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斷想, 閑談]/<단상, 한담>

무엇이 문제냐?

Bawoo 2013. 12. 21. 10:45

1.

점심을 먹는둥 마는둥 하고 집을 나섰던 탓인지

도서관을 나올 때 쯤 되니 슬슬 배가 고파오기 시작했다.

시간을 보니 두시쯤,

밥 한 끼 사먹고 집에 갈 것인가,

참고 집에가서 먹을 것인가 고민이 되었다.

결국  '집에 들어가려면 아직 1시간은 족히 걸려야 되니

좀 더 배꼽시계 상태를 체크해보기로 했다.

마음 속으론 '아무래도 한끼 외식을 해야 하겠다'고 거의 정해 놓고서...

 

2.

도서관에서 집으로 돌아갈 때의 코스는

걷기 운동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일부러 비잉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

특별한 경우가 없으면 주로 역쪽으로 해서 공원을 한바퀴 돌아 집으로 가는 코스를 잡고 걷는데

이렇게 걸으면  4~50분은 족히 걸려 걷기 운동량으론 안성맞춤이다.

 

3.

그런데 오늘은 코스를 달리 해야헸다.

은행에 간단한 볼 일이 있어 은행이 있는 아울렛 건물엘 가야하기 때문에

운동 코스가 짦아져 버렸다.

며칠만의 운동이지만 별 수 없다 생각하며 은행이 있는 건물 쪽으로 방향을 잡고 걸어간다.

과 동기녀한테 내 카페 들어가는 법을 알려주고 가상계좌 만들어 문자로 넣어 달라는 부탁을 하고서...

할 일이 생기면 바로 메모를 해놔야 하는데 밍기적 거리다 깜빡 잊어버리는 일이 다반사인 요즘 일상

덕분에 과 동기녀가 수고를 하고 나는 안 날려도 될 애먼 통화료를  허공으로 날려버렸다.

 

4.

과 동기녀가 알려준 가상계좌는 송금이 불가능한 계좌였다.

원인을 알 수 없으나 일단 '은행내에 인터넷 사용이 가능한 컴퓨터가 있냐'고 청원 경찰한테 물어보았다.

근데 이 녀석 답변이 좀 불친절하다.

속으로 '이 놈 봐라' 코웃음을 치면서도 요즘 심심치않게 겪는 일인지라

'또 옷차림이 문제로군'생각하곤 컴퓨터 있는 곳으로 향한다.

그런데 이번엔 간부 직원인 듯 싶어 보이는 친구가 나한테 오려다 멈칫하는 것이 보인다.

'혹 아는 후배인가'싶어 쳐다보니 그렇진 않다.

이 친구 내가 현직에 있을 때 늘상 그랬듯이 '결재 업무가 끝나고 나면

손님들이 있는 객장에 나와 손님들과 직접 대화를 나누는 형태로 근무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5.

이 은행은 내가 다녔던 곳이고 차장때 이 지점에 근무한 적도 있으니

운이 좋으면 아는 후배를 만날 수도 있지만

퇴직한 지 벌써 15년이 넘었으니 아는 후배 직원 만나기가 그리 쉽지도 않고

만난다고 해야 새까만 후배들이라 나를 만나는게  오히려 불편할 수도 있으니

아는 후배 안 마주치는 게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

어쩌다 은행에 들를 때면 습관적으로 직원들이 있는 영업장 안을 주욱 훑어보기는 하지만

'혹 아는 직원들이  있나' 본다기 보다는 창구에 앉아 있는 직원들이

'요즘 하늘에 별따기보다 어렵다는 취업 관문을 뚫고 저기 앉아 있겠구나'하는 생각에

다시 한번 쳐다보게 되는 마음이 더 강하다.

'그리 힘들게 들어와봤자 하는 일이라곤 다 단순한 일이어서 내가 이런 일 할려고 그리 힘들게 공부하고 수많은 경쟁을 뚫고 들어왔나?'하는 자조감이 들게 마련이지만...

 

6.

컴퓨터는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을 쓸 수는 없고 은행 업무만 볼 수 있게 되어 있었다.

미리미리 준비를 안한 탓에 도서관에 가려고 외출하는 날에 은행 일을 보려던 원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 버렸지만 그리 중요한 일도 아니니 다음에 하면 될 터, 처음 마음먹었던 대로 시장기를 해결하기로 했다.

