 피해가 상대적으로 적었다는 점을 알 수 있는데 이는 폭도 노릇을 한 일본인들도  후환이 두려워 함부로 못 건드렸다는 이야기다. 오나가나 집안이 좋아야 된다는 이야기.

 

학살의 주 이유는 지진으로 인한 피해에 대한 보상심리(?)를 우리 조선인을 학살하는데서 찾았다는 것인데

피해자 대부분이 생계를 위해 일본으로 건너간 하층민들이란  점에서 일본인들이  이들에 대하여 평소에 탐탁치 않게 생각했다는 점을 엿 볼수 있었다. 현재 우리나라도 외국인 근로자가 많이 와 있는데 이들에 대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시선이 그리 곱지만은 않다는 점을 비교하여 생각할 때 당시의 일본인들 마음을 읽어 볼 수 있지 않을까? 더구나 당시 조선인은 식민지 백성이었고 1919년에 일어난 3.1독립운동 때문에  일본인들에게 조선인은 위험하다는 생각이 잠재되어 있던 것이 대지진으로 인해 가족, 재산을 하루 아침에 날려버린 화풀이 대상으로 폭발되어 나온 것은 아니었을까 싶다.

 

아프리카 르완다에서 있었던 후투족에 의한 투치족 대학살 내막을 보면 어제까지 정다운 이웃이던 사람들이 하루 아침에 살인귀로 돌변하여 학살에 가담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평소 선량한 시민으로 생활하던 사람들도 법과 도덕이라는 규제 아래 잠재해 있을 수밖에 없었던 야만성 어떤 계기가  생기면 터져 나오는 것이 아닐까 싶다. 동경대학살의 경우 경기침체기에 접어들어 일자리가 줄어들기 시작하고 피착취 게층으로 분류되는 노동자 계급을 위한  사회주의 운동이 점진적으로 늘어나고 있었던 점 때문에 정부가 골머리를 앓고 있었던 시기여서 동경대지진을 조직적으로 이용한 점도 엿볼 수 있다. 이의 대표적인 예가 중국인 유학생인 왕희천(당시 27세)의 피살 사건이다(책144쪽~152쪽). 부유한 상인을 부모로 둔 왕희천은 열악한 중국인 노동자의 삶을 개선하기 위하 노력을 기울이는데 이를 밉게 본 일본 경찰이 대지진을 이용하여 일본군(살해자-가오치 야스오 중위)에게 살해하도록 사주했다는 것이다.

 

조선인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기는 하지만 중국인 그리고 같은 일본인도 학살을 당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볼 때 아프리카 르완다에서 있었던 인종학살이나 동경 대학살이나 인간의 잠재되어 있는 야만성의 폭발이라는 측면에서는 다 같은 것으로  보고 싶고 이러한 행위에는 이를 적극적으로 부추기고 주도적으로 나서는 인간들이 필수적으로 있게 마련이고  나머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부화뇌동하는 형식으로 이러한 폭력행위에 가담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놀라운 것은 우리나라가 일본과 동등한 국가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지금도 우리나라 사람들을 죽이자고 부추기는 일본인들이 있다는 것이어서 이는 어떤 계기가 생기면 또다시 학살의 비극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점을 암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반면에 이 책을 쓴 이나 학살당한 조선인 추모비를 건립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이는 착한 일본인도 많으나 막상 어떤 나쁜 일이 일어나면  이들의 힘은 상대적으로 약할 수밖에 없어서 이것이 해결할 수없는 숙제이기도 하다.

 

참 가슴 아픈 우리 선조들의 이야기. 나라를 이끌어가는 지도 계층에 있는 사람들이 나라를 잘 이끌었다면 이런 개죽음은 없었을텐데. 참고로 '대일본 제국 붕괴'라는 책(61쪽)을 보면 미국에게 항복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천황 참석 황족회의에  고종의 아들(이은)과 이은 형의 아들인 이건이 참석했다는 기록이 있다. '삼가 받들겠다'라고만 말하고. 나라 망해먹고 자신들은 귀족 대우를 받으면서 잘 먹고 잘 살았다는 이야기. 가난하게 태어난 백성들만 불쌍하다는 거다. 인간세상 절대 변할 수 없는 불변의 진리. 에고고!

 

 

<아래는 이  책을 낸 출판사(갈무리)의 책 소개 글읽게 된 동기가 된 동아일보사의 책 소개 글 >

우리는 지금도 도쿄에 살고 있다!

