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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델로 (The Tragedy Of Othello: The Moor Of Venice)

Bawoo 2015. 11. 12. 20:31

 

오델로 (The Tragedy Of Othello: The Moor Of Venice)

 

장르 드라마, 멜로/애정/로맨스 | 미국, 이탈리아, 프랑스, 모로코
감독 오슨 웰즈
출연 마이클 맥리아모어, 로버트 쿠트, 오슨 웰즈
등급 전체 관람가

 
[영상설명]
오손 웰스는 영화의 신기원을 이룬 시민 케인(41)을 27세에 만들어 낸 미국의 전설적인 영화 작가이다.

이후  연출과 주연을 겸한 진지한 영화들을 만드는데, 그 중에서도 셰익스피어 작품을 영화화하는데 대단한 열정을 가졌다. 웰스 뿐만 아니라 연극에서 출발한 대배우들은 모두 셰익스피어의 주인공이 되는 꿈을 갖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햄릿, 리어왕, 멕베스, 오델로 등은 그들이 가장 하고 싶어하는 역이다. 멕베드(48)와 오델로(52)는 바로 웰스의 열정이 낳은 결과물로 특히 오델로는 깐느 영화제 그랑프리를 수상했다. 웰스는 오델로에서 제작, 각색, 연출, 주연 등 1인 4역을 해냈는 데, 특히 제작비 마련에 어려움을 겪어 3년만에 영화를 완성했다.

 

이 작품은 제작비가 끊겨서 여러 차례 중단하며 지속된 촬영 작업으로 배우들과 촬영 장소가 바뀌었다(모로코에서 베니스까지). 웰스는 의상비 절약을 위해 타월을 두룬 터키탕에서의 살인 장면을 찍는 등 즉흥적인 연출력으로 이런 어려움을 이겨냈다. 또한 당시 나온 영화는 후시 녹음으로 사운드에 문제가 있었지만 1979년 원래 제작비만큼의 비용을 투자해서 사운드를 복원해 낸 상태의 필름을 방영했다.

 

질투와 오해에 관한 드라마인 오델로는 연극 무대에서는 배우의 극적인 대사에 의존하지만, 웰스의 영화에서는 원작을 창조적으로 각색해서 원작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 낸다. 이를테면 영화를 여는 장례 의식과 시각적 화면 구성은 웰스의 오델로를 보다 고전적인 형태의 비극으로 재현해 내고 있다. 연출자로서 웰스는 시민 케인으로 기억되지만 연기자로서 웰스의 재능과 카리스마적 이미지는 오델로가 대표작이라고 할만하다.

베니스의 사이프러스에 살고 있는 무어인, 오델로는 전쟁에서 뛰어난 공을 세워 큰 존경을 받는다. 그는 젊은 귀족 숙녀인 데스데모나와 사랑에 빠졌고, 그녀 또한 오셀로의 성품에 반해 그를 흠모한다. 하지만 데스데모나의 아버지는 오델로가 무어인이라는 이유로 두 사람의 결합을 반대했고, 결국 두 사람은 한밤중에 도망을 쳐 비밀리에 결혼식을 올린다. 이 사실을 안 데스데모나의 아버지는 오델로를 원로회에 연행해 오지만 때마침 터키군이 사이프러스를 침공해오자 원로 위원들은 오셀로를 장군으로 임명, 전쟁에 파견한다. 오셀로는 터키와의 전쟁에서 큰 승리를 거두고 돌아온다.

 

한편 오델로의 부하, 이아고는 오델로의 신임을 한 몸에 받고 있지만 사실은 그를 질투하고 시기하여 오델로를 궁지에 빠드릴 궁리만 한다. 그러던 중, 이아고는 오델로의 부관인 젊은 캐시오와 데스데모나의 관계를 모략할 음모를 꾸민다. 이아고는 캐시오가 술에 약한 것을 이용하여 그가 보초를 설 때 술을 먹여 소란을 벌이게 하고 이에 노한 오델로는 캐시오를 부관의 자리에서 해고시킨다. 캐시오는 데스데모나를 찾아가 자신의 복직을 호소해 줄 것을 부탁하고 이아고는 이런 두 사람의 관계를 이용해서 오델로의 질투심을 유발시킨다.