 

은행이 있는 건물 지하엔 식사할 수 있는 곳이 두 곳이 있다

하나는 다양한 메뉴가 있는  전문 식당들이 모여 있는 곳이고

다른 하나는 직원용이지만  외부인도 식사할 수 있는구내식당.

전문 식당이래야 비싼 음식을 파는 곳은 아니지만 가격에 비해 나오는 음식이 영 시원치를 않고

구내식당은 가격이 아주 저렴하지만 몇 번 먹어본 기억으론

나 은행 다니면서 20년 동안 이용한 구내식당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

값은 싸지만 그만큼 먹거리도 시원치 않으나 선택의 여지가 없어 먹게 되는 그런 음식.

 

7.

두 곳을 저울질한 끝에 구내식당으로 결정을 했다.

시장기가 있기는 하지만 식욕이 많이 땡기는 편도 아닌데다 메뉴를 보니 팥죽이라서

먹기도 간편하고 좋을 것 같아서였다.

 

8.

내가  구내 식당을 가끔이라도 이용하게 된 이유는

전적으로 직장 다닐 때의 향수 비슷한 것 때문이었는데

지난 겨울인가 여기서 황당한 일을 겪은 적이 있어

그 이후론 이용을 많이 자제하게 되었었다.

 

배식창구에 있는 여직원이 보기엔 저렴한 가격에 직원들에게 제공되는 음식을 외부인인 내가 사먹는 것이

노년기로 보이는 외모와 집에서 아무렇게나 입는 후줄그레한 싸구려 옷차림 모습과 함께 나를 부정적인 쪽으로 판단하게 하는 상승작용을 일으켜

'나를  돈없는 가난한 노인네쯤으로 생각하고 그에 걸맞는  싸구려 대접을 해도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모양이었다.

 

8.

입구에서 돈을 받는, 운영자인 듯 싶은 아주머니는 '식사하는데 불편할 테니 내가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들이 들어있는 가방을  맡아주겠다'고 하면서 나눈 대화를 통해 나에 대해 알게 되어 그런 생각을 절대 안하게 되었겠지만 배식 창구에 있는 직원이야 직접 대화를 나눌 기회도, 일도 없으니 그저 자기가 보는 기준으로 일방적으로 판단하고 행동을 하는 것이어서 여기에  내가 꼼짝없이 당하고 만 것이었다.

 

무슨 일이었는가 하면 식사를 다 끝내고 식판을 반납하다 실수로 바닥에 김치 국물을 쏟은 적이 있는데 그때 배식담당 여자 입에서 튀어 나온 말이

지금껏 살아오면서 한번도 받아본 적이 없는 모멸감이 섞인 말투였다.

 

하도 기가 막혀 속으로 화가 부글부글 끓어 올랐지만 딱히 어떻게 대처할 방법도 없어 ' 네가 감히 나에게'란 표정으로 쏘아보면서 '됐어'라고 한마디 하고 나오는 것으로 끝내고 말았지만 그때의 모욕감을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편치 않다.

 

9.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런 일을 제법 많이 겪은 것 같다.

 

차를 바꾸기 전  19년이나 되어 낡을대로 낡은 차의 타이어가  펑크가 난줄도 모르고 집사람 출근시킬려고 했다가 펑크를 때우려고 들른 카센터에서 자기 고객인건 생각도 안하고 그저 차만 보고 나를 무시하는 듯한 행동을 하던 카센터 주인놈,

매달 한 번씩 들르는 동네 병원에서  X-RAY 촬영 기사가 자기가 뭐 세상에서 제일인 양 거들먹 거리는 오만 불손한 태도,

구입한지 얼마 되지도 않은 안경테가 도금이 벗겨졌기에 원인을 알려고 낡은 차를 몰고 갔다가 겪은

안경점 주인의 엄마인 듯 싶은 새대가리녀의 '차를 보고 당신 다 알아봤어'하는 표정의 자기 일방적인 판단아래 내뱉던 경멸감 섞여 보이는 말투,

그리고 내가 사는 아파트 아래 단독, 다세대 주택이몰려있는 동네 수퍼 운영부부의 나를 가볍게 생각하는 듯한 말투.

이 모든 게 직장에서 퇴직을 하고 옷차림 대충 편한대로 하고 다니면서 겪게 된 일상이다.

거기다 외모까지 노화가 되어가면서 몰골이 보아줄만 하지 않은 쪽으로 점점 변모하고 있으니....

 

10.

