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시(漢詩) 마당 ♣/- 우리 漢詩

傷春- 申從濩(신종호)

Bawoo 2017. 4. 16. 22:31


傷春


                                                                                                                 申從濩

 

茶甌飮罷睡初醒(다구음파수초성)찻잔을 다 비우니 잠기운 사라지고

隔屋聞吹紫玉笙(격옥문취자옥생)건넛집에선 옥피리 부는 소리 들려온다.

燕子不來鶯又去(연자불래앵우거)제비는 오지 않고 꾀꼬리 떠나가는데

滿庭紅雨落無聲(만정홍우락무성)뜨락 가득 붉은 꽃비  소리 없이 내린다


茶甌(다구) : 차 사발.

飮罷(음파) : 다 마시다. 마시기를 마치다.

紫玉笙(자옥생) : 자줏빛 옥으로 만든 피리. 좋은 피리를 뜻함.

紅雨(홍우) : 붉은 꽃잎이 비처럼 떨어지는 것을 형용한 표현.


[서예 습작]





신종호 (차소(次韶), 삼괴당(三魁堂))


1456(세조 2)∼1497(연산군 3). 조선 전기의 문신. | 개설 본관은 고령(高靈). 자는 차소(次韶), 호는 삼괴당(三魁堂). 도승지 신장(申檣)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영의정 신숙주(申叔舟)이고, 아버지는 봉례랑(奉禮郎) 신주(申澍)이다. 어머니는 영의정 한명회(韓明澮)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474년(성종 5) 약관으로 성균진사시에 장원을 하고, 1480년 식년문과에 다시 장원을 하였다. 그 해 감찰에 임명되고 사가독서(賜暇讀書)하였다. 이듬해 천추사(千秋使) 홍귀달(洪貴達)의 서장관(書狀官)이 되어 명나라에 갔다. 그 때 명나라 역관에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수료병(水潦病)에 걸려서 돌아오지 못하고 고생하는 자가 많았으므로 명나라 예부(禮部)에 건의하여 그들을 치료하게 한 뒤, 모두 귀환하게 하였다. 명나라에서 돌아온 뒤 수찬(修撰)·교리를 역임하였다.


1486년 부응교로 있을 때 또다시 문과중시에 장원하여 과거제도가 생긴 이후 세 번이나 장원을 한 것은 처음이라며 칭송이 자자하였다. 그 해에 예빈시부정(禮賓寺副正)으로 초배(超拜: 차례를 뛰어넘어 제수됨)되었고, 『여지승람』을 정정하여 『동국여지승람』으로 다시 찬술해내는 데 참여하였다.

이듬해 그 공으로 왕으로부터 녹피(鹿皮)를 하사받았으며, 왕명으로 요동(遼東)에 가서 한어(漢語)를 습득하고 돌아왔다. 1488년 홍문관직제학을 거쳐 부제학이 되었으며, 이듬해 동부승지가 된 뒤 예조참의·좌승지·우승지·도승지를 차례로 역임하였다.


1491년 대사헌으로 있을 때 북쪽 오랑캐 침입 사건에 관한 어전회의 중에 영의정을 모욕한 죄로 파면되었으나, 얼마 뒤 다시 등용되어 도승지·동지중추부사를 거쳐, 병조·예조·이조참판을 역임하였다. 1494년 경기도관찰사로 나갔으며, 이듬해 중앙으로 들어와 예조참판 겸 동지춘추관사(同知春秋館事)로 있으면서 『성종실록』 편찬에 참여하였다.

1496년(연산군 2) 병환을 무릅쓰고 정조사(正朝使)가 되어 명나라에 갔다가 이듬해인 1497년에 돌아오던 중에 개성에서 죽었다. 관후(寬厚: 마음이 너그럽고 후덕함.)한 장자의 풍모를 지녔으며, 문장과 시·글씨에 뛰어났다. 저서로 『삼괴당집』이 있다.

 
참고문헌
  • 『성종실록(成宗實錄)』
  • 『연산군일기(燕山君日記)』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국조방목(國朝榜目)』
  • 『매계집(梅溪集)』
  • 『해동잡집(海東雜集)』

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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