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콩 한 봉지
견과류가 몸에 좋다고
늙어갈수록 많이 먹어야 한다고
아내가 시장 간 길에 사온 땅콩
국산은 없어서 못 샀다고 하면서 사 온 중국산
맛이 괜찮았다
언짢은 기분으로 먹은 거에 비해선
나도 모르는 어느새
중국산에 입맛이 길들여진 건지
진짜로 맛이 좋아진 건지
이 땅콩 다 떨어져
시장까지 가기엔 좀 멀어
동네 마트에 간 길에
국산 땅콩을 샀다
중국산도 맛있었으니
국산은 더 맛있겠지 생각하며
천 원이나 더 비싸게 주고
덜 볶여서 그런지 중국산보다 맛이 없었다
국산이 실망을 시키다니
어쩔 수 없어 산, 값싼 중국산보다 못하다니
투덜대며 거실 한편으로 밀어내 버렸다
아내 먹어보더니
아무래도 덜 볶여 그런 것 같다며
그냥 먹기는 틀렸으니
멸치 볶음 할 때 같이 볶아 넣어야겠다며
봉지째 까기 시작하더니 몇 개 못 까고는 이내 중단했다
손가락이 아파 도저히 못 까겠다고 하면서
나도 까보다가 이내 중단했다
한 개씩 까먹을 땐 몰랐는데
한꺼번에 다 까려니 손가락 마디가 많이 아팠다
젊은 시절이면 분명 안 아팠을텐데
촛물에 매일 손가락을 담가야만 하는
늙음 때문일 것이다
언제인지도 모르게
조금씩 조금씩 망가져가고 있는 몸
이 땅콩 한 봉지
아직 다 못 까고
거실 한 귀퉁이에 놓여있다
급할 일 없으니
생각날 때마다 조금씩
손가락 안 아플 정도로만 그렇게 까서
멸치볶음 할 때나 같이 들어가길 기다리며
2017, 3, 4 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