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斷想, 閑談]/<단상, 한담>

땅콩 한 봉지

Bawoo 2017. 2. 28. 06:34


땅콩 한 봉지


견과류가 몸에 좋다고

늙어갈수록 많이 먹어야 한다고

아내가 시장 간 길에 사온 땅콩

국산은 없어서 못 샀다고 하면서 사 온 중국산


 맛이 괜찮았다

언짢은 기분으로 먹은 거에 비해선

나도 모르는 어느새

중국산에 입맛이 길들여진 건지

진짜로 맛이 좋아진 건지


이 땅콩 다 떨어져

시장까지 가기엔 좀 멀어

동네 마트에 간 길에

국산 땅콩을 샀다

중국산도 맛있었으니

국산은 더 맛있겠지 생각하며

천 원이나 더 비싸게 주고


덜 볶여서 그런지 중국산보다 맛이 없었다

국산이 실망을 시키다니

어쩔 수 없어 산, 값싼 중국산보다 못하다니

투덜대며 거실 한편으로 밀어내 버렸다


아내 먹어보더니

아무래도 덜 볶여 그런 것 같다며

그냥 먹기는 틀렸으니

멸치 볶음 할 때 같이 볶아 넣어야겠다며

 봉지째 까기 시작하더니 몇 개 못 까고는 이내 중단했다

손가락이 아파 도저히  못 까겠다고 하면서


나도 까보다가 이내 중단했다

한 개씩 까먹을 땐 몰랐는데

한꺼번에 다 까려니 손가락 마디가 많이 아팠다


젊은 시절이면 분명 안 아팠을텐데

촛물에 매일 손가락을 담가야만 하는

 늙음 때문일 것이다


언제인지도 모르게

조금씩 조금씩 망가져가고 있는 몸


이 땅콩 한 봉지

아직 다 못 까고

거실 한 귀퉁이에 놓여있다


급할 일 없으니

생각날 때마다 조금씩

손가락 안 아플 정도로만 그렇게 까서

멸치볶음 할 때나 같이 들어가길 기다리며




2017, 3, 4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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