간토대지진 직후인 1923년 9월의 도쿄 거리. ‘평범한’ 일본인들이 수천 명의 조선인을 단지 조선인이란 이유로 살해하였다. 그로부터 90여 년이 흐른 지금, ‘재일 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 모임(재특회)’와 혐한시위대가 한국인들을 바퀴벌레로 비인간화하고 ‘한국인을 몰살하라’고 외치면서 한인거리골목을 돌며 위협을 가하고 있다.

이 책의 저자인 가토 나오키는 도쿄의 한인거리 신오쿠보에서 벌어진 인종주의자들의 시위에서 간토대지진 당시 외치던 증오 언설과 똑같은 표현을 듣고 충격을 받아 진실을 알리는 블로그를 개설하였다. 『구월, 도쿄의 거리에서』는 그 블로그에 기록된 작업들을 바탕으로 글을 추가해 만든 책으로, 근대 일본의 파시즘과 인종주의에 대한 철저한 고발이자 자기비판이다.

저자는 1923년 9월 도쿄와 그 주변 각지에서 일어난 조선인 학살의 ‘현장’을 마치 지금 살아있는 상황인 것처럼 생생하게 되살려낸다. 증언이나 역사 자료 속에 잠겨 있던 현장들을 최대한 불러내어 수천 명의 조선인 피해자가 아닌 개성과 이름을 가진 한 사람 한 사람으로 상기시키고 그려낸다. 그리고 이러한 인종차별주의의 득세를 극복할 방안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한다.

 

 

저자 : 가토 나오키
저자 가토 나오키 加藤直樹, 1967~는 1967년 도쿄 도 출생. 호세이(法政) 대학을 중퇴하고 출판사에서 근무하였다. 현재 프리랜서 작가이며 가시마 주이치(鹿島拾市)라는 필명으로 『사회신보』를 비롯하여 여러 매체에 글을 썼다. 쑨원과 연대하여 신해혁명에서 세계혁명을 꿈 꾼 ‘미야자키 도텐’, 1950년대 도쿄 빈민 생활협동조합 운동 [개미의 모임]에 대한 기록문학을 쓴 ‘마쓰이 도로’, 조선인 여성비행사 ‘박경원’ 등 근현대사에 등장하는 인물들에 대한 글을 썼다. 『9월, 도쿄의 거리에서』(갈무리, 2015)는 그의 첫 저서이다.

역자 : 서울리다리티
역자 서울리다리티는 이 책의 번역에 참여한 소량, 디디, 하지메. 수평주의적 번역모임 의 회원이다. 이와사부로 코소의 『유체도시를 구축하라!』(갈무리, 2012)와 『죽음의 도시, 생명의 거리』(갈무리, 2013)를 함께 번역했다.
소량은 90년대 한국에서 대학을 마치고 미국의 대학원에서 섬유예술을 전공했다. 공상적 국제 가내수공업 연대조직 [달팽이 공방]에서 활동, 현재 산골로 이주하여 읍내 장터에서 친구들과 함께 작은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디디는 국문과 졸업 후 중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하며 연구공간 수유너머에서 활동하였다. 저서로 청소년을 위한 철학책 『호모 루덴스』, 『모더니티의 지층들』(공저)이 있다. 현재 밴쿠버에서 서울의 주거 운동 빈집에 관한 석사논문을 쓰고 있으며, 독일에서 출판된 책 Urban Commons: Moving Beyond State and Market(Bauwelt Fundamente, 2015)에 하지메와 함께 쓴 논문이 실렸다.
하지메는 미국에서 사회문화인류학 박사과정을 마치고 연구공간 수유너머 에서 활동하였다. 일제 강점기부터 4·3을 거친 격동의 시대에 제주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은 김임만 감독의 다큐멘터리 [용왕궁의 기억]의 공동 프로듀서이며 현재 어린이들에게 ‘일본’에 관해 이야기해 주는 책을 쓰고 있다.

