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江上雜詩(강상잡시) 강위에서 쓴 잡시
李喜之(이희지)
門外春江綠染衣(문외춘강록염의) 문밖 봄강은 옷에 푸른 물 들이고
乘流一棹自忘歸(승류일도자망귀) 물결 탄 한 척 배 스스로 돌아갈길 잊었네.
白鷗未必閒如我(백구미필한여아) 백구는 반드시 나와같이 한가하지는 않아
盡日窺魚傍釣磯(진일규어방조기) 종일 낚시터 곁에서 물고기 엿보네.
水舍鷄鳴夜向晨(수사계명야향신) 강마을 닭이 우니 밤은 새벽으로 향하고
柳梢風動月橫津(유초풍동월횡진) 버들가지에 바람 이니 달은 나루를 비꼈네.
漁家只在江南北(어가지재강남북) 고기잡이 집은 다만 강 남북에 있는데
一色蘆花不見人(일색로화불견인) 갈대꽃 한빛이고 사람은 보이지 않네.
이희지 李喜之 (사복(士復), 응재(凝齋))
1681(숙종 7)∼1722(경종 2). 조선 후기의 학자. | 내용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사복(士復), 호는 응재(凝齋). 아버지는 판서 사명(師命)이며, 이명(頤命)의 조카이다. 1721년(경종 1) 경종이 병이 잦고 세자가 없어서 노론의 김창집(金昌集)·이이명·이건명(李健命)·조태채(趙泰采) 등 4대신이 연잉군(延礽君:뒤에 영조)을 세제(世弟)로 책봉하여 대리청정(代理聽政)하게 되었다. 이 때 그는 노론에 속한 성균관 유생이었는데 이몽인(李夢寅)의 상소로 전라도 장흥으로 유배되었다.
이듬해 노론 4대신의 처사에 반기를 든 소론의 유봉휘(柳鳳輝)가 왕세제책봉의 불가함을 상소하고, 김일경(金一鏡) 등은 목호룡(睦虎龍)으로 하여금 고변하게 하였는데, 이희지 등이 경종에게 약물을 먹여 시해할 목적으로 궁녀에게 금전을 주었으며 왕을 비방하는 노래를 지었다고 무고하여 큰 옥사가 일어났다.
이 무고로 이희지·이기지(李器之 : 頤命의 아들)·김성행(金省行 : 昌業의 손자) 등 60여명이 투옥되었는데, 그는 형을 여덟 차례나 받고 드디어 장하(杖下)에서 죽었다. 영조 때 신원(伸寃 : 억울하게 입은 죄를 풀어줌)되었다.
저술활동
저서로는 『응재집』이 있다.
참고문헌
- 『경종실록(景宗實錄)』
- 『영조실록(英祖實錄)』
-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
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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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성- 같은 소재로 크게 다시 그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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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조카 장례 마치고 난 1일째. 마음은 아직 우울하나 친부모인 처남네나 형제자매인 두 조카 마음만 같지는 않을 터. 그렇지만 늙고 병들어가고 있는 내 육신을 돌아보며 새삼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되면서 마음이 아프다. 그래도 다시 글씨도 쓰고 그림도 그리는 일상으로 돌아와 있으면서 산 사람은 사는 날까지 살아가는 것이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때마침 대학동기 모친이 돌아가셨다는 연락이 와 더욱 더 죽음이란 피할 수 없는 문제를 더 생각하게 되고. 동기 모친이야 분명 90이 넘는 장수를 하셨을 터. 이는 순순히 받아들이면 되는 일이나 처조카의 경우 병마로 인해 40이 채 안 된 나이에 세상을 떴고 나나 집사람이나 그걸 곁에서 겪어야 했으니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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