 

이아고는 데스데모나의 시종으로 있는 아내를 이용하여 그녀의 손수건을 훔치게 하고 이걸 캐시오에게 건네줌으로써 오델로로 하여금 두 사람의 관계를 확신하도록 만든다. 질투심에 이성을 잃은 오델로는 결국 사랑하는 아내, 데스데모나를 자신의 손으로 직접 목 졸라 죽인다. 하지만 결국 이 모든 것이 이아고가 꾸민 계략이었음을 알게 되고 사랑하는 아내를 죽였다는 죄책감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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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

인간에게 내재된 악과 사랑, 질투를 선명하게 묘사한 이 작품은 가정 비극의 색채가 짙은 셰익스피어 4대 비극의 하나이다. 인간이 선과 악을 동시에 지닌 양면적 존재라는 점과 악에 의해 나약한 존재로 전락하게 되는 보편적 인간의 특성을 부각하고 있다.

이아고의 간계에 사랑하는 아내를 죽인 오셀로의 이야기

베네치아 공화국의 흑인 장군 오셀로는 그 나라의 원로원 의원 브라반티오의 딸 데스데모나와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되어 몰래 결혼한다. 오셀로가 카시오를 부관으로 등용한 것에 한을 품은 기수(旗手) 이아고는 두 사람을 파멸시키려는 결심을 한다. 오셀로가 데스데모나와 결혼하게 된 사정을 원로원에 설명하고 있을 때 투르크 함대가 키프로스 섬으로 향하고 있다는 급보가 왔고, 오셀로는 그 섬을 수비하기 위해 파견된다. 그때 남편을 따라가고 싶다는 데스데모나의 청이 받아들여져서 그녀도 오셀로와 동행한다.

이아고는 먼저 근무 중인 카시오에게 술을 권해 취하게 만들어 장군으로부터 파면당하게 한다. 이어서 의기소침해 있는 카시오를 설득해 데스데모나를 통해 장군에게 복직을 부탁하라고 한다. 동시에 그는 오셀로에게 카시오가 데스데모나와 불륜 관계에 있는 것 같다고 경고한다. 이아고는 그 거짓 충고를 진짜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 자기의 아내이자 데스데모나의 시녀인 에밀리아를 시켜 오셀로가 데스데모나에게 선물한 손수건을 훔친 뒤, 카시오의 방에 떨어뜨려 놓아 고지식한 오셀로로 하여금 그녀의 부정을 믿게 만든다.

데스데모나의 부정을 확신한 오셀로는 침대에서 그녀를 목 졸라 죽인다. 한편 이아고는 속기 쉬운 로데리고를 부추겨서 카시오를 죽이려고 한다. 로데리고가 카시오를 죽이는 데 실패하자, 비밀이 발각될 것을 두려워한 이아고는 로데리고를 죽인다.

에밀리아는 살해된 여주인을 발견하고 그녀에게 죄가 없다는 것을 오셀로에게 증명해 보인 뒤 남편의 칼에 찔려 죽는다. 그 사이에 이아고의 죄를 입증해 주는 편지가 로데리고의 시체에서 발견되어 이아고는 체포된다. 오셀로는 이아고를 칼로 찔러 죽이려다가 실패하자 자신의 목을 찔러 자살한다.

오셀로 - 불신으로 스스로 파멸하는 존재

오셀로는 무어각주[1] 왕족의 피를 이어받은 고결하고 용감한 장군이지만, ‘피부가 검고 입술이 두꺼운’ 추남인 데다, 나이도 벌써 ‘한창때를 지난’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최고 권력을 가진 가문의 딸이자 젊고 아름다운 데스데모나와 결혼했으니 누가 보아도 부자연스럽게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오셀로 자신은 ‘지금까지 내가 이루어 온 공적을 보더라도 이 정도의 행운은 당당하게 요구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데스데모나도 ‘오셀로의 마음을 통해 참된 그의 모습을 발견하고’ 진실한 사랑을 바치고 있다.