 

 

한국어판 지은이 서문 8
머리말 : 신오쿠보의 거리에서 11
연표 20
이 책에 나오는 사건의 현장 지도 26

1장 1923년 9월, 대량학살의 거리에서 29

1923년 9월 1일 토요일 오전 11시 58분 간토 지방
매그니튜드 7.9 30

1923년 9월 2일 일요일 새벽 시나가와 경찰서 앞
“조선인을 죽여라!” 36

1923년 9월 2일 일요일 오전 5시 아라카와?구 요쓰기바시 다리 부근
마치 장작더미처럼 41

1923년 9월 2일 일요일 낮 가구라자카시타
가구라자카, 한낮의 흉행 45

1923년 9월 2일 일요일 오후 경시청
경찰이 유언비어를 믿을 때 49

1923년 9월 2일 일요일 오후 2시 가메이도 역 부근
소요(?擾)의 거리 55

1923년 9월 2일 일요일 오후 8시 지토세 가라스야마
모밀잣밤나무는 누구를 위한 걸까 59

1923년 9월 구 요쓰기바시 다리 부근
“아무것도 안 했어”라며 울고 있었다 66

1923년 9월 3일 월요일 오전 우에노 공원
줏대 없이 떠다니는 소시민 70

1923년 9월 3일 월요일 오후 3시 히가시오지마
중국인은 왜 살해당했을까 75

1923년 9월 3일 월요일 오후 4시 에이다이바시 다리 부근
애매함 속에 매장된 것은 …… 83

1923년 9월 4일 화요일 오전 2시 게이세이 선 아라카와 철교 위
몸에 남은 무수한 상처 88

1923년 9월 4일 화요일 아침 가메이도 경찰서
경찰서 안에서 92

1923년 9월 구 요쓰기바시 다리 부근
병사가 기관총으로 죽였다 97

2장 1923년 9월, 지방으로 확산되는 악몽 102

1923년 9월 간토 북부 지방
유언비어는 기차를 타고 103

1923년 9월 4일 화요일 밤 구마가야
‘만세’ 소리와 함께 108

1923년 9월 5일 수요일 4시 반 구 라칸지 부근
제물이 된 16명 116

1923년 9월 6일 목요일 오전 2시 요리이 경찰분서
어느 이웃의 죽음 122

1923년 9월 고엔지
고엔지의 ‘반달 할아버지’ 129

1923년 9월 9일 일요일 오전 이케부쿠로
저기 조선인이 간다! 133

1923년 9월 기헤이바시 다리
무사시노 숲 속에서 137

1923년 9월 12일 수요일 새벽 사카사이바시
왕희천, 칠십 년 동안의 ‘행방불명’ 144

3장 그 9월을 살아 낸 사람들 153

너무나 심한 광경이었다 154
논픽션 작가 호사카 마사야스의 아버지가 살아 낸 인생

“선인들 머리통만 뒹굴고 있었습니다” 161
아이들이 본 조선인 학살

조선인으로 오인 받은 일본인 169
“센다 코레야”를 낳은 사건

75년 후 발굴된 유골 175
나라시노 수용소에서 살해된 사람들

“저 조선인들에게는 손가락 하나 못 댄다” 180
이웃을 지킨 마을 사람들

“화석이 되어라, 이 흉한 해골아!” 189
아키타 우자쿠의 ‘쓸쓸함’

“그대들은 누구를 죽였다고 믿는가” 196
오리구치 시노부가 본 일본인의 다른 면모

“하물며 살육을 기뻐하다니” 200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반어법

어느 ‘무소속 인간’의 분노 207
반골적인 제국 의회 의원 다부치 도요키치

조감도 I
학살은 왜 일어난 것인가? 214

조감도II
도대체 몇 명이 살해되었는가? 221

4장 90년 후의 ‘9월’ 226

추도하는 사람들 227
‘요쓰기바시’ 다리 옆에 세워진 비

증오하는 사람들 236
되살아나는 말, ‘조선인을 죽여라!’

2005년, 뉴올리언스의 거리에서 245

도쿄는 지금도, 90년 전의 트라우마를 안고 있다 253
이시하라의 ‘삼국인’(三國人) 발언과 엘리트 패닉

‘비인간’화에 저항하다 260

지은이 후기 266
참고문헌 일람 269
간토대지진 조선인·중국인 학살에 대해 더 생각할 수 있는 책들 279
옮긴이 후기 281
인명 대조표 287
지명 대조표 289

 

 

21세기 아베 정권의 일본에서 일고 있는 혐한시위의 뿌리를 돌아본다

1923년 9월 1일 간토대지진 직후 조선인 대학살에 대한 생생한 보고문학!