오늘 구내식당에선 어떨까 싶어 궁금하기도 했다.

식대를 받는 여주인은 없고 딸인듯 싶어보이는 50이 안되어 보이는 여인이 식대를 받고 있으나 이 여인도 나에 대해 알고 있으니 문제될 일은 없고, 문제는 배식창구녀인데 나에게 모멸감을 안겨주는 말투를 하던 여인네가 아직도 있는가 보니 없고 못 보던 얼굴이다.

있다면 '제대로 기싸움을 해 볼 참이었는데 좀 아쉽게 됐다'생각하면서

'흠 어디 이 여인네는 어찌 나를 대하는가 볼까' 속으로 생각하며 식판에 반찬을 담으면서 그녀의 행동을 주시하는데 '역시 내가 기대했던 만큼은 아니다'

배식이 끝나고 식탁으로 돌아오는 나를 향해 '맛있게 드세요'란 말은 하지만 그 말이 별로 예쁘게 들리지를 않는다.

내가 생각하는 나만큼 나를 알고 대하는 말투가 아닌 그저 의례적이면서 뭔가 한자락 깔고 내뱉는 말투.

'3,500원 자리 구내 식당 밥을 사먹으려고 온 값비싸 보이지 않는 옷차림의 노년기에 접어든 사람'

그런 사람에게 해 줄 수 있는 말투 그 이상을 기대하는 내가 오히려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퍼뜩 든다.

 

11.

집사람은 그래서 '옷좀 제대로 차려 입고 다니라고 그러지 않으면 당신과는 절대 같이 외출을 안하겠다'고 하는가 보다. 직장 다닐 때는 어차피 신사복 차림으로 항상 다닐 수밖에 없었고, 직장도 남에게 흠 잡힐 정도는 아닌 곳이니 아무 문제없이 잘 대접받고, 인정 받았던 것들이 은퇴를 하고 나서 내 취향대로 값싸고 편한 아무 옷이나 입고 다니면서 이게 이리 문제가 되는 일인 줄은 정말 몰랐다.

사람들이 명품에 환장을 하고 애들한테도 몇십만 원 짜리 아웃도어를 입힌다고 하는 언론 보도를 보면서 '참머리가 어떻게 된 것이 아니냐'는 생각을 혼자서는 잘도 했고, 실제 그렇게 살아왔지만 막상 내가 그런 대접을 받으니 나도 좀 비싼 옷을 사입어야 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자꾸만 들기 시작한다.

정장을 입어야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외출도 도서관 가는 정도가 고작인 생활인데 집에서 막 입던 옷으로 그냥 휙 나갔다 오면 될 일,을 남의 눈을 의식해서 값비싼 옷을 사입어야 된다니 참 세상 살아내기 힘들다는 생각이 절로 들게, 세상 아니 인간들이 나를 만들고 있다.

 

12.

오늘 당장 화선지를 사러 가야 되는데 걸어서 가기엔 녹녹지 않은 거리라 차를 가지고 가던지 지하철을 이용해야 되는데, 차를 가지고 가면 집에서 입던 옷차림으로 가도 아무 문제가 없으나 대신 운동을 못하게 되고 거기다  운전도 하기 싫으니 어차피 지하철을 이용하던지 걸어가야 된다.

그러려면 외출복을 입어야 되는데 이리되면 운동화를 신을 수가 없어 지하철까지 운동삼아 20여분 걷는 거리를 구두를 신어야  되는데 그것은 싫고 결국은 지금 집에서 막 입는 옷을 입고 나갈 수밖에 없는데 좀 신경이 쓰인다. 지하철은 공공장소이니 남이 보기 민망할 정도의 옷차림은 하면 안되는 곳 아닌가.

 

아유! 고민된다. 이참에 바싼 아웃도어 한 벌 사서 막 입고 다녀버려? 그러고서 나도 비싼 옷 입었다고 폼잡고 다녀?  다른 인간들 처럼, 에고!

그나저나 지금 잘 입고 다니는  만 원짜리 싸구려 등산 바지는 당장 바꿔야겠다. 유명 상표 붙은 바지로...

작년 겨울에 홈쇼핑에서 산 웃옷은 일단 유명 상표가  붙어있으니  문제 안 될 것 같고...


이렇게 나도 속절없이 속물 인간이 되어가는구나. 쯧쯧...

 

                                   


[2013.12.21 아침에 3시간 걸려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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