다만 오셀로는 군사 이외의 세상일은 잘 몰라서 마지막에 확실하게 뒤집힐 때까지 이아고를 ‘정직한 사람’이라고 믿을 정도로 ‘사람 좋고 고지식’하다. 악마와도 같은 악의 화신인 이아고는 오셀로의 그런 점을 이용해 비열한 수단으로 그를 교묘히 꾀어서 결국 아내의 부정을 확신하게 하고 나아가 그녀를 죽이게 만든다.

이 희곡은 오셀로를 파멸로 인도해 가는 이아고의 교활하기 짝이 없는 방법과, 차츰 의심을 품기 시작해 고민에 빠지다가 나중에는 ‘극도의 혼란에 싸여’ 둘도 없는 보물마저 내팽개치고 마는 오셀로의 심리 과정을 묘사한 것이다.

작품 속의 명문장

“빛나는 칼은 칼집에 넣어라. 그렇지 않으면 밤이슬을 맞아 녹슬게 된다.” - 제1막 제2장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을 가로채 갔다는 소식을 듣고 한밤중에 칼을 들고 쫓아온 브라반티오와 관리들에게 오셀로가 하는 말.
“각하, 질투를 조심하십시오. 그놈은 녹색 눈을 가진 괴물인데 마음속에 자리잡고 앉아 사람을 비웃으면서 갉아먹곤 한답니다.” - 제3막 제3장

카시오와 데스데모나가 이야기하고 있는 모습을 본 오셀로에게 이아고가 의미심장한 말로 의심을 부추기면서 하는 말.
윌리엄 셰익스피어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영국의 시인이자 극작가인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1564~1616)는 영국이 낳은 세계 최고의 극작가로 일컬어지는데, 총 37편의 희곡과 여러 권의 시집을 남겼다.

그는 1564년 4월에 스트랫퍼드어폰에이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상인으로 마을의 유력자였으며 한때 읍장을 지낸 적도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경제적인 몰락으로 인해 셰익스피어는 마을의 문법학교를 끝으로 더 이상 배우지 못하고, 많은 독서와 사교로 지식을 보충해야만 했다.

1582년 18세 때 옆 마을에 사는 8세 연상의 여성과 결혼해 1남 2녀를 두었다. 그 무렵 그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또 언제쯤 런던으로 나가 극단에 들어갔는지는 알 수 없지만, 1590년대 초반에는 이미 배우 겸 극작가로 이름이 알려져 있었고, 이윽고 궁정 극단의 중견 단원이 되었으며, 1599년에는 새로 만드는 글로브 극장을 건설할 정도가 되었다.각주[2] 1603년 제임스 1세가 왕위를 계승하자 궁정 극단은 왕실 극단이 되어 영국 제1의 극단으로 떠올랐다.

그로부터 8~9년 동안 셰익스피어는 성공 가도를 달렸으나, 1611년 무렵 은퇴해 고향인 스트랫퍼드어폰에이번으로 돌아가 1616년 4월에 세상을 떠났다.

작가로서의 셰익스피어는 시와 희곡을 연속적으로 발표해 불후의 명성을 남겼다. 그의 시로는 1593~1594년에 발표한 『비너스와 아도니스』(1593)와 『루크리스의 겁탈』(1594), 1595년 전후에 주로 쓴 『소네트집』(1609 간행)이 있다. 희곡은 1592년 전후부터 1610년 무렵까지 매년 약 두 편꼴로 발표했는데, 그 작품들은 비극과 희극, 사극 등 여러 분야에 걸쳐 있다.

희극으로는 『한여름 밤의 꿈』(1595), 『베니스의 상인』(1597), 『헛소동』(1598), 『뜻대로 하세요』(1599), 『십이야(十二夜)』(1600), 『겨울 이야기』(1610), 『템페스트』(1611) 등이 있고, 사극으로는 『리처드 3세』(1593), 『리처드 2세』(1595), 『헨리 4세』(1598), 『헨리 5세』(1599) 등이 있으며, 비극으로는 『로미오와 줄리엣』(1599), 『줄리어스 시저』(1597), 『햄릿』(1601), 『오셀로』(1604), 『리어 왕』(1605), 『맥베스』(1606),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1607) 등이 있다.

* 출처: 다음백과 - 절대지식 세계문학<오셀로 (윌리엄 셰익스피어 , Othell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