다시 발흥하는 파시즘, 부활하는 인종주의에 대한 일본인 자신의 경고
평범한 일본인에 의한 학살, 파시즘의 내면을 들여다보다


90여 년 전, 간토대지진 직후인 1923년 9월의 도쿄 거리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수천 명의 조선인을 단지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평범한' 일본인들이 살해하였다. 이 책은 그 순간을 수많은 민족들이 함께 살아가는 도시, 도쿄의 기억으로 되살려 내며 그 사건을 얼굴을 가진 사람들의 현장으로 재현한다. 당시의 도쿄 거리는 공감과 비인간화가 싸우는 현장이었다. 그 도시에 우리는 지금도 살고 있으며, 또다시 그때와 동일한 ‘공감과 비인간화의 투쟁’의 한가운데에 있다.

1. 이 책의 의미: 혐오 대 공감
“착한 조선인도 나쁜 조선인도 없다. 조선인은 모두 죽여라!”
“일본이 싫은 여자들아, 나와라. 목을 졸라 죽여 줄 테니, 나와라!”
“범죄 조선인을 모두 죽여라”
“코리아타운을 다 불태워 버리자!”
“일본 사회의 진드기, 쓰레기, 구더기, 재일조선인 구제 처분 담당입니다.”
“지금 바로 때려죽이러 왔습니다.”

이처럼 재특회와 혐한시위대가 한국인들을 바퀴벌레로 비인간화하고 ‘한국인을 몰살하라’고 외치면서 한인거리골목을 돌며 위협을 가하는 현실에서 『9월, 도쿄의 거리에서』는 어떻게 하는 것이 인종차별주의의 이 득세를 극복할 방안인가를 진지하게 묻는다. 저자는 이러한 비인간화의 분위기에 전 인류적 공감과 예술적 공감의 정치를 대안으로 내세운다.

1) 이 책은 지금으로부터 90여 년 전 간토대지진을 계기로 도쿄에서 있었던 조선인대학살에 대한 생생한 보고문학이다. 저자는 당시의 도쿄 거리를 답사하면서, 또 당시의 지도와 현재의 지도를 비교하면서 역사적 사건의 실상을 마치 지금 살아있는 상황인 것처럼 생생하게 되살려 낸다.

2) 증오담론과 증오범죄가 전 세계적으로 급증하고 있는 21세기 벽두의 현실에서 『9월, 도쿄의 거리에서』는 혐한시위, 뉴올리언스 흑인학살, 나치의 유태인학살, 간토대지진 당시의 조선인 대학살이 사람들 사이의 공감을 학살하고 분열을 조장하는 증오범죄라는 점에서 공통된다는 것을 밝힌다.

3) 『9월, 도쿄의 거리에서』는 학살된 사람의 숫자를 세는 것, 조선인이나 중국인, 일본인을 기호로서 취급하는 것 등, 추상화의 방법론은 공감을 저지하고 비인간화를 조장하는 인식방법이라고 비판하고 얼굴과 이름을 가진 사람들의 체험을 구체적으로 드러내고 또 그림으로써 역사를 체감시키고 이로써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4) 『9월, 도쿄의 거리에서』는 간토대지진 당시 조선인과 중국인에 대한 학살은 3.1운동과 발흥하는 노동운동에서 나타난 저항력에 대한 공포대응임을 보여 주며 공포에 입각한 증오범죄가 당시 언론에 의해 유포되고 행정에 의해 조직되며 민중에 의해 집행되었음을 밝힌다. 아울러 최근 10년 이상 언론을 통해 유포되고 있는 혐한담론이 혐한행동에 대한 심리적 준비임을 암시한다. 인류를 조각내는 이 증오, 혐오의 감정을 공감의 감정을 통해 치유하자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5) 『9월, 도쿄의 거리에서』는 전후 세대 일본인에 의한 근대 일본의 파시즘과 인종주의에 대한 철저한 고발이자 자기비판이다. 이 책은 학살을 부정하는 것이 미래의 학살을 준비하는 것이며 학살당한 사실을 망각하는 것도 다시 학살당할 것을 준비하는 것이라는 관점에서 학살의 사실을 극적 방식으로 드러내고 조선인들에 연대했던 일본인의 행동을 통해 공감의 역사적 실례도 그려낸다.

2. 이 책의 특징과 구성
시대성을 가진 역사서

역사라는 말이 프랑스어나 독일어를 비롯한 여러 유럽 언어에서 이야기라는 뜻을 갖는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어떤 사건을 언어를 통해 재현하는 행위, 즉 서사라는 점에서, 역사는 단지 특정 시대의 사건과 인물에 국한되어 고정되지 않고 근본적으로는 위태로운 성질을 가지게 된다. 철학적 고찰의 대상이 되는 것은 물론, 나아가 국가 혹은 민족 간의 갈등의 소지가 되는 것이다. 이는 최근 기만적인 역사 인식을 드러낸 아베 담화까지 귀결되어 오는, 70년이 지나도 제대로 풀리지 않은 일본의 침략과 지배에 대한 역사인식을 통해 동아시아에 사는 우리가 함께 목도해 온 문제이기도 하다.
이 책 『9월, 도쿄의 거리에서』는 2014년 3월 11일에 출간되어 간토대지진 조선인학살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만수천 부가 팔렸다. <2015년 기노쿠니야 인문대상>이라는, 대형서점이 주최한 독자 투표로 뽑는 인문서 베스트 30 경쟁에서 당당히 3위에 오르기도 했다. 또 신문, 잡지, TV에 많이 보도되어 화제가 되었으며, 그 모습은 다시금 한국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저자인 가토 나오키는 도쿄의 한인거리 신오쿠보에서 벌어진 인종주의자들의 시위에서 간토대지진 당시 외치던 증오 언설(hate speech)과 똑같은 표현을 듣고 충격을 받아 이에 진실을 알리는 블로그를 개설한다. 이 책은 그 블로그에 기록된 작업들을 바탕으로 글을 추가해 만들어졌으며, 따라서 매우 시대적인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거기에 감히 덧붙이자면 이 책은 유사한 주제를 다룬 인문학 책에서는 접하기 어려운 몇몇 획기적인 특징들을 함께 가지고 있다.
“해야 하는 것은 치유가 아니라 상처를 받는 것이다.” 아우슈비츠와 히로시마, 현대사회를 특징짓는 대량학살에 대한 독특한 고찰을 남긴 귄터 안더스(후설과 하이데거에게 철학을 배운 철학도이자 한나 아렌트의 첫 남편이자 발터 벤야민의 사촌)의 말이다. 1978년에 미국 NBC에 의해 제작된 텔레비전 영화 <홀로코스트>가 이듬해 독일에서 방송되었을 때 지식인들의 첫 반응은 냉담했다. 말할 수 없는 것, 표현할 수 없는 것, 그리고 경제적인 배경이나 범죄 수행 체계 및 그 중심적인 책임자들의 존재에 초점을 두는 대신, 그저 감수성에 초점을 맞춘 대중적인 이야기를 창작함으로서 역사적 사건을 표현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안더스의 반응은 달랐다. 이 영화가 어떤 통계나 총체적인 분석에서도 그 동안 독일인이 직시 못했던 것들, 즉 죽고 죽이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반성하는 전후 독일인의 이미지와는 달리, 그때까지도 많은 사람들은 (홀로코스트에 대해) 비록 알고는 있었지만, 문제를 직시하고 느끼는 것을 거부해 왔다. ‘나도 책임이 있다. 혹은 나도 그때 그 상황에 있었다면 그럴 수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안더스는 이렇게 말한다. “안다는 것은 관여의 형태 중에서 가장 약한 것이며, (거기서 멈춘다면) 관여하지 않는다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안더스의 평론은 한 상업적인 미국영화가 독일 내 새로운 해석의 전기를 맞게 된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일상의 풍경 속에서 역사를 기억한다
비유를 들어 이야기 했지만, 이 책은 실제 사건을 이야기로 재구성한 역사서로서 당시 사람들의 ‘얼굴’을 무려 사건이 일어난 지 90년이 지나 일본 사람들에게 직접적으로 느끼게 한 특별한 책이다. 총 네 장으로 된 책의 전반부(1장, 2장)는 역사적인 시공간의 재현으로 이루어져 있다. 지진 발생으로부터 시시각각으로 일어난 재해에 따라 어떻게 이재민들이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탔다”거나 “조선인이 반란을 일으켜 군대와 싸우고 있다” 등의 유언을 믿어 광기에 휩싸여 갔는지를 보여준다. 시간을 따라 며칠 몇 시에 어떤 사건이 일어났는지가 책의 구조를 통해 파악될 뿐만 아니라 맨 앞에 있는 연표를 통해서도 전체 사건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도록 책은 짜여 있다. 또 공간적으로도 사건마다 달려 있는 지도를 통해 어떤 곳에서 사건이 일어났는지를 머릿속에 그려 볼 수 있도록 도와준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그 곳을 실제로 탐방함으로서 그 현재의 모습을 우리에게 상기시킨다. 그래서 이 책은 역사서일 뿐만 아니라 답사기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독자는 풍부한 배경 정보 속에서 어떤 일이 일어난 것인지, 누가 누구에게 어떤 짓을 했는지를 마주하며, 당시 사람들의 분노와 공포를 고통스러울 정도로 생생하게 느끼게 된다.

학살 가해의 내면을 들여다 보다
후반부인 3장에서는 학살의 트라우마를 글이나 마음속에 간직한 유명한 사람들 혹은 무명의 사람들의 서술을 통해 좀 더 학살의 내면으로 다가간다. 학살을 목격한 어린 아이들, 조선인으로 오인되어 폭행당한 일본인, 선조들이 저지른 학살의 현장을 발굴한 지역민들의 서술이 있는가 하면, 문인과 정치인들의 성찰을 기록한 글들도 소개되어 있다. 전반부와 비교해 볼 때, 한 번 사람의 내적 기억을 경유한 후반부의 기술법은 잔인한 폭력 묘사의 서술에 의해 마비된 독자의 감수성이 다시 한번 성찰의 힘을 갖도록 인도한다.
안더스의 말을 빌리자면 엄청난 학살에 대해 우리는 “심리적으로 대응하는 어떠한 시도도 일단 실패할 수밖에 없다......살해 당한 수많은 사람들을 기억할 수도 없다. 그뿐만 아니라 애당초부터......진정으로 인식하는 것도 불가능한 것이다......지각능력은 작동을 멈춘다.” 저자 가토 나오키는 말한다. “인간으로서 받아들이고 생각해야만 하는 역사적 사실을, 몇 명이 죽었는가라는 식의, 감정을 억누른 숫자 논쟁으로 바꿔버리는 것 또한 귀를 틀어막고 공감을 방지하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가토는 학살의 규모나 원인에 대한 고찰을 회피하는 것은 아니다.

90년 후의 잔향에 맞서 기억한다
마지막 4장에서 가토는 현재적인 관점에서 간토대지진이 갖는 의미를 추도와 증오라는 정반대의 감정으로 접근하는 사람들에 대해 고찰한다. 그리고 허리케인 카트리나의 사례를 통해 인종주의에 의한 살육이 단지 군국주의 시절의 일본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비극이 아니며 민주주의를 표방한 나라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이시하라 신타로와 같은 극우정치가의 선동이 21세기 일본에서도 있었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안더스는 “집단적 죄”라는 오래된 개념을 거절한다. 가장 오래된 그 개념의 용법은 예수의 살해에 대한 책임을 물었던 유럽의 반유태 인종주의의 역사였다. 그 대신 안더스가 우리가 집단적으로 가져야 하는 인식으로 제시하는 것은 어떻게든 “다시 반복하지 않을 책임”이다. 가토 또한 말하고 있다. ‘비인간’화가 진행된다면 언제든 우리 삶 속에 일상적인 공감이 끊어질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된다고. “90년 전의 거리 또한 ‘비인간’화와 공감이 싸우는 현장이었음을......때로는 한 인간 안에서 그 싸움은 벌어졌다.”우리가 잘 알고 있는 도쿄의 거리는 그 싸움의 현장이었고 그렇게 수천 명에 이르는 사람들을 죽여 버린 도시에 우리는 살고 있다고. 90년 전 9월은 존재했다. 우리는 반복하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그 일을 기억해 두어야 한다.

3. 언론이 주목한 책, 『9월, 도쿄의 거리에서』(보도일 순)
[교도통신 2014.5.1.]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기록 ‘도쿄의 거리에서’ 출판…“역사, 올바르게 직시하고 공유해
http://www.47news.jp/korean/korean_peninsula/2014/05/088810.html

[TV조선 뉴스7 2014.6.17] 관동 대지진 때 조선인 학살의 실상을 담은 '9월의 도쿄에서' / 홍혜영 기자 http://news.tv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6/17/2014061790055.html

[연합뉴스 2014.7.11] 일본인이 쓴 관동대지진 조선인학살 책 잔잔한 파문 / 조준형 특파원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1&aid=0007008268

[YTN 2014.7.11] 일본인이 펴낸 간토대지진 책 日서 반향
http://www.ytn.co.kr/_ln/0104_201407111731240677

[SBS뉴스 2014.7.11] 일본인이 쓴 관동대지진 조선인학살 책 잔잔한 파문 / 김태훈 기자
http://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2482153

[경향신문 2014.7.11] 일본인들이 1923년 간토대지진 당시 조선인들에게 자행한 학살을 다룬 책이 일본 사회에서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407111949481&code=970203

[KBS뉴스 2014.7.11] 일본인이 쓴 관동대지진 서적 인기 / 강푸른 기자
http://news.kbs.co.kr/news/view.do?ref=A&ncd=2891688

[아주경제 2014.7.11] '조선인 대학살' 다룬 책, 일본에서 1만1000부 이상 팔려
http://www.ajunews.com/view/20140711151322617

[충청일보 2014.7.11] 일본인이 쓴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 책, 현지서 잔잔한 파문 / 신홍균 기자
http://www.ccdaily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416660

[SBS뉴스 2014.8.31] 진상 숨기는 것 답답…日 작가가 쓴 '조선인 학살' 파문 출처 / 김승필 기자
http://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2562157

[서울신문 2014.9.1] “91년 전 그날의 조선인 학살… 지금의 日 혐한시위로 이어져” / 김민희 특파원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40901004006

[TV조선 뉴스7 2014.9.1] 간토 대지진 91년…일본인이 본 조선인 학살 / 이정민 기자
http://news.tv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9/01/2014090190084.html

[아사히아시아 2014.10.21] 관동대지진 당시 학살의 기억을 책으로…저자 가토 나오키 씨 인터뷰 “바로 현대의 문
http://asahikorean.com/article/asia_now/AJ201410210082

[여성주의저널 일다 2014.11.21] 역사에서 기호화된 사람들을 해동시키다 / 기사제공 일본 여성주의 언론 <페민> · 번역 고주영
http://www.ildaro.com/sub_read.html?uid=6898§ion=sc4

4. 『9월, 도쿄의 거리에서』 저자 가토 나오키 인터뷰 기사 (보도일 순)
[연합뉴스 2014.7.14]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을 소재로 3월 펴낸 '9월, 도쿄의 길 위에서'가 선전하는 것은 자정 가능성을 보여주는 일로도 인식된다 / 이세원 특파원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4/07/14/0200000000AKR20140714093300073.HTML?from=search

[한국일보 2014.9.2] "히로시마 산사태 지역에 한국인 빈집털이" 악의적 유언비어 / 한창만 특파원
http://www.hankookilbo.com/v/0da6c8b7b89f4ea79e440e8c2a674bf9

[한국일보 2014.10.28] 日 혐한서적 누가 읽나… 독자 절반이 60세 이상 / 김범수 기자
http://www.hankookilbo.com/v/84fdd4fc4b5147558ed3284c4da1fc34

[KBS뉴스 2015.3.1] <9월, 도쿄의 거리에서> 저자 가토 나오키 님 KBS 인터뷰
http://news.kbs.co.kr/news/NewsView.do?SEARCH_NEWS_CODE=3028381

[연합뉴스 2015.7.9] <광복70년> 역사교육 부재가 낳은 일탈…日혐한시위 / 조준형 특파원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5/07/03/0200000000AKR20150703002200073.HTML?from=search

 

 

1923년 9월의 도쿄 거리에서 일어난 일, 거기서 살다가 살해된 사람들의 기억을 공유하는 데 이 책이 도움이 된다면 참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도쿄와 일본 그리고 한국에 사는 사람들이 식민지 지배가 낳은 왜곡을 넘어서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 가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 한국어판 지은이 서문 (10쪽)

1923년(다이쇼 12년)의 간토대지진은 10만 명 이상의 사상자를 낸 대참사였지만, 이를 더욱 처참하게 만든 것은 ‘조선인이 방화를 하고 있다’거나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탔다’는 등의 헛소문을 진짜라고 받아들인 사람들이 칼이나 죽창 등을 쥐고 저지른 조선인(덧붙여 중국인)에 대한 무차별 학살이었다. 행정 당국이나 군조차 이러한 유언비어를 사실로 받아들여 퍼뜨렸고, 때로는 학살에 가담하기까지 했다. 그 당시 도쿄는, 1990년대의 유고슬라비아나 르완다와 같은 대량학살의 도시였다.
― 머리말 (13쪽)

지진이 다시 올 거래 … … 시나가와는 쓰나미에 당했다는군 … … 수상이 암살되었다나봐 … … 그중에서도 점점 크게 부풀어 오르기 시작한 것이 바로 ‘조선인 폭동’이라는 유언비어였다. 조선인이 각지에서 방화를 하고 있다 … …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타며 돌아다닌다 … … 조선인이 … … 조선인이 … … .
― 매그니튜드 7.9 (34쪽)

간토대지진 당시의 중국인 학살에 관해 연구를 한 니키 후미코는 학살의 배경에 노동 브로커의 입김이 있었다고 말한다. … 일본인보다 20퍼센트나 싼 임금으로 일하던 중국인 노동자는 일본인 노동자에게는 물론 인부를 알선하고 임금의 일부를 착복하던 노동 브로커의 입장에서도 아니꼬운 존재였기에 그들을 배척하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었다고 한다.
― 중국인은 왜 살해당했을까 (81쪽)

많은 증언자들이 공통적으로 “노동자들이 살해되었다. 우리는 유학생이었기 때문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말한다. 거기에는 체계적으로 일본어를 배우지 못한 노동자들의 경우 “검문을 당했을 때 그 자리를 모면하기가 더욱 어려웠다”는 이유도 있다. 일을 찾아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살아야 했던 터라 많은 경우 지역의 일본인과의 관계도 얕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 고엔지의 ‘반달 할아버지’ (131쪽)

도쿄의 특수성. 우리는 인종주의에 기반해 많은 이웃을 학살한 그런 특수한 역사를 가진 도시에 살고 있다. 간토대지진의 기억은 재일 한국·조선인 사이에서 지금도 계속 끔찍한 악몽으로 상기되고 있다. 한편, 일본인들은 존재하지도 않는 ‘조선인 폭동’을 선명한 이미지로 만들고 그것을 거듭해서 의식의 밑바닥에서부터 불러내곤 했다. …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 도쿄는 스스로가 여전히 90년 전의 트라우마에 사로잡혀 있다는 사실을 자각해야만 한다.
― 도쿄는 지금도, 90년 전의 트라우마를 안고 있다 (25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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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세 때 조선인 학살을 목격한 일본인 화가 가야하라 하쿠도가 남긴 스케치. 군과 자경단원에 의해 살해된 조선인들의 시신이 즐비하다. 동아일보DB

구월, 도쿄의 거리에서/가토 나오키 지음/번역 모임 서울리다리티 옮김/
292쪽·1만9000원·갈무리

 

1923년 9월 1일 오전 11시 58분 일본 간토(關東) 지방에서 대지진이 일어난 뒤 도쿄의 거리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산케이신문이 2009년 펴낸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의 진실’이라는 책에 따르면 ‘조선인이 방화와 살인, 강간을 저질렀다’.

물론 ‘미친’ 소리다. 당시 이 같은 유언비어로 조선인 6000여 명이 일본 민간 자경단과 군대, 경찰에 의해 무차별적으로 학살됐다. 그러나 우경화와 역사 왜곡이 진행되고 있는 일본에서는 “당시 조선인이 실제로 폭동을 일으켰다” “조선인의 방화로 일본인 몇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등의 글이 인터넷에 무더기로 나온다. 

오늘날에도 일본 극우 단체인 ‘재일특권을 허용하지 않는 시민의 모임’은 도쿄 시내 한복판에서 “한국인을 내쫓아라” “좋은 한국인도 나쁜 한국인도 모두 쳐 죽여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혐한 시위를 벌인다.  

프리랜서 작가인 저자는 이 같은 역사의 반복에 공포를 느껴 간토대지진의 실상을 소개하는 블로그를 개설하고 책으로 묶었다. 이 책은 간토대지진을 겪은 사람들의 진술과 기록을 통해 조선인 학살 현장을 파노라마처럼 보여준다. 

책은 숫자로 환원되지 않는 개별적인 인간의 얼굴을 드러낸다. 읽다 보면 평범한 인간들의 잔혹함에 좌절하게 되지만 희망이 생기는 대목도 있다. 학살의 광기로부터 조선인 이웃 2명을 지킨 마루야마 마을 주민들 이야기, 살해당한 조선인 엿장수의 시신을 수습해 안장한 맹인 안마사의 이야기가 그렇다. 

 

저자는 학살 원인을 3·1운동 등 일제 식민 지배에 대한 저항을 보고 일본인들이 느낀 공포에서 찾는다. 조선인의 분노를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과 조선인에 대한 두려움이 유언비어와 학살로 드러났다는 것이다. 

‘외국인 노동자가 흉악범죄의 주범이다’ ‘외국인 노동자가 한국인의 일자리를 빼앗고 있다’ 등 이주 노동자에 대한 혐오가 한국 내부에도 없지 않다. 이 역시 우리가 저질러 놓은 차별과 착취에 대한 공포의 반영이 아닐지. 책은 일본의 역사 왜곡에 경종을 울리는 한편 우리 내부의 편견도 돌아보게 만든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